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불안한 시대, 모를수록 가벼운 마음

통제 집착을 내려놓고 존재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연습

by 아침햇살

요즘 사람들은 뭐든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다. 커피 한 잔도 그냥 마시지 않고 ‘핸드드립 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반려동물을 돌보는 법조차 ‘수의테크 코스’를 수강한다. 세상은 거대한 ‘전문가 공장’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심리학자들이 요즘 주목하는 것은 정반대이다. 바로 ‘모를 줄 아는 능력(unknowing)’이다.


한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란 점점 더 작은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아는 사람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드가 20개는 되는데 정작 “내가 왜 우울한지”는 모르는 사람들, 그것이 현대판 expert의 초상 아닐까? 결국 우리는 ‘알면 알수록 모르게’ 되는 인생의 역설 위에 서 있다.


반대로 종교 혹은 영성(spirituality)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것에 대해 점점 덜 알게 되는 과정.” 처음엔 혼란스럽다. ‘모르는 게 미덕’이라니!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게 바로 인간 마음의 깊은 통찰과 평화를 여는 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심리학 용어로 바꾸면 ‘인지적 겸손(cognitive humility)’이다.


예를 들어보자. 부부관계. 연애 초반엔 ‘저 사람을 다 알고 싶다’고 하지만, 몇 년 지나다 보면 ‘이제 너무 잘 알아서 힘들다’로 바뀐다. 알면 알수록 상대는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고, 예측 가능한 존재는 지루해진다. 그런데 진짜 사랑은 ‘상대가 끝내 알 수 없는 존재’ 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바로 모름을 인정하는 관계, 그것이 건강한 친밀감의 심리학이다.


비움의 지혜는 예수의 십자가에서도, 욥의 고난에서도 나타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Why?)”라는 질문에 하늘은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대답 없음’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존재의 깊이를 발견한다. 대답을 얻는 대신 “모름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심리적 본질이다.


이 원리를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자꾸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만, 때로는 ‘풀지 않고 살아보기’가 필요하다. 아이가 “나무는 왜 푸르러요?”라고 물을 때, “엽록소 때문이야”라고 말할 순 있지만,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답했다. “나무가 푸른 이유는… 그냥 푸르기 때문이야.” 뜻밖에도 이 유머 같은 대답엔 깊은 심리적 자유가 숨어 있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불안 대신 평화에 닿는다.


실제로 심리치료 현장에서도 ‘앎이 아닌 존재의 전환’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사람은 치유되기 시작한다. “To know”에서 “To be”로, 즉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존재함의 경험’으로 이동할 때 마음은 정화된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이란 모르는 것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면, 더 이상 우리는 불안을 없애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그 안에 머무를 용기를 내게 된다.


요즘 말로 하면 ‘멍 때리기’가 단순한 게 아니다. 머리를 비운다고 생각하면 그 빈 공간에는 하나님, 혹은 우주, 혹은 삶 그 자체가 스며든다. 그래서 “내 안에는 아무도 없다”라고 한 성인의 말은, 결국 “그 안은 온통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과 같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니까.


결국 ‘모르는 용기’는 삶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지혜이다. 아는 척을 멈추고, 모르는 나를 받아들이며, 상대와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 알고자 하는 욕망을 놓는 순간, 우리는 다시 ‘Wonder’를 시작하게 된다. 인생의 진짜 아름다움은, 알고 나서가 아니라 “모르는 채로 감탄할 줄 아는 순간”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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