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꼭대기에서 와이파이는 끊기지만, 신은 연결된다

by 아침햇살

요즘 사람들은 ‘삶의 재미’를 찾느라 바쁘다. 카페에서 찍은 커피 사진에 #소확행 #힐링을 붙이고, 주말마다 여행지를 검색하며, ‘지금 이 순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요’를 눌러 받을 때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곧 다시 공허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재미’를 쫓지만, 진짜 ‘기쁨’을 찾지를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 셋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구름 속에서 “이게 내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약간 ‘초현실적인 스포일러’ 같다. 그런데 그 산 위에서 제자 베드로가 한 말이 재미있다. 그는 “여기 있는 게 너무 원더풀 합니다!”라고 외쳤다. 뭐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닌데, 그저 “있는 게 좋다”라고 한 것이다. 아마 이게 진짜 깨달음의 첫 문장일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도 대부분 산을 오른다. 그러나 그 산은 주식 그래프나 회사 매출표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펀(fun)’을 찾느라 오르고, ‘어치브(achievement)’를 이루려 애쓰며, 혹은 ‘컨트리뷰션(contribution)’으로 세상에 착한 영향력을 뿌리려 한다. 그런데 그런 산들을 오른 후 내려오면 허기가 몰려온다. 이유는 그 산 정상에 ‘나’는 있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오른 산은 달랐다. 거기에는 셀카봉도 없고, 관중도 없었다. 오히려 완벽한 혼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신의 음성이 들렸다. ‘혼자 있음’은 요즘 세상에서는 불편한 단어다. 밥을 혼자 먹는 것도 ‘혼밥’, 영화를 혼자 보면 ‘혼영’이라 해서 괜히 누가 불쌍하게 바라본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 행복은 그 ‘혼자 있는 시간’에만 깃드는 것 아닐까? 고요 속에서 마음이 숨을 쉬고, 내 안에서 신이 조용히 깨어나는 그 순간 말이다.

요즘 명상 앱이 인기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드디어 깨닫기 시작했다. 좋아요 수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평화 수치’라는 것을. 명상 시간은 마치 예수께서 제자를 데리고 올라간 높은 산과 같다. 그곳에는 말이 사라지고, 생각이 잦아들며, 오직 ‘존재 그 자체’만 남는다.


한 천주교 신부와 불교 스승의 일화가 있다. 신부가 명상 중에 “지금 하느님께 둘러싸여 있습니다”라 하니, 스승이 웃으며 “언젠가 그 하느님이 사라지고 당신만 남을 겁니다”라고 했다. 신부가 깜짝 놀라 “하느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사라지겠지요”라고 하자, 스승은 미소 지으며 “그게 바로 같은 말입니다” 했다. 결국 신을 만난다는 것은 ‘나’를 비우는 일이다.


우리가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도, 정작 자신과의 연결은 끊겨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깊은 연결은 ‘혼자 있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산꼭대기에서 와이파이는 끊기지만, 신의 신호는 오히려 그때 제일 세다.


그러니 가끔은 모든 알림을 꺼두자. 그 대신 마음의 창문을 열어보자. 막힌 방안으로 햇빛이 들어오듯, 그 한 줄기 빛 속에서 내 마음의 곰팡이들이 걷힌다. 예수께서 그랬듯, 우리도 각자의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산은 거대한 히말라야가 아닐 수도 있다. 퇴근 후 방 안의 조용한 의자, 혹은 새벽의 짧은 산책길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인생의 정점은 무엇을 많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음이 감사하다’는 그 단순하고도 거룩한 순간이라는 것을. 예수가 산에서 빛났듯, 우리도 그 순간 밝아진다.


“여기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어쩌면, 오늘 우리 모두가 다시 찾아야 할 인생의 문장이다.

이전 07화나답게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