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지금 재택근무중이라구요!

재택근무의 명과 암

by 맨모삼천지교

미국으로 이사와서 온 가족이 적응하느라 일년여를 쉰 끝에, 집에서 재택근무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보통 내가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2가지로 나뉜다.

"우와~~ 좋겠다"

"으... 힘들겠다"

전자는, 재택근무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고,

후자는 재택근무를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의 반응이다.


정작 나는 어땠을까?

지금 일하는 회사로부터, 계약 컨디션 자체가 재택근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듣자마자 "진짜요?!!" 라며 좋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전형적인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던 직장인 1의 마인드였던 것은 물론, 한국에서 회사 다니던 시절만 해도 경험해 본 적 없었기에 막연히 '집에서 (편하게 ) 일한다=편하다’라는 이미지로 이어졌다. 또한, 미국으로 이사 온 뒤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라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매일 아침으로는 아이를 준비시켜 함께 집을 나서느라 고생하고 회사가 끝난뒤 집으로 달려오느라 고생이었던 기억이 다시 엄청나게 선명해져서 마음이 알싸했는데... 적어도 이 두가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버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당시 나는 동일 업무 시간 기준 + 출퇴근 베이스로 오퍼를 받은 다른 회사와도 여러 조건을 저울질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연봉을 차치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기본적인 직장생활에 들어가는 함몰 비용(출퇴근비, 식대, 기본 옷차림 등등)과, 아이 케어에 필요한 베이비시터를 뽑고 아이와 가족이 모두 적응해야 하는 상황, 회사 일 스케줄과 그 모든 것 사이에서의 저글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답은 매우 빠르게 한가지로 모아졌다.


무엇보다, 아무도 없는 이 미국 땅에서 혹시 아이가 아프거나 할 경우 등등의 “엄마”로의 나의 역할을 백업해야 할만한 상황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다보니 결국 선택의 여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내가 생각하던 재택근무는 이미지는 이러했다.

이렇게 커피 향을 음미할 여유도...? (credit : 투썸 플레이스 광고 영상 캡처)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일해도 문제 제기할 사람 없는 내 집에서, 길 위에서 통근으로 버려야 하는 시간만큼 좀 더 여유롭게 커피를 내려두고, 거실의 테이블 위로 출근하는 1분이 통근 시간의 전부인 환경. 아, 거기에 어느 회사에나 한 명은 있는 발암 유발자를 안 만나도 된다는 크나큰 장점!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기다, 내가 컴퓨터 바탕화면을 현빈으로 도배를 해 두어도, 내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1시간에 5분씩 책상 옆에서 물구나무를 선다고 해도. 위에는 블라우스를, 아래는 파자마 바지를 입고 일해도. 일만 잘하면 될 뿐 나의 몰골과 나의 외적인 상태에 그 누구도 뭐라 할 이유 없는 편안함...이라는 것이 나의 일 시작 전 상상 속의 재택근무였다.


그런데,환상이 깨지는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상상과는 다른 현실이 도래했다.


노트북 뒤로, 주부인 나를 기다리는 산더미 같은 일감들이 우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세수도 안한 나를 보는 이는 없으나, 아침에 가족들이 떠나고 난 뒤 쑥대밭 같은 집은 내 눈앞에서 나의 눈을 잡아 끈다. 보지 않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일하는 바로 옆에 널려있는 식탁 위 아이의 장난감, 두 발짝 뒤 어제 널어둔 빨래가 고스란히 누워있는 빨랫대, 도대체 왜 저기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는 빨대와... 과자 껍데기.

하........-.-

'그래... 일단 일 먼저 마치고, 애 학교에 데리러 가기 전에 짬이 되면 치우자. 집중하자 일에'

라고 생각하고 일에 집중해본다.


그런데 화장실은 가야 하지 않겠는가.

화장실로 향하니, 여섯 살 꼬맹이가 치약을 짜다가 흘려둔 흔적이 세면대에 남아 있다.

'돌아가자, 나는 지금 일하는 시간이니'vs '1분만 이거 치우고 가서 다시 일할까...?'라는 마음이 다툰다.

그렇게 마음속의 전쟁을 치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넘어 아이가 학교에서 올 시간.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회사 일을 해야 하니 , 아이가 먹을 저녁밥은 아이와 함께 집에 도착하자마자 만들기 시작한다. 아이는 왜 엄마는 나랑 안 놀고 요리만 하냐며 칭얼거리다 잠들고, 아이가 잠든 후에는 회사일에 떠밀려 늦어진 글들을 쓰다 보면.... 아침에 돌린 빨래는 건조기로 향하는 것이 잊힌 채 세탁기 속에 남아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 그 안에는 남편이 내일은 중요한 미팅이 있어 꼭 입어야 하니 빨아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던 셔츠도 꼭 끼어고 말이다.

회의에 이러고 갈 수는 없지 않는가.... - 영화 오만과 편견 중, 콜린 퍼스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랜선으로는 공유 드라이브와 업무를 위한 채팅 프로그램 SLACK을 통해 동료들이 오고 갔지만, 정말 사람의 얼굴이 그리웠다. 컨퍼런스 콜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따로 말할 이유가 없으니 어떤 날은 홀로 일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오죽하면 오후에 하교하는 아이를 만나서 "오늘 잘 놀았어?"라고 묻는 나의 목소리에 쉰소리가 섞여 나와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출퇴근이 없으니 식사도 대부분 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 분명 출퇴근은 줄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산적한 일들이 더 많으니... 심리적인 쫓기는 기분은 더해갔다. 또, 따로 점심시간이라 다들 밥 먹으러 나가는 상황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니 일하다 보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허겁지겁 먹다 뛰어나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칠어지는 피부와,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남편의 걱정 속에

말로만 듣던 WORKING HOME ZOMBIE (재택근무 좀비)가 되는 것 같은 느낌.

회사 다닐 때는 멀쩡했던 몰골이.. 점점 거칠어짐이 느껴졌다


이건 아니다.

라는 외침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웹서핑으로 재택근무가 많은 미국에서 발행된 기사와 사례들을 읽어보며..내가 아주 전형적인 재택근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동과 목적에 따른 공간의 분리가 필요한 이유

초기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집에서 일한다는 편안함을 백분 활용하여 소파에서도 일하다, 식탁에서도 일하다, 침대에서도 일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양이 많아지고 때마침 글 써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과정에서 점차 집의 모든 공간이 결국 나의 '일터화' 되어가고 있었다. 밤에 자주 진행되는 한국과의 콘퍼런스 콜 (한국과의 시차가 14시간인 까닭에 주로 나의 저녁시간에 한국팀과 전화 미팅이 진행되었다)이 잦고, 그 전후로 업무 관련 일을 고민하는 시간 등이 붙다 보니...일을 끝내는 시간의 경계가 조차 점차 모호해지고 있었다. 컴퓨터를 끈 뒤에도 일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 이어지자..결국 나의 모든 시간이 ‘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식탁은 밥을 먹는 곳이자 내 일터가 되었고, 주방은 요리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메일을 체크하는 곳, 소파는 쉬는 곳이기도 하지만 공유 드라이브의 이미지를 검토하는 곳이 되어 갔던 것.


일과 개인으로의 나의 삶이 공간속에 모두 한꺼번에 어우러져 여러 가지 일이 군데 섞여버리고 있었다.


바로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속에서, 정말 딱 한가지 방법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읽었던 책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가능하다면 한 가지 습관이 일어나는 맥락을 다른 것과 섞지 않도록 하라.
맥락들을 섞기 시작하면 습관들도 뒤섞인다.
그러면서 더 쉬운 일을 하게 된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사실 집이 아주 넓어서 일을 할 수 있는 서재가 따로 있고, 식탁에서는 밥만 먹고, 소파에서는 영화감상만 즐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뉴욕의 좁은 아파트에 사는 나에게 공간을 크게 띄어서 맥락을 나누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었다. 아마, 서울에 있는 많은 젊은 부부들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3 bed room인 한국의 아파트에도 살던 시절에도 침실, 1개는 드레스룸 , 1개는 아이방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끝에 내가 찾은 방법은 이랬다.


식탁 특정 위치의 어떤 의자를 나의 업무공간으로 삼았다.

아침이면 출근시간에 맞추어 그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지정한 그 의자 앞에 노트북 거치대를 고정으로 설치해 두고, 일을 하거나 공부, 글을 쓰는 것 같이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6인용 식탁 중 한편은 나의 사무실이 되었고, 나의 업무와 글 관련 자료들이 쌓인 곳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밥을 먹을 때는 일할 때 앉는 의자와 거리가 먼 곳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소파나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니 그쪽으로 일과 관련된 내용들을 가져가지 않는다.


통신 기기에 따라 활동의 영역을 나누었다.

컴퓨터는 일을 하거나 글을 쓸 때만 사용하고 그 외 책을 읽거나,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은 개인 활동 영역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핸드폰과 태블릿을 활용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잊지 않도록 내 노트북 옆에 작은 메모를 붙여두었다. 이 곳은 나의 회사입니다


그렇게 공간과 물건을 나누니.. 행동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집중의 신호'

집안이 일터이자, 집안이 쉼터인 재택근무.


'주부'이자 '엄마와 아내(또는 아빠와 남편)', 그리고 '개인으로의 나', 그리고 '일해야 하는 회사원으로의 나' 이렇게 다양한 자아가 한 공간에서 공존 중인 상황에서는 각각의 역할로부터 온전히 분리되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매우 매우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한번에 손에 쥔 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어떤 사람도 이 모든 역할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글링도 여러 가지 공들을 시간 차이를 두고 하나씩 공중에 띄울 때나 가능한 것. 즉, 각각의 것들을 다른 역할들과 나누어 온전히 집중할 때만, 온전한 운영이 가능해진다.


일반적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회사로 걸려오는 집안일 관련 전화나, 회사에서 처리해야 하는 아이 학원 등록, 집에 필요한 비품 구비 등등으로 일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십상인데... 하물며 그 모든 것이 눈 앞에 널려있는 경우는 어떠할까? 일을 하다 눈앞의 널린 종이들을 치우고, 그러다 바닥의 먼지를 청소하고, 어쩌다 집어 든 핸드폰으로 SNS의 늪에 빠져 잠시 헤엄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바로 전에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이 보이는 일거리를 보며 스스로의 산만함을 자책하는 상황. 마치 금붕어처럼 3분 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일에 신경 쓰고 있는 스스로의 하찮음과 산만함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수 있다.

그래. 이 무거운 머리는 왜 달고 있냐는 생각이 절로....

또한, 해이해진 집중력은 결국 더 긴 노동시간만 가져올 뿐 하루의 생활에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낮은 집중력으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지게 되면, 결국 그 뒤에 처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거나, 저녁에 아이가 자고 난 뒤 결국 못 한 일은 늦은 시간까지 더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그러고 나면 밤까지 이어진 컴퓨터와의 데이트로 숙면하지 못해 쌓인 피로가 누적되어 다음날 아침에 따라오는 다크서클은 부록이었다.


원래 재택근무를 시작했던 이유가 회사로의 출퇴근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아이'와 '나 자신'을 위해서 좀 더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문제 상황을 무시하고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일의 성과 역시도 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개선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행착오 끝에, 내가 나에게 보내는 몇 가지 신호를 만들기로 했다.

1단계 ) 이어폰을 낀다.

2단계 ) 일을 시작할 때 집중을 돕는 특정 음악을 틀며 시작한다.

(나의 경우는, 아이폰 library에서 지원하는 "Deep concentration- Brain Stimulation Music, Focus on Studying, Study Examination"을 주로 활용했다)

3단계 ) 충분히 일에 몰입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음악을 끄되, 이어폰은 그대로 유지.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의 경우 과거 학창 시절을 돌아보아도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멀티로 할 수 있는 경우의 사람이 아니라서... 클래식이라 하더라도,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것은 좀 어렵던 그런 학생이었더랬다.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머릿속으로 막 집중해서 고민을 하기가 어려운 습성인지라,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는 어려웠지만... '음악'자체가 뇌 자체가 '집중모드'로 들어가는 방아쇠 역할을 하도록 해주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매우 효과가 있었다. 그 후에는 음악은 듣지 않더라도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행위 만으로도 '나는 지금 일하는 중, 집중!'이라는 시그널은 유지가 된다고 해야 할까.

파블로프의 개 ( 출처 : http://ko.experiments.wikidok.net)


대표적인 고전적 조건 형성 실험인 파플로프의 개를 통해서 이미 우리는 '환경'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 많이들 알고 있다. 운동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루틴을 반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특정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무언가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주변 환경(소리, 냄새, 촉감 등)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의 시작에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재택근무= 근무시간 중 집에서 가사를 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자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했을 때, 남편은 내가 일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그 일이 회사에 출퇴근하여 물리적으로 집을 비우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인지 직접적인 체감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분명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관련된 대소사나, 본인이 집에서 챙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 전 내가 잠시 전업주부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요청을 하고 있었던 것. 또한, 출퇴근하며 일하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가사나 육아에 대한 참여는 되려 좀 더 낮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존재했다. 당연히 내가 일을 시작한 뒤 집은 전보다는 덜 깨끗했고, 처리해야 하는데 미루어지는 일들이 생겼었는데...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 속으로 '일하다가 잠깐 그거 처리하고, 일하다가 잠깐 설거지 하고, 일하다가 잠깐 그것 좀 치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는 의문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완벽한 주부는 아니었어도, 온전히 집안일을 전담해서 처리하던 내가 그 에너지의 일부를 일하는 쪽으로 돌려야 했으니 내 눈에는 당연한 상황이지만, '재택근무'라는 근무형태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그에게는 '놀며 일하며'의 다른 버전 같이 보였던 것일까... 고민하던 끝에.


남편에게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명확히 이야기했다.


재택근무라고 해서, 내가 일하는 시간 중에 다른 일을 마음껏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이로 이해 부족한 가사나 육아에 대한 부분은 가족 구성원인 남편의 도움이 매우 필요하다는 점.

재택근무를 택한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또 타인의 손을 빌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지금은 정서적으로 부모가 바로 곁에 있어줄 필요가 있어 결정한 것이라는 점.

남편이 미팅 중에는 통화가 어렵듯, 나의 출근 시간은 남편과 아이가 회사와 학교로 떠나고 8:30분이니 이후는 내가 회사로 출근해서 없다고 생각하고 존중해줄 .

가사에 있어서는 이러저러한 부분은 남편이 담당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


그리고, 나 스스로는 물론 가족들이 이 부분을 모두 인지할 수 있도록, 내가 정한 출근 시간 8:30분에는 나도 일하는 사람으로의 출근을 위해 하이힐 까지는 아니더라도 외출을 해도 무방할 정도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일할 준비를 했다. 이는, 다른 가족들이 '아 이제 일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물론, 나 스스로가 아내, 엄마의 역할을 잠시 접고 일하는 모드로 들어갔음을 일깨우는 방법이 되었다. 또한, 남편 역시 함께 일하는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고 주말이면 우렁각시로 변신하여 청소면 청소, 요리면 요리, 육아면 육아.. 내가 전업주부였던 기간동안 잠시 내려놓았던 부분들에 대한 레벨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조금 나의 재택근무와 일, 가사, 육아는 조금씩 자리를 잡나 싶었다.

그런데, 역시 인생은 쉽게 가지 않는다.

아이가... 방. 학. 을. 했. 다.

아마 딱 이 상황이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대한민국의 수많은 회사원인 엄마& 아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일 듯하다.


방학을 하고 집에 있게 된 이제 여섯 살이 된 딸아이는, 엄마가 일해서 돈 벌어 오는 것보다 곁에서 책 읽으며 놀아주기를 바라고 함께 종이접기를 하며 깔깔거리기를 바랬다. 왜 회사는 방학을 안주냐고 불만스러워하며 잠시도 곁을 떠나 일에 집중할 시간 따위는 만들어 주질 않았다.


그러니...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하는 재택근무란, 퇴근 후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모니터를 보아야 하는 딱 아래와 같은 [몸과 마음도 불편한 상황] 되시겠다. 여섯 살도 이런데, 하물며 더 어린아이들은 오죽하랴...... 아마 추측해 보건대, 무릎 위에 앉히고 얼러가며, 업고 안고 서서 일하는 부모들이 허다하리라 살짝 예상해본다.

출처 : 고용노동부 일 생활 균형 블로그

디즈니 만화영화와 각종 장난감 투입으로 약간 벌어 둔 시간들은 고스란히 일하는데 가져다 바치고 나면, 아이의 배꼽시계가 문제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에 중간중간 간식 2번.

"엄마 놀아줘"는 적당히 못 들은 척할 수 있어도, "엄마 배고파"에는 일하던 손이 멈출 수밖에. 그리고 이런 경우는, 위에 언급한 갖가지 집중과 공간이 분리도 사실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효과도 없다.


부모로서 아이를 기쁘고, 등 따습고 배부르게 키우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기에 당장 눈앞의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채는 데는 장사가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혼돈 속에 다가왔던 아이의 첫 방학과 함께 한 재택근무는... 이도저도 제대로 못하며,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일만 한다고 입이 나오고, 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는 집에만 데리고 있던 채로 시간이 흘러버려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하던 노트북 너머로 혼자 놀고 있던 딸. 미안한 마음이 쌓여가는 풍경이다...ㅜㅜ

이런 경험을 한번 거치고 나자, 그 뒤에는 방학 전에 미리미리 여러 가지를 사전 기획해서 재택근무와 아이의 방학이 마주하며 생기는 혼돈의 카오스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애쓰게 되었다.


v 식사는,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얼려두었다가 조금씩 소분해서 아이를 만들어 주고,

v 간식거리는 통에 담아두고 아이가 먹고 싶을 직접 꺼내와서 나에게 보여준 먹을 있도록 했다.

v 그리고, 사먹고 먹여도 된다. 대신 놀아주자!

v 엄마 놀아줘.... 에 응하는 기술도 조금 늘어갔다.

1) 몇 살 많은 동네 언니가 와서 놀아주도록 미리 이야기해두거나 2) 정 안되면 베이비시터를 불러보고 3) 친한 친구네 가서 놀다 오는 플레이 데이트를 잡아두고 4) 반나절 정도는 각종 캠프에 보내보았다. 그렇게 조금씩 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v 회사와 이야기해서 주말로 넘겨서 작업해도 되는 것들은 업무 일정을 일부 조정하여 주말에는 아이가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집에서 일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직원 개개인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려 노력하는 회사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부분!!

아이가 자고, 눈물 어린 시간을 모아 겨우 마무리 한 일도 끝나고 나면.

v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운동을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녁에 아이가 잔 뒤 요가를, 어떤 날은 술을 한 잔 하기도, 또 어떤 날은 붕어싸만코를 뜯어먹거나 남편과 한국 예능을 돌려보며... 말도 못 하게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나의 재택근무를 둘러싸고 모두가 조금씩 함께 또 달라져갔던 듯하다.



재택근무는 분명 굉장히 활용하면 좋은 근무형태임에 분명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유능한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 방식이고, 직원 입장에서는 출퇴근에 허비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상황으로 집에 있어야 하는 경우에도 업무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여 업무 공백을 줄여주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나 같은 워킹맘에게는, 아이와 일을 둘 다 챙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 전제가 필요하다.


직원 입장에서는 본인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 내야 할 것이고, 모니터링하는 사람이 없는 환경이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은 그 이전에 출근 일수만 채우면 따라오는 급여가 아니라, 전적으로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급여체계가 먼저 시급할 것 같긴 하다.) 또한 회사에서는 원격으로 일해도 무리가 없도록 출퇴근 시간이나 회사라는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를 먼저 없애는 것은 물론, 이러한 근무가 가능한 인프라의 구축 또한 필요하다. 회사 내의 랜선으로만 접속이 가능한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라, 클라우드 기반의 정보 공유와 같은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직원 입장에서는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쌓기 어려운 고립감의 극복의 일환으로 회사로 출근하지 않더라도 인근의 co-working space를 활용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 이와 같이 사람들을 위해서 단순히 일하는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형성도 도와주는 비지니스가 점차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The Wing(https://www.the-wing.com)의 경우 육아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은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공간 내에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재택근무를 위한 기반 시설 및 회사내 문화가 이미 보편화 된 미국에서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회사가 어느정도 성장을 이루기 까지 일부러 재택근무할 직원을 뽑아 회사 운영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경우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또, 작은 스타트업들의 경우 처음 시작이 누군가의 집 방 한칸인 경우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동시에 집에서 재택근무 하는 상황으로 인해 벌어지는 웃지못할 다양한 해프닝들이 소개되고, 재택근무에 대한 사람들의 희화화도 넘쳐나는데...


언젠가 the NewYorker 더 뉴요커 매거진의 만화에서도 재택근무자를 애환을 다룬 만화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일상화 되었어도 쉽지 않은 것이 재택근무인 셈이다.

" 잘 기억이 안나는데...내가 집에서 일하는거야 아니면 일하는데서 살고 있는거야?" - 더 뉴요커 매거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 덕에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된 대한민국의 재택근무 활황기.


어차피 '재택근무'라는 옵션을 검토해 보게 된 것, 이 참에 긍정적인 부분을 더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이, 회사의 직원들이 이런 부분들을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조금은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일은 꼭 회사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회사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능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개인의 사정에 따라, 근무 형태의 유연함을 제공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다는 점과...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에 걸맞게, 각 회사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의 구축을 검토해볼 시점이라는 것. 이런 부분만 우리가 이 참에 확실히 고민하게 된다면... 또 한 번 훌쩍 강해지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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