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생각할 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피곤함이 훈장이 된 시대

by 아침햇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하게도 ‘피곤함 자랑’이 유행이다. 누구 만나면 첫인사가 “요즘 너무 바빠요”, “완전 번아웃이에요”다. 그런데 이 피곤함에는 묘한 뿌듯함이 깔려 있다. 마치 피로는 현대인의 훈장이라도 되는 듯하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피곤하다 외치다 보면, 진짜 피곤해서가 아니라 ‘피곤한 척’하는 게 아닌가 싶다. 피곤하다 말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바쁘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생각이 든다. 지구상에 “아, 오늘 너무 피곤해”라고 말하는 호랑이나 비둘기가 있을까? 그들은 일이 끝나고 소파에 눕지도 않고, ‘자존감 회복 밸런스 게임’ 같은 영상을 보지도 않는다. 새들은 그냥 쉰다. 짐승은 졸리면 잔다. 그런데 인간은? 졸려도 유튜브를 한 편 더 보고, 이미 잠들어야 할 시간에 ‘내일 아침 루틴 영상’을 본다. 피로는 잠으로 해결되지 않고, 뇌 속에서 도로 생각으로 증폭된다.


문제는 피로보다도 ‘생각 정체’다. 우리는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반복 재생 속에서 산다. 어제의 후회, 내일의 걱정을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하며 “나 사색 좀 했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열린 사색이 아니라, 고장 난 레코드판이다. “Thinking is flowing”, 생각은 흘러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밧줄에 묶인 배처럼 제자리에 머문다.


한 중년 남성이 밤새도록 나룻배를 저었는데, 날이 밝아 보니 제자리였다는 우화가 있다. 그는 배를 묶은 밧줄을 풀지 않은 채 노만 저었다. 아마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꽁꽁 묶은 채 더 열심히만 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힘을 더 내는 게 아니라, 밧줄을 푸는 일이다. 즉, 생각의 방향을 멈추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요즘 상담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쉬면 죄책감이 들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그럴 때 상담사들은 말한다. “그게 바로 과잉생산 문화의 병이에요.”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은 기계처럼 ‘생산성’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쉬는 법을 잊었다. 사색과 기도, 그건 사실 ‘멍 때리기’와 같다. 눈앞의 일을 내려놓고 마음의 CPU를 식히는 행위. 그런데 그 단순한 행위를 우리가 가장 어려워한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없는 방에 혼자 15분 동안 앉아 있으라고 했더니, 대부분이 참지 못하고 버튼을 눌러 자신에게 전기 충격을 줬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괴로워서요.” 현대인은 생각보다 멈춤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카페, 콘텐츠, 관계, 쇼핑. 하지만 진짜 회복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가을이 좋다는 사람들이 왜 유난히 많은 걸까? 쓸쓸함을 감지해야 비로소 자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전하면 우리는 연애나 관계로 그 빈틈을 채우려고 하지만, 사실 그건 에너지를 ‘밖으로 낭비하는’ 일이다. 진짜 에너지 전환은 내면으로 향할 때 일어난다. 음악가의 음식이 멜로디로, 철학자의 식사 에너지가 사유로 변하듯이.


기도나 사색은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그건 인간에게 달린 ‘심리적 날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장비도, 시간도 필요 없다는 것. 단, 잠시 멈출 용기만 있으면 된다.


혹시 당신도 요즘 이렇게 느끼지 않는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멈추긴 두렵다.” 그럴 땐 기억하자. 세상 모든 기도는 피로에 기대어 문 앞에 멈출 때 시작된다. 문은 잠겨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열려 있는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은 게으르게, 그리고 아주 인간답게 멈춰 서 보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생각의 밧줄을 풀어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심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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