10-3. Dear myself:
경험이 필요한 이유

경험이 쌓여갈수록 선택에 대한 믿음이 높아져갔다

by 이도

음식을 덜 먹을수록

경험은 더 쌓을수록

내 삶은 나아져갔다




지인들의 걱정


제가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날 때면 항상 듣는 말은 "너 정말 괜찮아?"라는 말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 중에는 제 사정을 잘 아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분들이 보기에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삶이 과거에 비해 좋아 보이진 않은 듯합니다. 물론 이분들의 생각과 걱정해주는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과거에 근무했던 공공기관은 '기수'와 '출신'이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출신이 좋지 못하면 기수가 중요하게 작용했고, 출신이 좋으면 자신의 위아래 기수의 행적에 따라 정년과 직급이 결정되기도 했으니, 둘 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엔 출신은 좋지 못했으나, 기수는 잘 풀린 편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소속된 부서는 진급할 수 있는 자리도 많지 않고. 난다 긴다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만 흘러간다고 해서 진급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공공기관에선 연차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연차라면 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을 진급시키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요.


그런데 능력이 뛰어난 분들에겐 이 조직에 남아있기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던 것인지, 어느 날 갑자기 전국 각지의 부서에서 가장 능력 있고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대거 퇴직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수석으로 들어오셨던 분은 명문대학의 로스쿨에 합격하시자마자 퇴직하셨고, 제가 존경했던 부서장님은 조직의 부조리에 대해 본부까지 가셔서 항변하였으나, 잘 해결되지 않자 아무 미련 없이 퇴직을 신청하셨습니다.


항상 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던 저희 부서에선 퇴직 신정차가 증가하기 시작하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거의 받아주는 경우가 없었던 타 부서로부터의 전입 신청을 승인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저처럼 어정쩡하고 실력 없는 사람들에겐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진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퇴직하고 없었기에, 그만큼 공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퇴직을 결심했을 때도 부서장님이 만류하셨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부서장님은 본인께서 20년 넘게 이 부서에 몸담았지만 지금처럼 기수가 잘 풀린 경우가 없었다며 제가 딱 5년만 참으면 원하는 곳 어디라도 갈 수 있다며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것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당시 제겐 새로운 목표가 있었고,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에 부서장님의 만류에도 저의 퇴사 의지를 꺾이지 않았습니다.


불경기였지만, 저는 운이 좋아 퇴사한 지 6개월 만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부산 출신인 제가 연고도 없는 서울 삼성동 한복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당시에는 행복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거기에 부채라곤 없다시피 한 기업인 데다, 직원들의 근속연수도 20년이 넘는, 사기업이지만 공공기관 같은 안정적인 기업이니 이제 저는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요. 결국 저는 도망치듯 회사를 퇴사하였고 그렇게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변 분들이 저의 삶을 걱정하며 "정말 괜찮아?"라고 물어보시는 것도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년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월급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저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불안정한 생활과 급여에도 만족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경험해봤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저는 금방 도망치고 포기할 일을 선택했던 것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으름과 끈기 없음, 두려움과 걱정이 많다는 것도 제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저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희망하는 직종과 기업에 대해 그 흔한 인턴 경험조차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시험만 붙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착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안정적인 직장만 들어가면 다른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말을 고민도 없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하는 중간중간에 '이 길이 맞나?'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마음은 애써 모른 채 하며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만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었지만, 누구보다도 빨리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 번째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취업을 준비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공공기관에서 인턴 근무를 해봤었다면, 저는 결코 공공기관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험만 붙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 귀찮음과 게으름 때문에 저는 제가 희망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는 선택을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제 선택이 반드시 나빴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두 번의 직장생활과 퇴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앞으로는 절대 잊어먹지 않을 만큼 제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경험해본 것에 대해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제가 얻은 두 번째 교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안정적인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거나 해고 염려가 없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그 말에는 충분히 공감하며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선 다른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제겐 더 이상 이런 요소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 일도 없겠지만 누가 다시 원래 직장에 복직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그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경험했고, 해봤기 때문에 그 삶이 제게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인들이 제 삶을 걱정해주더라도 "정말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경험만이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뒤부터, 저는 어떤 일을 해보는 것에 있어 망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인지, 돈이 되는지보다 제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함으로써 제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일은 일단 해보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쌓아놓은 경험은, 당장은 도움이 안 될지라도 다른 일을 할 때 의외의 곳에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경험해본다는 것은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 덕분인지 저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쓸 내용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너무 쓸 내용이 많아 걱정이죠. 이 또한 제가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다양한 경험을 해본 덕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양한 것을 경험해볼수록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말씀드린다면 제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적은 소득이더라도 직장과 조직의 도움 없이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제가 데이터 분석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던 것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여러 가지 경험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일을 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잘 정리하다 보면 지금까진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좋은 아이디가 생각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면, 제게 필요한 능력과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보통 단기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만 남았으니까요. 이렇게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달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열심히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서야 '정말 열심히 사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수가 되고 난 이후 제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루 동안에는 해야 할 일도 있고 공부도 해야 하니 모든 시간을 경험을 쌓는 데 사용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시간이 한정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하지 않아도 될'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령 잠에 들 때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면, 과거에는 그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연습하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연습이라는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과 같이 매일매일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능력을 쌓아가는 모든 순간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이런 것이 도덕 교과서에서나 봤던 자아실현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즐겁게 봤던 영화 중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것이 하나 있었네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요.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인생에도 앞으로도 계속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한 나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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