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머리로는 고상한 이념과 철학을 붙들고 살지만, 막상 삶의 기쁨과 슬픔은 결국 몸에서 시작해 몸으로 끝이 난다. 배가 고프면 철학이 어디로 갔는지 사정없이 허기를 달래야 하고, 잠시라도 병이 들면 인생의 의미가 한순간에 흐릿해진다. 우리는 몸으로 즐기고, 몸으로 아프고, 몸으로 죽는다. 그런데 정작 평생을 살면서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병이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순간이 되면, 사람 마음에는 묘한 회상 모드가 켜진다.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한 채 과거를 돌아보다 보면, 묘하게도 삶이 참 시시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내가 이러려고 그 많은 추상명사들을 붙잡고 살았던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상은 꼭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시한 과거를 정리하다 보면, 사람은 단순한 즐거움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시골길에서 흙을 쥐고 냄새 맡던 순간처럼, 잡다한 꾸밈이 없는 마음의 고향으로. 어떤 이들은 자연의 고요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보다 더 깊고 고요한 자리, 말하자면 죽음을 닮은 “심심한 세계” 속에서 오히려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말마다 찾아가는 교회란 결국 무엇일까? 병원처럼 병을 고치는 데에 쓰이는 것도 아니고, 학교처럼 지식을 주는 곳도 아니다. 현대 사회에는 이미 사람들을 모으는 건물이 많다. 극장, 쇼핑센터, 카페…. 그런데도 왜 굳이 교회가 있어야 하고, 종탑이 여전히 종소리를 울려 사람들을 불러 모을까?
내가 보기엔 교회는 옛날 장터와 닮았다. 장날이 서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새벽녘부터 푸성귀를 이고 나선 어머니, 지게에 장작을 얹고 걸어 내려온 장정, 달구지에 물건을 실어 읍내로 향한 농부….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소식을 나누고, 빈대떡집 앞에 모여 술잔 기울이며 시집 장가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풀어냈다. 장터는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이자, 서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인간적인 무대였다.
교회가 서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교회는 똑똑한 사람들만 모이는 학문 연구소도 아니고, 선량한 사람들만 모인 동호회도 아니다. 오히려 제각각 허물투성이의 사람들이 모여 얼굴을 맞대는 곳이다. 착한 사람, 덜 착한 사람, 전혀 착하지 않은 사람까지 함께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현장이 바로 교회다. 그리고 그 다름과 허물을 기어이 포용해내는 훈련을 하는 자리다.
흥미로운 건, 성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맡았던 이들은 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바보 같고, 가난하고,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이었다. 바울은 스스로를 “만물의 찌꺼기”라 했고, 한없이 보잘것없는 질그릇이라 했다. 남들이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울리고 움직이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다. 완벽하고 성공적인 인물보다, 깨지고 상처 입은 사람의 고백이 훨씬 더 진솔하고, 듣는 이를 흔든다. 따라서 교회는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 속에서 오히려 세상에 필요한 힘을 발견하는 장소다.
동양의 지혜도 이 대목에서 겹친다. 노자는 착한 사람에게도 선을 베풀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을 베푼다고 했다. 도(道)는 잘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한 이에게는 보물이 되고, 악한 이에게도 은신처가 된다. 교회라는 공간도 그런 곳이다. "누구든 이 안에서는 보호받는다"라는,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감이 보장되는 자리 말이다.
결국 교회의 진짜 기능은 간단하다. 바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나와 비슷하게 상처 입고, 웃고, 울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멈추는 것. 잠시 수다를 떨고, 함께 노래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것.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이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바로 이런 만남이다.
그러고 보면 장터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모이고 싶어 하는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쇼핑센터는 욕구를 채워주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진 못한다. 카페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허물까지 내어줄 용기는 부족하다. 교회라는 공간은 그래서 지금도 필요한 것이다. 장날처럼 사람들을 꾹꾹 눌러 담아 모으고, 서로의 흠을 보면서도 결국은 웃으며 돌아가는 자리, 그게 교회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는 그 울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장터 한복판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러나 서로의 허물을 덮으며 함께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 사실 인간이란, 그 이상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