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사라졌다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았던 어느 5월.

by 맨모삼천지교

그 날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찬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이제 정말 봄이 왔구나 했다. 따로 회사에 휴가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쌓여있어,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들린 병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야외 정원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으로 채광이 좋던 1층과 달리, 내가 진료를 기다리던 3층 복도는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그런 회색 빛이었다. 안 그래도 만성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멍한데 천장의 형광등이 어찌나 깜빡이는 지 … 두통으로 눈이 욱신거렸다. 차라리 형광등이 나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찌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수명을 다한 형광등이 꺼졌다. 아직 불리지 않은 내 이름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고개를 가만히 기대니 뒤통수로 오돌토돌한 병원 벽면의 질감이 와 닿았다.


"모양이 안 좋네요.

보통, 아무 문제가 없는 양성 종양일 경우 물방울 같이 모양이 매끈하게 떨어지는데... 지금 이 부분 보이시죠? 이런 경우 암일 수 있으니… 일단… 조직 제거 수술과 조직검사를 함께 바로 진행하죠. "


오래 입으셨던 듯, 닳아 보이는 흰색 가운의 선생님의 담담한 이야기를 끝으로 회사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니면 울면서 집에 갔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디론가 향하던 택시의 창문을 내려 내민 손 끝 너머에 닿아 있던 봄에 대한 기대감을 덮었던 불안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은 늘, 언제나 부족했다. 아침마다 이미 출근한 남편 없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나오는 등원 전쟁이었고. 회사에서는 출근하고 돌아서면 퇴근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 눈이라도 한번 마주하기 위해 저녁 식사는 헌납한 지 오래였다. 아무리 바빠도 계절이 바뀌기 전에 한 번씩은 만나던 친구들도, 출산과 육아라는 삶의 경로를 지나며 생존신고에 가까운 안부만 나눌 수 있었다.

힘들지만, 버티면 나아진다고 생각했기에 다들 말할 기운도 없이 입을 다물고 묵묵히 지나고 있었다. 모두가 그랬다. 매일매일이 비슷하지만 어제보다 또 힘든 날들의 반복이었고, 그 날 역시도 수많은 워킹맘들의 다르고도 비슷하게 정신없는 하루일 수 있던 그런 날이라 생각했는데.


예정에도 없던 엔딩 크레디트가 눈 앞에서 올라가버린 거다. 너무나 갑자기.


오래된 나의 꿈은 ‘작가’였다.

그것도 ‘드라마 작가’.


나만의 공간에 끄적이던 내 이야기 속에서는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서로 상처 주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를 바랐고, 가슴 저미는 슬픔이나 치열한 분노보다는 잔잔한 위로를 전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인간극장’처럼 길고 오래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 내 드라마의 에피소드의 시작이자 이야기의 중심은 늘 ‘나’였다. 스토리텔러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나의 삶은, 나의 드라마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며 가족 안의 ‘나’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견과 이익을 더 존중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연'의 역할이 주어졌다. 열심히 공부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한 21세기의 여성이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만, 결혼 후 주어진 나의 역할과 그에 따른 권리는 한 세대 위인 친정 엄마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동갑내기 남편 역시, 분명 결혼의 과정까지는 오롯이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려 애썼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 있는 아내의 모습은 전업주부인 본인의 어머니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21세기의 현실적인 맞벌이 부부였지만, 그 안의 모든 사고와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철저히 18세기의 그 무언가였던 듯하다. 아내인 동시에 며느리, 그리고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일하는 사회인인 내가 오롯이 ‘나 개인’의 입장과 권리, 이익을 말하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입덧과 함께한 출퇴근길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서 먼저 알아버렸다.

기본적인 나의 욕구도 가정 내의 위계질서에 얹혔을 때, ‘도리상’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도 있었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의 취미는 내가 앞에 놓은 모든 일들 중 우선순위 최하위로 두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도 열심히였던 '엄마'라는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받고 거부받는 눈길을 마주하고 나니 막막했다. 그러나 답도, 대안도 없다 생각하며 그 틀에 나를 맞추어갔다.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고통도 점점 익숙해지고 무뎌져 갔고 익숙해졌다.


그렇게 엄마가 되고 다들 사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다들 해야 한다 이야기하는 쪽으로.
내가 보고 싶은 사람보다는,
봐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의 취향보다는,
모두가 맞다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꿈이라고 하던 글을 끄적일 새도 없이, 생각을 접고, 취향을 접고, 의견을 접고 살아가며 나를 회색빛으로 감추어 가던 시간이 쌓이던 한편에서 나의 작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생기를 뿜어내며 자라고 있었다. 그 색에 매료되어 지켜보느라, 그리고 그저 그렇게 주변을 지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말하는 소리에 둘러싸여 정작 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어야 할 내가 말하는 방법을 잊었다는 것도 몰랐다. 아이는 엄마의 청춘을 먹고 자란다니, 이제 나의 삶은 오롯이 아이를 위해야만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가지 못한 말들이 쌓여
몸 안에서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 날 병원 진료실에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 날, 그 시간 이후.

내 몸안의 불청객을 쫓아내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잘못되었던 과거를 다시 잡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건강을 돌아보아야 했고.

나의 행복을 생각하고.

나의 취향과, 취미를 다시 떠올리고 과거에 내가 내렸던 결정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이유와 그때 내가 했어야 했던 말들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비슷한 길을 지난 여성이자 엄마인 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들어보기도 하고,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나의 의견을 솔직하지만 담담히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어쩌다 흘러오게 된 이국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각국의 여성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사회에 대해서 듣고 한국의 여성이자 엄마인 내가 택했을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되뇌어보았다.


그 무엇보다 '나'에 집중했던 이유는, 결국 내가 나를 잊고 나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은 결과 나의 아이도 나의 가정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이자 여성으로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던지는 의문과 생각의 과정들을 기록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나만의 인생 드라마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딸로 태어난 나의 아이 역시도 훗날 또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또는 가정을 꾸리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살더라도 나와 같이 자신을 잃는 실수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어설퍼도 서툴러도 쓰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에선가 나의 글을 읽고 있을 수도 있는 이름 모를 수 많은 그녀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당신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의 나도 이렇게 고민중이라고. 그러니 함께 멈추지 말고, 스스로를 놓는 실수를 하지 말고 걸어가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