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 50가지 그림자

위기일수록 드러나는 사회의 민낯

by 맨모삼천지교

2021년 3월 11일.

온 도시가 죽어버렸던 날로부터 딱 1년이 지난날.

뉴욕에서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보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10일 뒤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대상 연령이 내려오더니,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3월 29일부터는 모든 30세 이상의 뉴요커들에게 접종 가능 공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4일.

16세 이상 모든 뉴욕 거주자는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접종이 매우 급속히, 대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나도 1차 접종을 마무리하고, 2차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 아주 고령자들만을 대상자를 위주로만 백신 접종이 진행되었을 때만 해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이 그대로 모두의 일상은 지속되었다. 그런데, 접종 연령이 조금 내려오고, '기저질환자 또는 필수 업무 대상자'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을 포함하여 접종 대상자가 확대되고.. 대상 연령이 조금씩 낮아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미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구경하는 중이다.

휴지를 사모으던 2020년.
백신 접종 관련 정보를 모아대는 2021년.

백신 대상자로 고려되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에 대한 신청을 개별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어떤 약(화이자, 모더나, 존슨 앤 존슨 등등 중 선택)을 어디에서(병원/약국/ 백신 보급소 등등) 맞을지까지 모두 개인이 선택해서 신청해야 하는 것은 물론, 거주지가 여러 곳이 사람들은 '어디서' 맞을지도 고려해야 했다.


백신 접종에 대한 신청은, 각 개개인이 다양한 백신 접종 장소들(동네 작은 약국, 큰 병원, 백신 접종 전문 센터, 주에서 제공하는 백신 접종 소 등등)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개별적으로 다 일일이 신청을 해야만 했다. 주 정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개인이 들어가 신청할 수 있는 수십 개 웹사이트 들의 링크를 모아놓은 정도랄까? 주에서 중앙에서 종합되는 정보라고 해야.... 'Vaccine finder(백신 파인더)"라는 웹사이트에서 어떤 종류의 백신이 어느 장소에 예약 가능한지 보고 예약하게 해 둔 것이었는데, 이 마저도 실시간은 아니고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만 일괄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덕분에, 해당 웹사이트가 xx시에 정보가 리뉴얼되고 '예약 가능한 스폿이 xx시 즈음에 생긴다'등의 정보(혹은 루머)가 사람들 사이에 떠돌기 시작했다.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가 없는 곳에서 각종 소문이 잔뜩 생겨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성향인 것일까.


주마다, 백신의 수급 상황에 따라 접종 대상자의 단계가 달라지고 있는 것 역시 관심을 놓치지 않아야 할 포인트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기자'나 '아나운서'와 같은 언론관계 종사자들의 경우 어떤 주에서는 [필수 업무자 Eessential Workers]로 분류되어 당연히 접종 대상에 포함되지만, 그렇게 간주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백신 우선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중앙정부의 기본적인 프로토콜이 없음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비단, 이런 특정 직군에 대한 이해의 경우만 달랐을까? 빠른 보급만큼 비어있는 허점들은 빠르게 드러났고, 그런 허점을 노려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시스템의 빈 틈에서 먼저 안전해지고 싶은 사람들.

개인이, 개별적으로 여러 곳에 백신을 신청해서 그중 가능한 우선순위로 맞을 수 있도록 해둔 미국의 구조적인 상황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남는 백신]을 잽싸게 낚아채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도대체, 어떤 경우로, 구조적으로 남아도는 백신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캐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캐리의 이야기>

백신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문자를 친구로부터 들은 뒤 불안해진 캐리는 총 5군데의 약국과 백신 보급소, 병원에 대기를 걸어놓은 캐리는 지난주 그중 한 곳으로부터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2차례의 접종을 마무리했다. 2차 접종 후 고열로 이틀을 앓아누운 사이, 이미 등록해 두었던 다른 곳들에서 접종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날아들었던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미리 예약 취소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문자를 확인한 시점에는 이미 많은 곳에 예약만 하고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후였다.


이런 경우 캐리 앞으로 예약된 백신들은 어찌 되었을까? 아무 연락 없이 당일 NO SHOW를 하는 백신 대기자의 약은, 고스란히 보관되었다가 차기 순번자에게 접종이 가능할까?

정답은 "불가능하다"라고 할 수 있다.

제약사별로 차이가 있긴 하나, 대부분의 백신의 경우 약제 원액을 한번 개봉한 뒤에는 특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해야만 하는 가이드가 존재한다. 한데, 여러 백신 접종 사이트에 예약을 해두고 본인 순번이 돌아왔을 때 이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상황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당일 개봉 후 사용되지 않아 버려지는 약제가 있을 수 있는 셈.

그래서, 이런 부분을 알아챈 사람들이 이런 허점을 이용하여 백신 대상자 군에 들어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맞는 케이스가 생겨났다. 특히 처음에는 우연히 운이 좋아서 생긴 일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이와 같은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이를 인터넷에 널리 알린 뒤에는 이와 같이 무작정 걸어 들어가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잘 알려진 성공 방식으로는 1) 방문객이 적은 약국을 집중 공략하거나, 2) 폐점 시간 전에 약국을 찾아가서 남은 백신이 있는지 물어보는 등이 있겠다.

발맞추어 각 백신 사이트에서는 No show 예약자들을 대비한 상시 대기자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접종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후기 또한 입소문을 타고 속속 퍼져나갔다. 대량으로 많은 인원을 접종하는 대형 접종 사이트의 경우 개별 병원과 연계되어 진행하는지, 갑자기 담당 주치의로부터 약제가 남는다고 맞으러 오라고 연락을 받고 달려가 맞고 오는 사람들의 케이스도 등장했다. 약사 입장에서는 폐기되는 것보다는 1명이라도 놓아주는 것이 집단 면역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던 사람들에게는 하늘에서 떡이 하나 떨어진 셈 되시겠다.


갑자기 없던 지병이 마구 생겨나는 사람들.

겉보기에는 너무나 건강하게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가지고 있던 '지병'을 널리 널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걔 중에는 정말 그간 소리 내 이야기하지 못할 지병의 소유자들도 있었겠지만, 분명 대상 연령이 아닌데 백신을 맞았다고 하는 경우는 '접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묻지도 않았는데 '사실은 내가 이런 지병이 있어서....'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실제 지병이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본인이 호흡기가 좋지 않다며 이를 기저질환이라 이야기하고 백신을 맞는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나는 곳 또한 미국이었다. '건강문제' 역시 개인의 매우 사적인 정보의 일환이라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실제 웹사이트 상의 신청 페이지만 넘어가면 현장에서 주치의의 소견이나 진단서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떤 곳은 심지어 거주지나 생년월일 등 기본적인 정보 확인도 없이 접종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입국자들이 늘어났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감이지만,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미국 내 체류하고 있던 한국인들이 부모 형제를 미국으로 거꾸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전에는, 미국에 있는 사람 중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미국에 비해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한국으로 도망가듯 대피하고... 아무도 오가지도 않는 시기가 한동은 지속되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백신 접종이 시작된 3월 이후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와 지내는 경우가 종종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앙집권적인 백신 접종 상황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지역에 따라 접종 기간 내 '체류'하고 있는 사람이면 다 놓아주는 곳도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경우에 따라 여행 비자로 미국에 온 외국인들도 접종을 받을 수 있는 현지 상황을 잘 활용하여 한국의 가족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이 비용과 위험(국경을 오가며 코로나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 한 선택이니 이에 대해서 누구도 무어라 이야기할 권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기존에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감내하며 견디고 있는 지구 상 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필요에 따라' 나라를 오가며 혜택만을 쏙쏙 골라 누리는 사람들을 곱게만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친절한 권유(라 쓰고 강권이라 하자ㅎㅎ)로 국토횡단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무려 15박 1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울릉도를 일주하고 속초부터 서울까지 걸어서 오는 학생들을 캠프였는데 중학교 학생들이 각 그룹별 대장을 맡고,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 10여 명이 한 그룹으로 움직이는 형태였다. [아이들의 독립심을 키워주고, 건강한 체력을 증진한다]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방송에도 보도되어 유명했던 이 캠프는 실로 평생을 가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집에 갈 수만 있다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할게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해 준 정말 혹독한 시간이었고, 전쟁이 나면 이런 몰골과 상황이 되겠구나...라는 것을 간접 체험한 시간이었다. 왜인고 하니, 미디어를 통해서 잘 알려져 있던 캠프 내용과 달리 실제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나오는 밥은 생라면과 물이요, 간식은 알사탕이었다. 각종 자연체험 프로그램들은 풀밭에서 쉬어가면 자연관찰이요, 바닷가를 지나가면 해양 관찰이었다. 비가 와서 밤새 걸어야 하는 날이면 밤하늘 관찰이 되기도.


배고프고 지쳤지만,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단도 방법도 모르는 아이들은 행군하다가 민간인을 만나면 "배가 고파요, 음식 좀 주세요, 도와주세요."를 남발하여 캠프에 간 아이들인지 거지 떼인 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였더랬다. 그렇게 '원래 이런 캠프들은 다 이렇게 밥을 주고 이렇게 힘든 것인가 보다' 생각하며 함께 간 동생과 함께 참았던 눈물의 15박 16일은, 약 2년 후 공금 횡령(아마 우리의 밥값이었으리라)과 사단 비리, 아동 학대로 캠프 운영자가 구속되고 재단은 공중분해되었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보고 16년 치의 분노로 바뀌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캠프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위기의 상황에 드러나는 인간성의 민낯]이 바로 그것.

재단 대표가 돈을 뒤로 가로채느라 아이들의 식사가 엉망이 된 결과, 약 300명의 어린이들(그것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 먹어야 할)을 위한 식사는 양도 내용도 형편없었다. 그 결과 늘 배가 고픈 아이들은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늘 종종거리는 상황이었는데... 유일하게 음식이 좀 풍족한 곳이 있었다. 바로, 그룹 대장들(중학생)과 운영진들의 식사였다. 그렇다 보니, 부족한 식사를 끝낸 후에도 수저를 들고 음식이 있는 이들 곁을 아이들이 기웃 거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써놓고 보니, 정말 1990년대에 있었던 일이 맞는가 싶다. 그런데 실화인 것이 더 어이가 없다.)


그렇게 모두가 어리고, 다 같이 힘들고 배고픈 상황이었는데... 자기보다 더 어린아이들의 배고픔을 대하는 중학생들의 대응은 정말 제각각이었다. 자기 밥 탐내지 말라며 윽박지르거나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그룹 리더가 있는가 하면,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한 수저씩 떠먹이는 그룹 리더가 있었다. 자기 밥그릇이 보이지 않게 수풀 속에 가서 아무도 못 보게 밥을 먹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주변에 아이들이 얼쩡거리는 것도 싫은지 거지새끼들이라며 배고픈 아이들에게 욕을 해대는 그룹 리더가 있었다. 운영진과 친해져서 뒤로 몰래몰래 간식을 빼돌려 오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 간식도 본인 몫으로 빼돌려 배를 불리는 리더도 있었다. 반면, 원래 자기에게 주어진 정당한 양의 음식을 남겨서 그룹 아이들과 나누어 먹는 리더도 있었다.


당시 5학년이었던 나에게 보였던 중학생이란, 정말 큰 언니 오빠들이자... 누구보다 성숙해 보이는 어른 이전의 사람들이었는데.... [음식]이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 앞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작은 성인들의 선과 악은 실로 충격적이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덕분에 나는 '극한의 위기 상황에 드러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후에도 오래오래 되새기며 살게 되었다.


그 날, '음식'을 둘러싼 청소년들의 인성의 민낯에 대한 기억만큼, 지금 백신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면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필요에 따라 나라 사이를 오가며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갔다, 백신을 맞으러 돌아오는 사람들. 묵묵히 순번이 오기까지 기다려 백신을 맞는 사람들과 빈틈을 찾아 우선순위를 확보하는 사람들의 면면 속에서 채 어른도 되지 않았던 중학생 그룹 리더들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한다. 영화 속 캐릭터를 빌어 늘 악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이 이 코로나 백신을 둘러싸고 미국 내 보급에만 집중하며 일체의 수출을 하고 있지 않는 지금의 미국의 모습에, 풀숲 속에서 자기 밥그릇만 챙기던 그룹 리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고작 중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보았던 모습들을 다 큰 성인들의 세상, 각 나라 간의 관계에서 또 발견하고 있는 지금이 의아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24555.jpeg 출처: https://www.statista.com/chart/24555/vaccine-doses-produced-and-exported/


숨 쉬는 공기와 먹는 음식처럼...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필수불가결의 그 무엇으로 향해가고 있는 코로나 백신. 부디 이 새로운 필수 요소가 우리 사회 안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모두의 '좋고 선한 모습'을 더 보게 되길 바라고 있다. 나누어줄 생각이 없거나 새치기하던 그런 모습이 아닌, 없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더 어린아이들을 달래던 고작 중학생이었던 작은 리더의 모습을 다 큰 어른들 속에서 더 볼 수 있기를 말이다.





참고 기사


https://www.poynter.org/reporting-editing/2020/will-journalists-be-considered-front-line-workers-for-covid-19-vaccines/


https://www.heraldtribune.com/story/news/local/2021/03/22/s-there-secret-waitlist-pharmacies-covid-19-vaccine-probably-not-in-sarasota-manatee/474788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