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두 얼굴 ― 점잖은 죄인과 점잖지 않은 죄인

by 아침햇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아, 저 사람하고는 인연이 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게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에 걸리는 사람, 쉽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 인연을 만듭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인연―예수와 죄인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향수 사건: 눈물이 말할 때

어느 날,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아 갑니다. 일종의 ‘사회적 이벤트’였지요. 그런데 파티 한복판에 뜻밖의 손님이 들어옵니다. 동네에서 질 안 좋기로 소문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예수 곁에 앉아 울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발에 떨어지고, 머리카락을 풀어 닦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부으며 남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주인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아, 돌팔이군.’

하지만 예수는 달랐습니다. 그는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도 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랑은 이미 많은 용서를 받은 증거다. 적게 사랑하면 적게 용서받은 증거다. 사랑이 없다면 용서를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 장면은 억눌린 감정이 치유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말 대신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을 수용한 이는 예수였습니다. 상담학에서 말하는 조건 없는 수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녀는 말없이 눈물로 고백했고, 예수는 말없이 그녀의 존재를 받아주셨습니다.


두 기도의 대비: 자기 확신 vs 자기 직면

다음 장면은 예배당입니다. 한쪽에는 완벽한 신앙 경력을 자랑하는 바리새인, 다른 한쪽에는 ‘세금장수 매국노’로 욕을 먹던 세리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주 2회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10분의 1을 바치며, 나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그저 가슴을 치며: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결론은 의외였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공허했고, 세리의 고백이 은총을 얻었습니다.


현대 심리학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자기 확신에만 기대는 사람은 사실 ‘방어기제’ 속에 숨어 있습니다. 반대로 세리처럼 자신의 부끄러움을 직면하는 용기야말로 치유의 시작점입니다.


죄인의 두 얼굴: 점잖은 죄인, 점잖지 않은 죄인

예수께서 보신 인간은 단순합니다. 의인과 죄인이 아니라, 점잖은 죄인과 점잖지 않은 죄인입니다.


점잖은 죄인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외모도 번듯합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반대로 점잖지 않은 죄인은 이미 들통 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솔직한 자리에서 더 빨리 변화가 시작됩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점잖은 죄는 딱딱하게 굳은 무기화학 상태,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점잖지 않은 죄는 발효 중인 유기화학 상태, 아직 살아 움직이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벌거벗고 서는 법

예배란 무엇일까요? 번지르르한 기도문이나 근사한 헌금 전표가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서는 일입니다. 아첨도 필요 없고, 뇌물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하고, 용서받은 감격으로 다시 살아가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비유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합니다. 천국의 비자를 따내는 길은 큰 공적을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놓친 순간, 내가 넘어졌던 기억을 통회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인연의 시작

우리가 예수와 인연을 맺는 순간은 특별한 종교적 의식이나 대단한 봉사활동이 아닙니다. 다만, 눈물과 통회의 자리입니다. 죄가 드러난 죄인도, 들키지 않은 죄인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결국 예수와의 인연은 점잖든 점잖지 않든, 단 하나의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눈물을 받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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