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에서 마이너로

주인공 에밀리가 아닌, 민디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자꾸 보인다 말이오.

by 맨모삼천지교

전형적인 미국 회사인 에스티로더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 후 로레알, 크리스찬 디올, 르네휘테르...같이 전형적인 프랑스 브랜드에서 일을 하며, 막연하게 다르다 생각한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의 차이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낀 적이 꽤 많았다. 일 년 내내 120%로 달리는 미국 회사와, 바쁠 때는 200%로 밀어붙이다가 휴가시즌에는 50%로 가라앉는 프랑스 회사는 업무 진행 방식과 예산작업 등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도 같은 부분이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곳은 한국 지사인 관계로... 한국 시장의 특성이 버무려지면 사실 프랑스나 미국 본사보다는 훨씬 더더더더 일을 많이 하는 편이긴 했다.)


뭐... 그 와중에 찾은 공통점이라면,

중국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짜장면이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중국음식이 된 것처럼. 본사가 각기 미국과 프랑스인 이 회사들이 한국 지사에서 한국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무언가를 구현하면서 결국에는, 프랑스에도 미국의 느낌을 좀 가미한 한. 국. 회. 사. 가 된 부분이라고나 할까. 특히, 최고 경영자가 프랑스인이나 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는 경우는, 매우 한국적인 위계질서와 파벌싸움이 아주 빠르고 굳건하게 자리 잡는 것을 보게 되기도 했었으니까. 그렇게 프랑스식인 척하는 한국식과, 미국식인 척하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던 시간 속에 정작 공부도, 살아본 적도 없는 이 두 나라들에 대한 소소하고 시시껄렁한 러닝 포인트들이 쌓여갔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과 프랑스 두 나라 사이의 어떤 내용을 담은 콘텐츠 들을 보면 이 저자는, 또 이 감독은 과연 어떤 시선으로 이 사이를 들여다보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더 눈길이 가게 되고는 한다.

일테면.. 미국인 엄마가 프랑스에서 육아를 경험하며 쓴 책이라던지,

프랑스 아이처럼저자파멜라 드러커맨출판북하이브발매2013.03.20.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CEO인 프랑스 여성이 미국인들에게, 프랑스 여성들의 삶의 지혜를 따르라며 설파하는 책이라던지..(이 책의 저자인 미레유 길리아노는,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 그룹의 ceo를 맡기도 했던 유명한 여성이다. 재미있게도 현재는 뉴욕에 거주 중)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 다저 자미 레 유 길리아노 출판 흐름출판 발매 2016.01.18.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저자미레유 길리아노출판물푸레발매2007.07.05.


완전한 제삼자인 국가의 문화권의 사람인 동시에, 이 양국의 문화를 또 꽤 많이 도입해 누리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 항상 재미있는 포인트라고 늘 느꼈던 부분은 이 두 나라 사이에 교묘하게 자리 잡은 서로에 대한 선망과 무시의 분위기였다. 유럽은 미국이 역사도, 문화도, 전통도 없다며 무시하는 듯 하지만... 결국 미국식의 무언가가 세계를 제패하는 것을 목격하며 묘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반대로 미국 역시, 미국 내에서 '최고급'이라 설명되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유럽에 근거지를 둔 무엇일 경우가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유럽의 문화를 선망하면서도, 동시에 결국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중요한 순간에는 앞세우기도 했다.


특히, 뉴욕으로 이사 온 뒤에 실제 생활 속에 부딪히는 미국인들 내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유럽 문화 (특히 프랑스와 이태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과거에 정작 미국& 프랑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이해가 가지 않던 일들이 이제는 이해가 가게 되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현재 전미에서 시청률 NO.2라는 새로운 드라마의 알림을 받았다.

굳이 내가 좋아할 것이라는 추천 멘트까지 함께 온 이 드라마의 제목은

Emily In Paris
(한국 제목: 에밀리, 파리에 가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듯하다.


제목에서도 단번에 와 닿는 전형적인 미국 이름을 가진 "Emily"라는 여성이 이 극의 주인공. 대도시 시카고에서 살며 SNS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던 어느 날, 프랑스 브랜드 마케팅 컨설팅의 일을 하기 위해 예정없이 파리로 1년간 전근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제작자가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더니, 진짜 곳곳에 전작 속 캐리 브래드쇼의 귀여움과 좌충우돌이 에밀리에게도 묻어난다.


극의 초반에 너무나 명확하게 설명되는 파리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망의 눈길-파리의 빵을 먹고 경탄하는 장면, 그리고 영어로 말해도 프랑스로 굳이 꼭 답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들과 그 문화에 대한 '미국 시점'의 묘사 등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마치 오래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구는 미국식의 인사를 건네는 에밀리에게 프랑스식의 까칠한 싸가지로 환영 인사를 대신하는 프랑스의 동료들의 첫인사 장면까지도 전형적인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서로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고 있기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프랑스에 대한 전형적인 선입견들로부터 1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주말 드라마가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남편 노릇 못하고 엄마에게 휘둘리는 마마보이', '시집간 딸 뒷바라지하느라 더 늙어가는 친정어머니'와 '자기 하고 싶은 일은 다 해야 하는 가부장적 아버지' 같은 한국식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기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너무나 잘 와 닿는 이 모든 설정에 웃으며 시청 중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갑자기 재미있던 이야기가 훅 불편해졌다.

프랑스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혼자 공원에서 식사하던 에밀리는, 그곳에서 금발인 프랑스 두 아이와 함께 있는 아시안 여성 Mindy를 만나게 된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이 여성은 에밀리에게 친근감 있는 '미국식'으로 인사를 건네 온다. (이렇게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장면도 참으로 매우 미국식이다.) 그러면서 본인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며 자기를 소개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부터가 마냥 재미있지만 않았다

현재 프랑스 아이를 돌보는 내니(유모) 역할을 하며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상하이 출신의 그녀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 있단다.(그것도 인디애나 폴리스)

... 그런데 이 와중에 엄마는 한국인이란다.

아, 이 무슨 짬짜면 같은 소리인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이런 캐릭터가 유럽에서 또는 미국에서 '다소 멀쩡해 보이는 동양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선입견들을 다 섞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 Mindy라는 역을 연기하는 Ashley Park이, 실제 한국인이었기에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설정이 추가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중국 못지 않게 미디어 소비의 큰 시장인 '한국'을 염두한 것인가? 라는 추측도 해보았다. 여하튼, 중국인인데 미국 유학까지 한 그녀가, 프랑스에서 유모를 하며 애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역할 설정에 드라마를 보며 꿀꺽거리고 있던 맥주 맛이 갑자기 쓰게 느껴졌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맨해튼만 보더라도 제2외국어에 대한 미국 엄마들의 열망이 버무려져 아시안계의 내니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지금 아이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만 하더라도 방과 후에 데리러 오는 내니가 한 친구는 중국인. 한 친구는 일본인. 특히 중국계의 베이비시터를 쓰는 경우는 거의 100% 아이들의 중국어 교육을 위한 선택인 경우인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함께 노는 곳에서 '아시안' 엄마로 그 공간에 있다 보면 수많은 내니들과 어우러져 나 역시 엄마가 아닌 유모나 베이비시터로 오해받기 십상이라, 옷차림 하나도 어쩌면 한국에서보다 더 신경 써서 깔끔히 하고 나가게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Mindy라는 여성 조연의 인물 설정이 매우 불편했다. 멀쩡하게 차려입고 영어에 불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녀라도 결국 프랑스에서의 직업은 "Nanny(유모)"라는 것은... 이 드라마의 대부분의 등장인물과 사건이 전형적인 '선입견'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을 되돌이켜 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어지는 2화에서 Mindy가 사실은 중국계 거부의 자녀인데... 아버지의 의도와 다른 길을 가느라, 유모 손에 자란 본인이 정작 유모 일을 하고 있다며 주저리주저리 본인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장면 역시 미 서구권의 아시안 유학생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그 날 만난 친구에게 이런 나의 기분을 토로했다.


" 내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권에 대한 고정관념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볼 때는 즐거웠는데... 정작 나 역시 그 고정관념의 대상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나니 전혀 즐겁지 않아 졌어. 되려 불쾌했어. "


"그건. 네가 지금. 미국에 있기 때문에... 그게 더 민감하게 보이고 불편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어."


"응?? 그게 무슨...?"


"우리(미국인들)는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해. 그리고, 그런 테마 자체가 워낙 민감한 이슈잖아? 올해 흑인 인권 운동도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뉴스에서도 수도 없이 이 문제를 이야기했었지. 그러니 너도 모르는 새, 특정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다루는 것이 아마 전보다 더 불편해졌을걸?"


"음.. 그럴 수도 있으려나."


"그리고, 세상 모든 이야기는. 가장 통속적이고 가장 전형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기도 해. 왜냐면.. 어쩌면 그게 진짜 삶이잖아? 실제 우리 삶이 그렇잖아. 사회를 반영하여 그런 내용이 나온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 살고 있으니 그런 드라마가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우리 삶의 단면 아닐까. 나도 그 감정이 틀렸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걸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마:) 어쩌면, 네가 지금 이 대륙에서 [마이너 그룹]에 속해있게 되면서부터 더 이런 이슈를 신경 쓰는 것일 수도 있어."


친구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다고 하는 이 제작자의 이야기가 변한 것이 아니었다.

이를 바라보는 내가 변했을 뿐.


사회 속에서 내가 속한 위치가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변화하며
비슷한 매체에 대한
나의 감상 포인트도 달라지게 된 것.
전형 상관없던 부분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2000년대 중반, 사회 초년생 시절 드라마 Sex and the City를 한국에서 시청하고 있던 나는 그 드라마 속의 여자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에 더 감정 이입하며 즐기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사회 초년생은 한국 사회의 '메이저'로 가는 단계의 시작점을 막 밟기 시작한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 뉴욕을 내 집처럼 살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캐리의 모습은 당연 이미 완성된 형태의 그 무엇으로 느껴졌고, 화려한 캐리와 친구들의 삶을 선망하며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의 삶에 더 공감하며 늘 즐겁고 재미있는 마음으로만 시청했었다.

극 중, 샬럿이 재혼 후 입양한 아이가 중국계인지 한국계인지 알 수 없는 아시안 여자아이인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인종의 멜팅팟이라는 뉴욕에서도, 그녀의 주변인이 오롯이 거의 모두 백인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2020년 미국에서 제2의 섹스 앤 더 시티라 칭해진다는 이 드라마 'Emily in Paris'를 보며, 내가 나를 집어넣게 되는 것은 '주인공'인 여성도, 드라마의 배경도 아닌, 극 중 이 '조연이자 조력자인 아시안 여성'이 극 중에서 어떻게 설명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더 눈이 간다. 주인공의 직접적인 조력자 역할에 '아시안' 인물을 배정했다는 것이 괜찮다 싶기도 하지만, 본인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에밀리에 비해 Mindy의 직업이 '유모'라는 사실은 매우 불편하다.


그 날 헤어지기 전.

친구는 나에게 "드라마는 드라마야. 그냥 봐! 그리고 너 그렇게 사사건건 인종 설정이 거슬리는 것도 꽤 Americanize (미국 인화)된 거다?!" 라며 놀리고 떠나갔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요, 영화는 영화다. 다큐가 아니 픽션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냥 편하게만 이 드라마를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진짜 있을 수도 있는 무언가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캐리의 삶을 보며 뉴욕에는 다들 저렇게 하이힐 신고 고층빌딩 숲을 오가며 열심히 사는 커리어 우먼이라 생각하며 언젠가 한번 와보기를 꿈꾸었듯이. 전혀 파리와 상관없는 곳네 살고 있는 누군가 역시 이 드라마를 보며 무언가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 속의 Mindy(민디)를 좀 더 지켜 볼 예정이다. 부디 프랑스 아이들의 내니로만, 에밀리와 저녁이나 먹으며 한담이나 떠는 돈 많은 하는 일 딱히 없는 그런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이전 04화미국식 고부갈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