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믿음, 이른 믿음은 없다

청춘도, 노년도 ‘지금’이 답이다

by 아침햇살

“젊을 땐 종교를 갖기엔 아직 이르죠, 인생이 길잖아요.”
이런 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요?
어른들은 “내가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믿음이니, 종교니… 나에겐 늦었어.”
놀랍게도 이 두 부류의 변명은 닮았습니다.
한쪽은 “아직 멀었다”며 미루고, 다른 쪽은 “이미 늦었다”라고 체념하죠.
근데 이게 인류 공통의 ‘자기 합리화’라는 걸 아시나요?
가끔은 나 자신조차 ‘분신술’이라도 부린 듯, 똑같은 구실로 인생의 숙제를 미뤄둡니다.

근데 믿음이란 뭘까요?
그저 사도신경 한 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고…” 이 정도일까요?
사실 이 말, 꽤 담대합니다.
“이 우주와 내 존재, 내 현실 너머에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
난 그분만 두렵고, 나머지는 모두 가뿐히 넘을 수 있다!”라고 외치는 거거든요.
쉽게 말해, 진짜 믿음이란 ‘머리’로만 외우는 논리가 아니라,
스펀지처럼 내 평범한 일상에, 아주 촉촉하게 스며드는 감각입니다.

문제는 자꾸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
“난 아직 뜨겁게 예배드릴만큼 젊다.”
“아, 이제는 체력도 집중력도 끝났으니 눈 감고 지나가야겠다.”
여러분, 이건 종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이어트도 “내일부터”, 영어 공부도 “올해 안엔”…
그리곤 달력만 넘기며 시간의 핑계를 먹고 살아갑니다.

신앙이란 사실, 마라톤 같은 삶의 후반에 펼쳐지는 반전 드라마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앞서간다 자부하는 이가 뒤처질 수 있고,
지금 낙오자라 여긴 이가 결국 으뜸이 된다!”
인생이란, “내가 준비됐을 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장 준비가 안 됐을 때 오히려 누군가 내 삶을 건드려주고,
결정적 한 방을 선물할 수도 있거든요.

퇴사하고 바로 대기업 취업이 닥칠 거라 계획했건만,
막상 ‘인생의 홍해’ 앞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결국 결단의 타이밍은 내 인생의 ‘무기력’과 ‘아, 이제 끝이다!’ 싶은 순간일 때가 많다는 걸.
모세가 팔십에, 노아가 육백에,
“네 인생 아직 안 끝났으니 다시 시작해!”라는 알림을 받은 건 이래서입니다.

여기에 깨달음 하나 더.
우리는 늘 인정받고,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길 좋아합니다.
하지만 진짜 인생의 고수,
혹은 ‘도통’했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가 했다’는 관념 자체를 내려놓을 때 새길이 열린 것입니다.
스승 앞에서 “선생님! 저 이제 도를 터득했어요!”
열심히 소리치는 제자에게 스승이 말합니다.
“그래, 그걸 말하는 네가 아직도 거기에 있다면, 도는 먼 거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바쁜 세상에서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일에 치이고 정신없이 사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그러면서도 정신만큼은 늘 또렷하게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라’는 말,
이제는 ‘항상 깨어있어라’로 재해석해야 하는 시대죠.

마지막 이야기 하나.
누가 나를 자꾸 건드리면 짜증이 확 밀려올 때,
그냥 반사적으로 욱하지 말고
“왜 내가 지금 이렇게 화났지?”
“이 상황에서 내가 진짜 슬픈 건 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언젠가 별거 아니었던 일들이었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시점이 온답니다.

결국 신앙이란
‘아직 이르다’는 것도, ‘이제 늦었다’는 것도 다 이유일 뿐.
진짜 멋진 변화는
“지금” 깨어있는 순간부터 새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내 나이, 내 상황, 내 걱정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한 걸음, 스스로에게 내디뎌볼까요?
지금이, 바로 그때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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