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육을 깨우는 심리학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매일 수없이 ‘구한다’. 취업을, 사랑을, 인정과 평안을.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우리가 진짜로 원했던 건 잘 안 온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로만’ 구하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는 바람을 피할 수는 있어도, 바람을 만들 순 없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의 과잉, 감정의 결핍’ 상태로 산다. 머릿속에서는 매일 뭐가 문제인지 분석하느라 시끄럽지만, 정작 자기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구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이건 마치 그림 속 바다에서 수영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진짜 물이 없는 곳에서 헤엄치려 하니까, 당연히 젖을 수가 없다.
진짜 구함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 입으로 말하는 구함. 이것만으로도 생각보다 강력하다. “하나님, 나 이거 원합니다.”든 “나 진짜 이 일 하고 싶어요.”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의지를 확인시킨다. 요즘 심리학에서도 말로 표현하는 ‘자기 선언’의 힘을 인정한다. 문제는 여기까지 하고 끝내버리는 사람이다. 다짐은 했는데, 아무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음소거된 주문이다.
둘째, 가슴과 눈물로 구하는 단계. 이건 감정의 심리학이다. 자기 안에 눌러두었던 감정을 건드릴만큼 간절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연민에 더 깊이 빠진다. “불쌍한 나”를 위로하면서 잠깐의 카타르시스로 끝내버린다. 그러나 동정의 에너지는 사랑의 에너지가 아니다. 동정은 타인의 시선을 구하는 것이고, 사랑은 하늘과의 연결을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로 시작한 구함은, 눈물로 끝나면 안 된다.
셋째, 배로 구하는 단계.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자기 전체가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머리와 가슴을 지나, 몸의 중심인 ‘배’까지 내려오면 감정이 ‘생각’에서 ‘결단’으로 변한다. 배로 구하는 사람은 이미 각오가 섰다. “이걸 얻기까지는 안 멈춘다.” 즉, 의식의 모든 층이 하나로 정렬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몰입(flow), 루틴에 깃든 집념, 명상적 집중 같은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배로 구하는 사람’에게서는 더 이상 불안이 사라진다. 이미 모든 걸 맡기기 때문이다. 그때가 바로 ‘믿음’이 심리적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어떤 심리 실험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목표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는 ‘더 이상 그 목표를 집착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원래 간절함의 종착지는 체념이 아니라 ‘평안’이다. 체념은 포기고, 평안은 신뢰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이미 일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주 관대한 부자가 있었다. 매일 한 사람에게 금 한 닢씩을 줬는데, 단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입을 여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즉, 말 많은 사람에겐 금화가 없었다. 어쩌면 하늘도 똑같이 행동한다. 조용히 스며드는 마음에게만 무언가를 준다.
입을 다문다는 건 ‘죽은 척’ 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호소와 조바심을 버린 상태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불안의 침묵’이 아니라 ‘신뢰의 침묵’이다. 마지막에 부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진짜 죽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이건 종교적이기보다 심리적 진리다.
완전히 ‘죽는’ 다는 건,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자아를 내려놓는 순간이다. 그때서야 어떤 힘이 당신 안으로 흘러온다. 마음의 샘이 열리는 것이다.
결국 ‘구함’은 하늘로 향한 행위인 동시에 자기 내면으로의 여정이다.
입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울고, 배로 견디는 사람만이 결국 얻는다. 이것은 심리학이 설명하지 못한 기도의 역학이다.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은 비를 피하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깔깔 웃는다. 그들의 몸은 이미 ‘구하는 법’을 알고 있다.
우리가 배로 구한다는 건, 바로 그때처럼 마음의 우산을 접는 일이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비를 맞을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때 하늘이 비로소 우리에게 금 한 닢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