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으로 살던 사자와 깨어나는 나

by 아침햇살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이게 진짜 나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SNS에서는 늘 ‘잘 나가는 나’를 올리지만, 속으로는 “이게 맞나…” 하며 한숨 쉬는 우리. 어쩌면 우리는 양의 무리에 섞여 사는 사자일지도 모른다.


옛날이야기 하나 하자. 사자 새끼 하나가 우연히 양 떼 사이에서 자라났다. 풀을 뜯고, ‘매~’ 하고 울며 살았다. 다만 좀 컸을 뿐이지, 정체성은 철저히 ‘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사자가 나타나 그를 강가로 데려가 물속을 비춰 보여줬다. 그리고 그 순간, 사자 울음소리가 처음 터져 나왔다. 자기 얼굴을 본 것이다. “내가 양이 아니구나!”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바로 이런 순간과 닮아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너는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야. 이미 새로운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순간 말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큰 폭죽 소리나 영화 장면 속에서 오지 않는다. 조용한 새벽 커피 향기 속에서, 혹은 문득 ‘이 길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 때처럼 잔잔히 찾아온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온통 욕심, 시기, 불평, 비교로 가득 차 있다는 거다. 그러니 진짜 나를 볼 여유가 없다. 예수의 내면은 달랐다. 분노 대신 연민이, 원망 대신 감사가, 절망 대신 기도가 있었다. 그것이 부활이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요즘 세상은 ‘핵인싸’, ‘성공’, ‘파이어족’ 같은 단어가 지배한다. 다들 어디론가 뛰는데, 정작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한 왕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 왕은 불면증에 시달리던 중, 궁궐 지붕 위에서 웃는 낯선 사람을 발견한다. “누구냐?” 묻자, 그는 말한다. “낙타를 찾고 있소.” 황당하다. 하지만 다음 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왕은 깨닫게 된다. “아, 이 세상은 단지 잠시 머무는 여관이구나.” 그제야 왕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의 ‘진짜 집’을 찾아 떠났다.


우리도 그 왕처럼 번쩍 깨닫는 순간이 필요하다. 부활은 그래서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자기 각성의 비유’다. “지금 이 삶이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엔 더 큰 생명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그때가 바로 부활의 새벽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인생 리부트’다. 내가 ‘좋아요’에 목매던 나, 인정 욕구에 시달리던 나를 내려놓고, 새로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것. 그리고 너무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부활의 표정은 시끄럽지 않다. 물맛처럼 담백하고, 봄 공기처럼 싱그럽고, 꽃 향기처럼 은은하다. 누군가를 이기려는 마음 대신, 그냥 살아있음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되는 것. 그게 진짜 부활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엔 바쁘게 달리기보다 잠시 멈춰 서자. 따뜻한 차 한 잔 앞에서, 혹은 눈 내리는 창가에서, 조용히 내 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울음으로 살아야 할까?” 그 순간, 강물 속 사자처럼 내 영혼 어딘가에서 깊은 울음이 솟구칠 것이다. “아, 나도 사자였구나." 그건 슬픔이 아니라 ‘깨어남의 울음’이다. 오래 묻혀 있던 나의 진짜 목소리가 살아나는 소리다. 슬픔과 환희와 해방이 뒤섞인 진짜 나의 울음. 그게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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