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그곳으로

마음도. 속도 편한 엄마의 식탁으로.

by 맨모삼천지교

어제 배달 온 양배추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싱크대 위에 올려본다. 여섯 살 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양배추를 끙 소리와 함께 소리와 함께 꺼내놓고 보니, 겉 잎은 여기저기 좀 부딪혔는지 생채기가 나있다. 양배추는 농약을 많이 뿌려야 예쁜 모양으로 팔기 좋게 자라는 야채니 꼭 여러 번 씻으라는 친정 엄마의 신신 상부를 다시 상기하며 도마를 꺼냈다.


'반은 좀 크려나. 오늘은 1/3만.'

큰 칼을 꺼내 도마 위에 놓인 양배추에 칼 끝을 꽂아 넣고 시소를 타듯 손목에 힘을 주어 썰어 내렸다.


사각. 쫘악.


기분 좋은 소리에 양배추의 속이 신선하게 익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허리를 살짝 굽혀 주방 아래 서랍장 입구에 자리 잡은 유리 볼을 꺼낸다. 쪼로로록 찬 물을 받아 상처 나고 시든 겉 잎을 떼어낸 양배추를 넣는다. 식초를 꺼내 대충 슬쩍 부어준 뒤 손가락을 휙휙. 양배추를 넣기 전에 식초를 먼저 넣었어야 하는데.... 또 반대로 해버렸다. 하지만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색이 잘 눈에 띄지 않는 백식초라 잘 섞였는지 안 섞였는지 구분이 안 가지만 부디 잘 섞여서 양배추 잎에 묻어 있는 농약을 씻어내 주길.


중간 크기의 냄비를 꺼내 찜기를 넣고 그 위에 새로 받은 정수물을 부어 넣고 불을 올린다. 늘 가스가 조금 새다가 불이 붙어 요리할 때마다 가스 냄새에 인상을 쓰게 만드는 왼쪽 화구는 불을 붙일 토치가 필요하다. 깨금발로 아이 손이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은 선반에 올려둔 파란색 토치를 꺼내어 오른손에 잡고 조심스레 가스레인지의 레버를 돌린다.

기분 나쁜 가스 내음이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전기 인덕션으로는 상상도 못 할 강렬하게 순간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꽃은 배고프다며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노라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보글보글

냄비 물이 살짝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양배추도 소독이 다 되었겠지.'

담아두었던 식초물에서 물을 먹어 좀 더 묵직해진 양배추를 꺼내 오른손으로 들고, 왼 손으로 유리볼 안의 물을 쏟아 버린다. 그리고는 흐르는 물에 볼을 두어 번 헹구고 물을 새로 받아 그 안에 식초물에서 막 탈출한 양배추를 다시 한번 담가 헹군다.

자 이제, 다 씻은 양배추를 이제 팔팔 물 끓는 소리가 나는 냄비의 뚜껑을 열고 찜기 위에 얹는다.

이제 5분. 오늘의 저녁 식사 메뉴로 갓 삶은 양배추와 된장찌개를 올릴 예정이었는데, 그 마지막 주자의 준비가 다 끝났다.


외할아버지의 별명은, 부리부리한 눈매에 목소리도 풍채도 크신 외견과는 전혀 상관없는... '꽃밭머리 할아버지'였다. 집 뒷 산에 만개한 진달래 꽃이며, 철쭉나무가 사람이 헤치고 올라가기도 어려울 만큼 빼곡하여 봄이면 늘 시선을 잡아끄는 꽃으로 뒤덮인 산 앞에 자리잡은 큰 집 덕분에 생긴 예쁜 별명이었단다. 그렇게 봄이면 꽃이, 가을이면 밤이 가득 매달리던 산이 있고,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가득했던 외갓집에서는 쌀은 기본이요 호박, 깻잎.. 철 따른 과일과 손수 만드신 두부며 떡까지 담긴 풍성한 계절을 늘 우리 집 식탁으로 보내주셨다. 덕분에, 엄마의 밥상은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도 꽃밭처럼 충분히 매력적이고 계절마다 색달랐다.


그런데 하루에 3번, 일주일이면 스물한 번을 꽉 채우던 엄마의 밥상은 우리가 '공부하는' 학생이 되고 난 뒤 급격히 하루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전날 공부한다는 핑계로 늦은 밤에 잠든 여파로 비몽사몽 일어난 아침의 입맛은 모래를 물고 있는 듯 까끌했고, 때문에 간신히 주스나 우유 한잔 마시고 뛰어나가는 아침이었다. 점심은 학교에서의 급식, 그 후 저녁은 학원이나 독서실 근처의 식당에서 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 후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게 되니, 식탁에서 마주하는 엄마의 음식은 주말의 한두 번이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쩌다 먹게 된 엄마의 식탁은 나에게 전처럼 매력적이지 않았다.

고루했다.

재미없었다.


한번 맛을 들인 달고, 맵고, 짠 음식 사 먹는 음식들의 향연은 엄마의 건강밥상 보다 더 매력적이었으니까. 엄마의 한식탁에는 없던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식탁으로 인해 엄마가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고, 외갓집에서 보내주시는 신선한 재료들은 안 먹고 버려지지 않도록 바로 냉동실 안으로 직행하는 경우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서히 엄마의 식탁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침은 라테 커피, 점심은 회사 근처의 밥집, 저녁은 약속 장소에서의 외식이나 건너뛰기 일쑤인 20대를 지나 나의 가정을 꾸리고 나의 식탁의 주인인 엄마이자 주부가 되었다. 엄마가 되면 다 요리를 잘할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만큼 재빠른 배달음식의 스피드함과 주문 기술의 발달은 늘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의 요리를 향한 의지보다 강력했다. 여기에 '전문가의 손길로 조리된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다'는 매우 적절한 이유가 더해지자, 외식과 배달음식으로 채워진 내 가정의 식탁은 그대로 영원할 것 같았다.


내가 만드는 것보다 빨리, 내가 만드는 것보다 맛있게, 그리고 내가 만드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메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엄마가 채워주었던 나의 유년 시절의 식탁과 달리, 내가 주인인 우리 집의 식탁에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음식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사 오게 된 뉴욕이라는 도시 역시 세계적인 레스토랑들이 빼곡한 외식 천국인 것은 물론, 한국보다 어쩌면 더 활발하게 모든 음식의 배달이 가능했기에... 더 많은 국적의 요리와 요리사들이 우리의 식탁을 도맡았을 뿐 그 안에 내 역할은 미미했다. 십 대 이후 눈을 뜬 화려한 맛들에 길들여진 혀는, 아마도 코로나로 모든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모든 식당이 문을 닫고 외식은커녕 일체의 배달까지 중단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식탁은 그렇게 쭉 흘러갔을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참으로 앞을 알 수 없어 재미난 것.


2020년 3월. 코로나를 직격탄으로 맞은 뉴욕의 모든 도심은 급속히 마비되었고, 식당의 영업은 중지되었다. 그나마 배달로 매출을 간간히 이어나가던 레스토랑들 역시, 무서운 기세로 증가하는 세계 제1의 확진자 증가율과 어마어마한 사망자 숫자의 영향에서 번외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접점에 있을 수밖에 없던 식당의 직원들이 코로나에 시달리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생기자 결국 그 마저도 중단하는 곳들이 속출했다. 결국 우리 집 식탁 역시 간신히 조달한 식재료와 몇 안 되는 나의 레시피들을 총동원하여 직접, 모두 다, 손수 요리해야만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울며 겨자를 한 입 한 입 씹어먹는 심정으로 책임지게 된 요리가 서툰 나의 식탁은 어설픔과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한 끼를 지나고 나면 주방은 초토화되어 치우는 것이 더 일이었고, 먹는 시간보다 훨씬 긴 조리시간과 정리 시간은 참으로 고되었다.


그렇게 한 끼가, 하루가, 일주일이 지났고.

두 달을 빼곡히 손수 만든 음식들로 식탁을 채우며 시간이 흘렀다.


요리 초보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신선한 재료를 열심히 씻고 손질하는 것, 그리고 모두의 건강을 위해 과하지 않게 간을 하고 매 번 새로 조리하여 오래지 않은 음식을 내놓는 것이었다. 자주 사 먹던 화려한 음식들을 흉내 낼 수는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엄마의 한식 메뉴들을 하나씩 흉내 내고 따라 해 보며 나의 식탁을 채워갔다.


그리고 길고 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던 5월의 어느 날.

우리가 자주 시켜먹던 레스토랑에서 다시 배달을 개시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이제 드디어... 갖가지 먹을만한 메뉴들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주문한 음식을 간절히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분명 아주 오래, 그리고 자주 시켜먹던 음식인데 음식들이 하나같이 너무 달고 짜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도저히 두 번 다시 시켜먹지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오래 영업을 쉬어 맛이 변했나?라고도 생각했지만, 비단 이 레스토랑의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 시켜본 다른 레스토랑의 음식들도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 매 번 먹고 나면 속이 어딘가 불편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한동안을 수 차례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여 먹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홀린 듯 젓가락을 가져갔지만, 다 먹고 난 뒤 입 안에 맴도는 짠 기운과 더부룩한 속과 배앓이에 어이없어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의아해하고 있던 6월의 화요일 저녁.

갓 익혀낸 양배추 잎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솥 밥을 한 숟갈 크게 넣어 돌돌 싼 뒤, 된장 한 젓가락을 올려 입안으로 밀어 넣고 오물거리는 아이를 보며. 견과류를 넣은 고소한 멸치 볶음을 한 입 크게 먹고 된장찌개의 두부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남편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몽글몽글한 계란찜을 떠먹고 난 뒤, 시원하고 매콤 시원한 깍두기를 국물과 함께 떠서 입에 넣어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의 식탁에는 어느새 쌉쌀한 깻잎 향이 물씬 나는 내가 손수 하나부터 열까지 만든 김밥의 맛을 즐기는 아이가 있었고, 친정 엄마가 보내주신 멸치로 우려낸 국물로 끓인 순두부찌개의 보글거리는 소리에 요리가 다 되기도 전에 수저를 들고 들뜬 듯 식탁 앞에 앉는 남편이 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만드는 화려한 음식에 마비되었던 가족 모두의 입맛이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가정식의 심심하고 간결한 맛을 즐기는 방향으로 돌아왔던 것. 그저 가족이 건강하길 바라며 하나하나 채워간 나의 식탁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깨끗하고 정갈했고, 순간적으로 모두를 매료시키는 화려함이 있지는 않아도 먹고 나면 속이 편안했다. 그렇게 오롯이 '나'의 식탁을 내 손으로 책임지게 된 순간부터 내 엄마의 식탁에 존재하던 기본 중의 기본들을 따라한 시간들이 쌓여 가족 모두의 건강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모두의 입맛 역시 건강한 음식을 감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며 너무 늦게 알게 되었음을 후회한다. 혹시라도 상한 부분은 없는지,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는 맞는지 심사숙고하며 재료를 고르던 엄마의 시간이, 국에 소금 한 스푼을 더하면서도 너무 짠 것은 아닌 지 고민하던 엄마의 순간이, 맛있게 먹고 건강하길 바라며 식탁을 차리던 엄마의 마음이 전해져...그 식탁에 앉아 있떤 우리 모두가 이 삶을 건강히 채울 힘을 얻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고 말이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서야 돌아오게된 엄마의 식탁에서, 늦게 깨달은 비밀을 나의 아이에게 전하기 위해, 오늘도 난 주방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