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대첩

by 맨모삼천지교

결혼이라는 것이.


사실은, 내가 아닌 타인을...내가 아무리 안다고 해도 다 알수는 없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다르기 때문에' 끌렸고, 그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해 가며 사는 과정을 일컫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세상 모든 부부들이 그러하듯 그 '다름'을 인지하는 여러 이벤트들이 있었다.

무려 12년 반을 연애하고도 처음 인지하게 된 것 투성이라니 .

‘결혼'이라는 제도는 정말 알수록 신기하지 않은가.


결혼 후 첫 장보기에서

샐러드류와 과일을 담고 계산하러 가자는 나에게 '아무것도 먹을게 없는데...?'라던 그.

옷걸이를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에 무심한 나와, 옷을 꺼내입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옷걸이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그.

긴 장기전 보다는, 단기전에 강한 나와 인생의 큰 목표를 정해야 움직이는 스타일인 그.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와 신문과 시사이슈가 더 재미있는 그.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와, 밤이 되어도 잘 줄 모르는 그.

세심하고 다정한 그와, 무던하고 무뚝뚝한 나.

폭팔하는 감정표현의 그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나.


이렇게 함께 살며 들여다 보니 연애중에 발견한 -그 당시에는 전부같았던 !- 공통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다른 점이 은하계의 별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우리지만, 천만다행으로 헤어지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오래오래 사랑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리라.(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가정 내의 역학 관계가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변화한 것과 더불어...해외로의 이사로 주변의 모든 환경이 변화를 마주해야했던 우리 가정에 길이길이 남을 한번의 대첩이 있었다.



이름하여.

양말대첩.


미국으로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해외로의 이주라는 것이...[새로운 도전] 같이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의 모든 것을 다 새로 적응해야 하는 환경과 더불어 스스로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물어보지 않았을 만한 일도, 새로 하나부터 열까지 문의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수두룩한 것은 기본. 더불어, 그동아 내가 공부하고 쓰던 것이 진짜 영어가 아니었음을 매일의 삶 속에서 마주하며 스트레스 지수는 한껏 높아졌다. 그래서 서로를 향하던 측은지심은 어느새 자기 자신에 대한 측은함에 압도되어 남편도, 나도, 어딘가 모르게 날이 선채 지나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러 나가는 남편이 한숨을 푹 내쉬며 짜증 나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양말 짝 좀 제대로 맞춰 두는게 그렇게 어렵나??"


그 말은.

그동안 여러모로 힘든 상황 속에서 참고 인내하며 '큰일이 아니라면 서로서로 아껴주자....어지간하면 해외에서.. 새로운 일터와 사람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남편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도와주자...'라고 생각했던 내 머릿속에 "이건 아님. 경고수위”라는 스위치가 켜지던 순간이었다. 나의 배려와 노력이 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응당 큰소리쳐도 될 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 와 닿았기 때문.


우선.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 볼륨을 업 하고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러자 그도 볼륨 업 하여 되받아친다.

"양말 짝 좀 맞춰서 빨고 널어서 짝 맞추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자 여기부터 이제 배틀 시작!

이미지 출처 : code404 from Pixabay

"고작 양말 짝이 좀 안 맞는 게 지금 아침부터 이렇게 큰 소리로 할 이야기야?"


"신경을 쓰면 되잖아. 신경을. 이건 성의의 문제라고"


"내가... 지금 성의 없이 집안일을 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거야?

당신 빨래해봤어?

여기 와서 내가 당신 보고 빨래하라고 한 적 있었어?

하루에 기본 수건이 10장씩 나오는 집이야. 우리 집은!

그런 수건 더미에... 밖에서 노느라 하루에 옷을 서너 벌씩 벗어두는 아이까지 더하면 하루에도 해야 할 빨래가 산더미야. 그 산더미를 또 종류별로 분류해. 수건과 속옷, 그리고 셔츠류, 그리고 색이 진한 빨래 등등... 한 번에 다 넣고 돌려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어려워. 양말 빨려고 그 빨래 더미를 뒤져가며 찾아서 넣어. 그리고 건조해. 근데 맞추다 보면 짝이 없는 것들이 나와.

왜? 수건 더미에 섞여 있거나, 깊은 빨래통 다 뒤집어 꺼낸다고 해도, 빨래 통 바닥 쪽에 있어서 못 본 경우겠지.

근데 그럼 어쩌냐고?

그거 계속 안 빨겠어?

어차피 오늘내일 중에 또 빨래를 할 거야.

그럼 그 다음번 빨래에 같이 들어가서 나오겠지. 그럼 짝이 안 맞는 것들을 모아 두었다가 맞추면 되는 건데...

그깟 양말 짝 안 맞는 걸 가지고. 아침부터 집안일을 성/의/없/게/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거야?!”


평소에 말을 느린편인 내가 저 순간만큼은 정말 쇼미 더 머니 나갔어도 파이널 라운드에 갈법한 속도로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그렇잖아!

이것만 해도 짝이 안 맞고!! 그리고. 남편인 내가 내가 빨래 제대로 하란 이야기도 못해? 그걸 네가 바꾸면 되잖아? 그냥 좀 더 신경 쓰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 이렇게 바락바락 이야기할 거리야?"


"................... 그렇게 널어놓은 빨래를 저녁에 아이 재우고 나면 이 캄캄한 마루에서 맞추고 있어.(비극적이게도. 나는 15년전 라식 수술의 부작용으로 저녁에 극히 눈이 침침하다.) 그러다 보면 남색이 검은색 같아 보일 때도 있고, 검은색이라고 해도 세로 줄무늬와 가로 줄무늬가 잘 안보이기도 해. 내가 모든 짝을 안 맞춘 것도 아닌데 어쩌다 그렇게 짝이 안 맞는 양말 때문에 이렇게 구구절절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알아듣는 거야?????

난 당신이 설사 빤스에 똥을 묻혀서 빨래 통에 넣어놓는다고 해도. 아, 우리 남편이 많이 힘든가 보네...라고 생각하지 그걸 가지고 컴플레인도 안 할 텐데 어떻게 당신은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다 내가 잘못되어 바꾸어야 한다고 나에게 이야기해???"


"아니 누가 똥을 묻혀 온다는 거야?!


갑자기 나온 난데없는 "ㄸㅗㅇ" 이야기에 어이없는 남편의 입꼬리가 웃음으로 삐죽거리기 시작하더니 나도 냉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이미 평정을 유지하기는 망해버렸다. 아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꼬리는 실룩실룩 콧구멍은 볼렁볼렁 거려서... 의도치 않게 정전협정이 맺어졌다


뭐. 설명은 해주어야 하니.. 갑툭튀 ㄸㅗㅇ이야기가 어이가 없는 남편에게 배경 설명 시작했다.


이야기인즉..

가끔 들어가 읽어보는 네 xx 온라인 카페에, 어느 날 '남편 빨래가 너무 더러워서 못하겠어요'라는 글이 올라왔었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이지만, 늘 빨래하려 보면 속옷이 너무 더러워서 -가끔은 ㄸㅗㅇ 으로 추정 되는 무언가가 묻어있기도 하다 씌여있었다.- 만지기도 싫은데 이를 어쩌면 좋냐는 간절한 호소와 해결책에 대한 제안을 바라는 그런 류의 글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글 아래 달린 댓글들 중에 너무 공감하는 주부들이 많았던 것. 그래서 읽고 있던 당시에는, ‘그저 정상적으로 청결한 남편을 둔 것도 복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싶어 의아해지기도 했고.. 설사 남편이 그렇다고 해도 ‘오죽 피곤하면(?) 화장실에서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나올까?’라는 생각에 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하튼 그 어이없는 글을 읽으며 ‘나는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그를 아끼고 안쓰러워하며 잘 데리고 살아보겠다’라고 아무도 관심없는 다짐을 홀로 했는데.... 고작 양말 짝이 좀 안 맞기로서니 '살림 포기자' 같은 취급을 하며 나에게 칼같이 말을 던져대다니. 괘씸했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투는 “갑”이 “을”에게 할법한 그것이었기에 화가 났었다고 말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가만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만하자. 아 몰라. 날도 좋은데 밥 먹으러 나가자! "


아마, 어떤 상황에라도 난 널 보듬고 이해하려 노력할 텐데, 너는 왜 이 작은 일에도 나를 바꾸질 못해서 안달이냐는 나의 말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인지.... (또는 어이가 없었을 수도 ㅎㅎ)

여하튼, 우리의 양말 전쟁은 그날 그렇게 휴전협정을 맺고 설전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러 나섰었다.


그 후에도 짝이 안 맞는 고아 양말들은 계속 발생했다.


그럼 미아가 된 양말 보호소인 큰 박스로 향해 그곳에서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어떤 날, 양말 짝을 강렬히 맞추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길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한쪽을 찾아 보호소를 나와 양말 서랍으로 다시 향하게 되고, 시간이 많이 지나도 못 찾은 양말들은 폐기한다.

양말 고아원의 성업이 지속되던 어느 날.


친구들끼리 밤에 모여 한잔 하던 자리에서 housekeeping(가사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양말 때문에 남편과 다투었다 하니 다들 파안대소를 하며 아주 귀중한 정보를 투척하는 것이 아닌가.


양말 고아원이 우리 집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

다들 집에 짝 잃은 양말들이 모이는 박스가 하나씩 있고....

심지어 미국 속담 아닌 속담에 ‘세탁기가 양말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이것이 모두의 집에서 생기는 흔한 이슈라는 이야기.


진짜 구글에 검색해보니 “왜 양말이 세탁기 안에서 없어지죠?”라고 묻는 사람들의 문의가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흥.
이것 보라지!
구글에 검색해보시라.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 내용들이 올라와 있다. 헐...


그래서 그날.

모임에서 귀가 후. 기세 등등하게 그에게 알려주었다.


콕 집어 ‘나’만 빨래에 소질이 없어서 그렇다는 그대의 말은 완전 틀린 것이며, (한국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미국의 다른 집에도 이 일은 비일비재한 것이니! 이를 두고 비난하지 말라고. 적어도 인구가 3억 3천만 명인 이 곳에서 그렇다면 인구 5천만 인 한국에서도 이 문제는 자주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아, 그래서 종전이 되었느냐고 누군가 물으신다.

아니다.

정확히는 우리는 아마 오래도록 휴전상태일 것이다.


사실 이 문제의 본질은 가정내 역할의 차이로 인해 드러난 부분이 크다고 생각했다. 함께 맞벌이를 하며 결혼해서, 같이 하나부터 열까지 둘만의 힘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 때는 "살림+가사"의 주체를 한정할 수 없었다. 특히 , 친정 엄마와 가사도우미 등...많은 외부인의 도움이 있었기에 누군가를 지정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던 것도 사실. 그것이 한국을 떠나와 오롯이 둘 만 남게 되고, 가계 수입의 주체가 둘에서 하나가 되는 상황이 되자 드러났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를 단순히 '성의'의 문제로 파악하던 남편과 '가사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지한 나의 사이에서 설전이 오갔던 것.


그리고 그는 아직도 미국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며 한국의 주부 9단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나는 아직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이 어이없으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집 양말 고아원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잘 살 것이고 잘 살아야 한다. 이렇게나 같은 상황을 두고도 생각하는 것이 다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니 그래야하지 않겠는가?!


p.s. 얼마 후 . 그는 정말 똑같은 색상과 모양의 양말을 한 무더기 사 왔다.

이미지 출처 : SnapwireSnap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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