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다 보면. 비틀어져 나오기 마련.

한국의 어둠 속 성문화. 이상하지 않은가요

by 맨모삼천지교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내가 있던 기숙사는 밤 10시가 통금이었고 그 시간 이후에는 방에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는 보드가 늘 현관 입구에 붙어 있었다.


일본인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 지내는 기숙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드를 점검하고 인원수를 체크하는 일을 했었는데, 압도적으로 일본 학생들의 외박이 잦았다. 어떤 학생은 한 달 30일 중 20일은 밖에서 자고 들어와 이를 걱정하는 관리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혹시 본가에 가서 자고 오는 것이 아닐까 했지만, 후에 이 친구들이 기숙사의 공용 식당에서 식사하며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듣고 대부분 주로 연인의 집에서 자고 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2000년 초반을 한국의 대학에서 보낸 나에게는, 당시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어제 남자 친구 집에서 자고 왔어"라고 모두가 들리게 식당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당시... 내 주변에도 [일본 사람들은 성적으로 과하게 개방적이다]라고 이야기하거나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그를 수긍하고 있던 상태라 웃으며 연인 집에서 지난밤을 보냈다는 옆 방 친구를 좋게만 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친구와 '한국인인 내 눈에는 참 개방적인 일본의 성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게 된 기회가 있었다. 그 계기는, 매년 봄 즈음에 발간되는 AnAn이라는 잡지의 특별호였다. 본지 외의 부록 한 권 전체가 "sex"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고, 당시의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을 선정하여 누드 화보를 같이 게재하여 매 년 발간이 되자마자 완판을 하는 화제의 잡지. 90년대 후반부터 내리 연속 3년인가 당시 최고의 인기던 키무라 타쿠야가 여성 모델과 전라로 찍은 화보가 연속으로 실려, 한국에도 꽤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등 너머로만 듣던 잡지를 서점에 깔리자마자, 간신히 구했다는 옆 방 친구의 메시지에 각기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과 함께 구경하러 가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 눈에는 생경한 '신문물'을 구경했었던 날이었다. 내용이 직접적으로 성문화를 다루고 있어서 해당 내용이 정말 20대를 겨냥한 패션지의 부록인 것을 믿기가 어려웠어서 이를 주제로 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었다.


그 날 모두가 같이 본 잡지 부록은 물론, 혼전 순결에 대해서는 이미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본 내의 분위기와 대중교통 내에서 콘돔 사용의 중요성에 대한 공익 광고가 버젓이 붙어 있는 것 등... 내 눈에는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레 내 입에서 "너희 나라-일본-는 너무 성적으로 개방적인 것 같아"라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그런데, 그 날 나의 이야기와 일본의 성의식에 대한 시선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친구가 나의 이런 이야기에 건네온 또 다른 질문은 이랬었다.


"음.. 한국을 중심으로 보자면 우리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거꾸로 지구본을 놓고 보자면 한국과 중국만 그런 가치관(즉, 폐쇄적인 성문화)를 고수하고 있고 그 외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우리와 더 비슷하지 않아?"


물론, 그녀의 말속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긴 했지만 어디를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 동시에, 어쩌면 '이들이 개방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이 [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드러내길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소속 국가가 달라진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반드시 드러내지 못한 욕망은 어딘가에 남아 비틀어진 채 드러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물론, 그 생각은 수년 후에, 실제로 밝혀져서 더 충격적이었지만 말이다.

( 관련 기사: 한/미 아동 음란물 이용자 310명의 범죄자 중, 223명이 한국인으로 밝혀져 / 2019년 10월 16일 한겨례 신문 보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3490.html


그래서, 그 날이. 내 기억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한국의 성문화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태어나 살아온 나라이고,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부분이니 문제가 없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세계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은지? 우리만 그러한 것은 아닌지? 어디가 맞다 틀리다 할 수 있는 문제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지?? 와 같은 생각의 방식으로.


그리고 그 후 또 시간이 지나...


한국도 일본도 아닌, 완전 또 다른 문화의 한가운데인 뉴욕으로 이사 온 뒤의 또 어느 여름날, 이 도시에서 MBA 유학을 끝낸 후배와 함께 점심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한국의 지금을 생각하고 이런 글도 끄적이게 되었다.


유학 오기 전 남성이 과반수 이상인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던 이 친구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던 것 중 한 가지가, 회사에서 일도 잘하고 너무나 '멀쩡한' 남성 상사가 회식 자리에서 버젓이 룸사롱에서 여자를 돈 주고 산 이야기를 다른 남성 사원들과 나누는 모습이었단다. 그리고 심지어 가정이 있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이야기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특히, "돈을 주고 여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사는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는 점이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고. 이 친구와 반대로 나는, 업계 특성상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여성이 90% 이상인 조직에서 일해왔고 그렇다 보니 비교적 이러한 이슈에서부터는 상대적으로 좀 멀리 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되돌이켜 보니.... 그렇게 여성이 대다수인 업계에서도 회식 장소에서 진한 성적인 농담을 건네거나 제스처를 취하시는 남성 상사는 늘 존재했고, 결국 그것이 문제로 퇴사나 소송에 이르는 경우를 역시 꽤 보았다. 그리고, 프랑스와 같은 해외에서 한국으로 발령받아온 외국인 지사장 분들 중 일부는 남성들을 위주로 한 한국의 밤문화/술자리 문화/룸사롱 문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수천, 수억을 쓰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풍문처럼 떠돌았기도 했다. 그러니... 여성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아주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 역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며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 토론 아닌 토론을 이어가던 중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미국'은 어떤가로 화제가 옮겨왔다. 물론 이 곳에도 여성을 성적인 대상 정도로만 치부하는 남성들은 물론 많고, 특히 권력과 돈을 이용한 성희롱으로 인해 ME TOO운동에 불씨를 댕긴 사람들이 있는 나라니 여기라고 깨끗하겠는가. 아무리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명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존중받는다고 하지만 권력과 경제의 차이에 "성"의 차이가 더해져 각종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이 곳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적어도 [돈을 주고 여성을 사서 하룻밤을 보내는 행위]는 '내가 돈과 권력이 이렇게 많소'에 대한 증빙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매력이 없어 돈으로 밖에 사람을 살 수가 없소'처럼 보인다는 점이란다. 그래서 차라리 Bar(바)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만난 누군가와 하룻밤을 즐기더라도, 성적의 관계의 밑바탕에는 상호 간의 호감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는 인지가 있는 문화. 그렇다 보니, 더더욱 "여성을 돈으로 사서 성적인 유희를 즐기는 상황이 가능한 곳이 도처에 있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관대한 곳"이라는 명제와 '공공장소에서 성을 담론화 하기는 어려운 문화"와 같은 양 극단이 동시에 심하게 존재하는 곳이 한국 말고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리고 요즘 뉴스면을 가득 채우는 버닝썬, 장자연 사건 재수사 등을 보면서 더없이 착잡하고 슬픈 마음과 함께 더 내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들.


'이 모든 상황들이 드러내지 못하고 음지에서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성"에 대한 인식으로 빚어진 것은 아닐까?'

'어디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내 딸이 커 나갈 미래의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인가?'

'여성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시작은.


모두가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 소리 내어 이야기하고, 함께 논의해 볼만한 주제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부터 시작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그 시작의 일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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