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스트레스를 감지하고...같이 넘어가기ing
학기 시작과 동시에,
나도 그간 밀렸던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하기도 하고..
아침 8시 반에 등교하고... 하교 시간인 2시 반까지 총 5시간 중, 각종 집안일을 포함 하교 후의 간식/ 식사 준비와 함께 일만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라, 5일의 주중 시간 중 2일을 애프터 스쿨 등록을 해두었다.
애프터 스쿨에 등록하면 오후 2시 30분에 끝난 뒤, 애프터 스쿨 연계 기관으로 지도 교사와 함께 이동해서 그곳에서 등록한 클래스와 함께 choice time(이라 쓰고 다 같이 노는 시간이라 하자)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5시 40분 부모가 픽업. 즉, 주 중 2일은 8시 30분 등교 후 5시 40분 하교인 셈. 그리고 나머지 3일 중 하루는 free time & 나머지 2일은 2시 반 하교 후 내가 직접 픽업해서 데리고 가는 체조와 테니스 클래스.
몸으로 하는 신체 활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고, 아무래도 새 친구들을 사귀기에는 학교와 연계된 after school activity를 넣는 것이 좋겠다 싶어 친한 친구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맞추어 수강 신청을 했는데... after school로 가는 월요일 수영 클래스 2번 만에 덜컥 외이도염이 걸려버렸다.
그래서, 수영 클래스는 일단 2주 정도는 쉬기로 하고 아이에게 다 나을 때까지 당분간 수영은 쉰다 이야기하는 나에게 아이가 물었다.
"엄마. 수영 원래 가던 거 그거 아예 취소하고. 안 가고 싶어요. 그 날은 그냥 집에 있음 안돼요? 아님 엄마랑 같이 가능 애프터 스쿨 다른 거 하고 싶어"
"왜? 엄마는 거기서 학교 친구들이랑 노는 게 집에서 심심한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신청했지. 엄마랑 다니면 중간에 시간은 혼자 놀아야 하잖아~그것 보다는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게 재미있지 않아?"
"응. 근데 수영장도 좀 지지한 것 같아. 있잖아~바닥도 지지하고 물도 지지해.(라며 손사래 휘적휘적...-이럴 때 말하는 것을 보면 50대 아주머니 같은 5살 꼬마), 그래서 그냥 집에 있고 싶어"
그러고 보니
수영 클래스가 들어 있는 날은 [월요일]
일반 어른도 월요병이 도져서 회사 가기 싫은 그런 월요일이다 보니.. 이제 학교생활을 갓 시작한 kindergartener가 학교에 오래 있기 싫은 것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하여 결국 수영 클래스는 캔슬하고... 엄마표 뉴욕 투어를 해보기로 일정을 바꾼 지난주. 다행히 그 외의 클래스들은 친구들과 함께 듣는 것들이 많아서 즐거이 신나게 잘 다니고 그 사이사이 플레이 데이트도 하면서 엄청나게 바빴던 요즘.
새로 가기 시작한 큰 학교도, 친구도, 선생님도 다 좋다며 아침에도 너무나 해맑게 인사하며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내심 기특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했다. 불과 1년 반전에는,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에 갑자기 떨어져서.... 아침나절 한 시간씩 오열하며 떨어지던 아이가 이제는 이렇게 성큼성큼 자기 발로 신나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지난주부터였을까.
부쩍 가슴에 음식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있었던 풍선 조각을 삼켜 911 구급차 아저씨들과 경찰차 아저씨들까지 한밤중에 맞이하는 대 소동이 있고 나서 생긴 작은 트라우마로... 음식을 잘 먹다가도 "엄마, 큰 음식 덩어리가 저도 모르게 넘어간 것 같아요. 병원 안 가도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서 반복적으로 아니라고, 걱정 말라고, 잘 먹고 있다고 확인시켜 주고는 했었다. 그래서 신경성으로 의심했지만... 밥을 좀 많이 먹은 날에는 혹시나 급하게 먹다가 체했나 싶어 소화제를 준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가만히 지켜보니.
오전에는 그런 증상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가,
주로 학교를 다녀오고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잘 놀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사나흘 동안 지켜본 끝에, 이것이 실제 체하거나 배가 아픈 상황이 아니라..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신호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 3살 반 정도 되었을 때, 어린이 집을 옮긴 이후 빈뇨와 함께 머릿속에 아주 작은 원형 탈모가 생겨서 바로 그만둔 적이 있었던 기억을 상기하며... 스트레스가 무언지도 모르는 이 아이의 마음을 들어보기로 했다.
가만히 앞에 두고 앉아서 같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데.
어느 정도 대화가 터졌다 싶자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SHIT이라는 word가 무슨 뜻이야?"
"응? 그건.. 짜증 난다는 말의 안 좋은 표현이야... 그런데, 그런 말 어디서 들었어?"
"아... 아냐. 아무도 안 말했어. 그냥 알았어. 근데 왜 안 좋은데?"
"그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특히 빈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빈이를 보면, 나쁜 어린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이야."
"알았어... 근데...엄마.... 나 SHIT word가 자꾸 가슴에서 막 나오고 싶은 기분이 들어. 처음에 미국 왔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
이 아이가, 새로 바뀐 학교,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서 신나게 잘 적응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이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shit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도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들었으리라. 어른들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 쉬며 내뱉는 모습을.
"빈아. 엄마도 어릴 때, 숨을 하늘 끝까지 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쉬어져서 답답했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외할머니가 엄마를 큰 병원까지 데려간 적도 있었다? 몰랐지?"
"그래서 선생님이 그럼 어떻게 했어? 엄마를? 엄마 심장을 꺼내서 봤어??"
"아... 아니^^;;;;;;;;;;;;;;그럼 엄마가 너를 이렇게 못 키웠겠지 ㅋㅋㅋㅋ, 그게 아니고, 엄마 심장 사진도 찍어보고 청진기도 대고 들어보고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어"
"그럼 왜 그랬어?"
" 그게 마음이 답답해서 그랬던 거래. 그런데, 외할머니가 도와줘서 엄마가 그걸 풀 방법을 찾았더니 좀 있다가 사라졌어! 그 답답한 숨쉬기가. 그러니 빈이도 엄마랑 같이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응 엄마... 근데 그래도...... 안 고쳐지면 어떻게 하지...?"라며 눈물이 그렁그렁.
가슴팍에 꼭 안기는 아이를 안고 한참 토닥거리며 이야기해줬다.
그 답답한 느낌을 "스트레스"라고 이야기한다고.
그건 그냥 두면 사라지지 않으니, 그런 기분이 들 때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같이 그 기분을 이리저리 날려버릴 수 있도록 해야 사라진다고. 그리고 나가서 놀이터에서 놀 때 그런 기분 안 들지 않냐고, 테니스로 공 뻥뻥 칠 때 그런 느낌 안 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엄마, SHIT word가 막 나오고 싶은 답답한 마음일 때는 어떻게 해?"
"이렇게 할까? 엄마가 작은 노트를 줄게. 그 노트에 빈이가 생각날 때 표시를 해놔. 빈이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나 표시로, 얼마나 많이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날은 많이 그런 마음이 든 날이 있을 테고, 어떤 날은 그런 생각이 별로 안 든 날이 있을 거야.
그리고 학교 다녀오면 엄마에게 이야기해줘. 그럼, 엄마가 그걸 듣고, 빈이가 가진 답답한 마음이 얼마만큼인지 확인하고 없애버리는 방법을 알려줄게!"
"어떻게...?"
" 우리 창밖 강가에 매일 달리는 사람들 보이지? 그 사람들도 그런 답답함을 없애려고 달리는 거야. 엄마도 운동 열심히 하지? 엄마도 일이 안되고 빈이가 말을 안 듣고 아빠가 힘들게 하면 마음이 답답해져.. 그런데 운동하면, 그런 마음이 좀 사라져. 이렇게, 운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랑 큰~캔버스에 마구마구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아니면... 스파게티면을 잔뜩 사다가 마루에 뿌려놓고 막~~~ 다 뿌러뜨려볼까? 아님, 신문을 박박 찢어볼 수도 있고 ㅎㅎㅎ 어떤 방법이 제일 마음이 막 시원해질 지 엄마랑 찾아보자.
그런데, 그 모든 방법 중에 제일 중요한 건 빈아.
엄마한테. 이야기해 줘야 해.
엄마한테 말해주고.. 알려줘.
언제 그랬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꼭 말해줘. 같이 풀어보자"
아이를 껴안고 토닥거리며, 금방 이 답답함은 사라질 것이라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네 친구들 중 누군가는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며 눈물이라는 모양으로 네가 말하는 SHIT word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잘 가던 화장실을 못 가고 갑자기 바지에 오줌을 싸기도 한다고. 다들 처음 시작하는 학교 때문에 작은 마음에 이러저러한 스트레스가 쌓여 있기도 하다고. 그리고, 너는 다른 친구들하고 또 다르게... 이 나라에 온 지 이제 겨우 1년 반이 되었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 언어가 담긴 서랍을 차곡차곡 쌓아야 해서 더 힘들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도 인지를 못해서 내내 병치레를 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면전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시험을 포함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결과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그 빛나는 결과 후에는 독감, 고열에 시달려 며칠을 앓아누워 있던 적이 허다했다. 최절정기는 고3 때였는데, 고 3 첫 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독한 감기로 인한 목 부위의 염증이 급성으로 심해져 거의 2주를 내리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 당시에는 특히 공부 말고도 고2의 예민함을 뽐내는 동생과 엄마의 전쟁을 포함, 수험생인 내가 공부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문제들이 집 안팎에서 빵빵 터져 나왔었기에,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그 모든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던 것.
그 뒤에도, 어떤 난관에 봉착하면 상황을 돌파하긴 하지만 종국에는 여지없이 몸이 고장 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했다는 사실도 함께. 많은 경우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아 신체가 아픈 상황을 경험했다면, 반대로 아프던 신체가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된 그다음 날부터 거짓말처럼 나은 적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아주 뒤늦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렇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잘 풀 줄 알아야 결국 몸도 건강할 수 있다는 대진리를 얻었었다.
그래서, 이 작은 아이에게 평생의 숙적이 될 '스트레스'를 좀 더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봐야겠다 생각했기에 아이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이 아이의 인생에... 지금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끝도 없이 기다릴 텐데, 가지고 있을 방패가 여러 개라면 좋지 아니한가. 그 방법이 운동이던, 아니면 마음껏 그리는 그림이던, 두드리는 악기던, 아니면 강가에서 소리지르기던...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가 그 해결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나와 남편이 비추어 주려 하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잘 보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이렇게 무딘 내가 예민한 이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아이가 두서없이 던지는 단서들을 모아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그런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