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빗나가도 인생은 계속된다

by 아침햇살

“서울에서 뉴욕까지 몇 시간이 걸릴까?”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건 비행기 덕분이다. 선조들이 걸어서 간다면 평생을 걸려도 못 갔을 길이, 이제는 13시간 만에 도착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되고, 공간은 마치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술 문명 속에 사는 우리는, 참 묘하게도 여전히 ‘시간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생각해 보면 좀 우습지 않은가? 전화기를 통해 태평양 건너 시카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한 사람은 낮 햇살 아래 있고 다른 사람은 별빛 아래 있으면서, “야, 지금 몇 시냐?” 묻고 있는 것이다. 시차를 극복했는데도 시간 자체에 여전히 매달려 허우적거린다. 스마트폰 속 시계는 초 단위로 나를 재촉하고, SNS는 "오늘 뭐 했니?" 라며 증명사진을 요구한다.


어거스틴이 “시간이 뭐냐?” 고 물으며 혼자 있을 땐 알 것도 같았는데, 남이 묻자 대답을 못하겠더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어제 먹은 점심은 뭐였더라?’는 잘 잊어버리는데 ‘내일 마감’은 절대 안 잊는다. 게다가 한국어는 더 복잡하다. 영어는 yesterday-tomorrow면 끝인데, 우리는 어제, 그제, 그끄제,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이렇게 일곱 단계를 챙긴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에 치여 사는 것 같다. 캘린더에 칸칸마다 빨간 글씨로 약속을 박아 놓고, 또 그걸 지키지 못해 후회한다.


계획이라는 게 이렇게 웃기는 것이다. 일본 이야기처럼, 절집 아이들이 서로 어디 가냐 묻다 결국 “시장에 채소 사러 간다”라는 정답(?) 앞에 무릎을 꿇듯, 인생 계획도 번번이 빗나간다. 우리는 늘 내일을 향해 멋지게 총을 겨누지만, 그 총알은 딴 데로 날아간다. 그럼에도 달력 마지막 장이 찢어질 때, 우리는 같은 실수를 또 한다. “내년엔 운동을 시작해야지.”, “내년엔 영어 공부를 해야지.” 하지만 내년에 헬스장 갈 발걸음보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더 빨리 우리를 찾아온다.


죽음을 의식하면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느냐고? 그래서 인간은 두 가지 기술을 발명했다. 하나는 회상이고, 또 하나는 계획이다. 슬픈 추억을 떠올리며 교만을 막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좌절을 피한다. 동시에 허황된 미래를 꿈꾸며 오늘의 무게를 덜어낸다. 하지만 사실은 둘 다 ‘지금’을 피해 도망치는 전략일 뿐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거지 이야기처럼, 내일을 약속하며 시간을 쥔 듯 행세하지만 사실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오늘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이 수만 명인데도, 우린 버젓이 “내일 보자”라고 한다. 사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인생의 농담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내가 아는 몇 가지 비법은 이렇다. 첫째, ‘작은 일을 크게 여겨라.’ 노자의 말처럼, 사소한 미움, 작은 욕심을 그냥 두지 말고 오늘 안에 털어내라. 내일로 미루면 큰 짐이 된다. 둘째, ‘짐을 가볍게 하라.’ 예수께서 “내 짐은 가볍다”라고 하셨다. 돌이켜 보면 짐의 무게는 대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이다. 그걸 털면 진짜 춤추듯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순간에 살아라.’ 연극 대사를 까먹고 즉흥적으로 “방이 있소, 들어오시오”라며 요셉과 마리아를 맞아들인 소년처럼 말이다. 각본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지금이다.


현대인은 업무 마감, 자기 계발, 건강관리, 인간관계라는 네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늘 지쳐버린다. 하지만 유튜브의 짤 한 편처럼 간단히 생각해도 된다. “오늘 할 수 있는 걸 지금 바로 해라. 못하면 웃고 넘어가라.” 어차피 죽음이라는 무대가 마지막 커튼을 내리면, 우리 모두는 관객도 배우도 아닌 ‘다 떠나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러니 스마트폰 달력 속 내일을 너무 믿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밥 먹자” 하는 게 차라리 더 확실한 시간정복 아닐까?


sticker sticker


이전 01화오늘도 나만의 업글, 인간 무기 6종 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