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교로 돌아가기로 한 이유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낫게 할 수 있으니까.

by 맨모삼천지교

이 이야기는 뉴욕 맨해튼에서 코로나로 저하된 학력수준을 걱정하며.....

차선책으로 홈스쿨링을 신청한 뒤, 병행했던 '러닝 포드(과외그룹)'에서,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게 되며 벌어졌던 일들을 기록한 네 번째 글이자 마지막 글입니다.




내가 태어나 자라온 곳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갑자기 아이를 키우게 된 나에게 부쩍 늘어난 한 가지와, 부쩍 줄어든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눈치'와 '염치'.

혼자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았던 젊은 날에는, 내가 알지 못해 놓치는 것들이 오롯이 나의 책임으로만 내려앉았었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 살게 된 외국은 내가 아닌 '아이'까지 챙겨야 하기에...내가 놓치거나 모르는 것으로 인해 아이까지 소외되거나 뒤쳐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눈치'껏 주변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화제, 그 즈음 챙겨야 하는 각종 행사들에 있는 힘껏 안테나를 뽑아 올려 귀를 기울이는 일상이었다. 그래도 잘 모르겠는 것들은 '염치'불구하고 주변의 다른 아이 엄마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그래야만, 안 그래도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아이가 가능한 [평범하게] 지낼 수 있기에 없는 사교성을 끌어올려 사력을 다하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아이들이 다들 가는 전시회에 대한 정보야 눈치와 염치를 동원하여 해결한다 치더라도, [가치관]이나 [문화]의 차이로 빚어지는 문제들은 이해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개인이 아닌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곳들을 통해 조언을 받고 해결책을 찾아왔다.


바로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과

그곳의 선생님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었다.




처음, 안네의 Bullying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에 대한 안네 엄마의 희한한 설명을 듣고도 바로 그 자리에서 딱 잘라내지 못하고 "...... 아... 그래?"라며 끝까지 듣고 있던 이유는 '[내가 모르는] 어떤 문화의 차이를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인 건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미국의, 뉴욕 내에서 소수자로 살며 누구보다 열린 사고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서있었기에, 단 칼에 [당신의 생각은 틀렸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그래서, 안네 엄마의 희한한 변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주변 지인들에게 묻는 일이었다. 특히, 이 뉴욕의, 이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아주 오래 산 사람들의 의견이 절실했다. 마음속으로 '혹시나' 했던 상황이 전화를 한 통 끊을 때마다, 문자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이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일 수 있다는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내가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다.

"그 러닝 포드에 있는 선생님은? "

"그렇게 누가 누굴 괴롭히는 상황에 가만히 있어? 아무 말 안 해?"

" 선생님한테 이야기 안 해봤어??"


모두가 궁금해한 것은, 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러닝 포드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선생님]의 역할이었다. 특히나, 개개인의 가치관이 [공공의 규칙]이라는 바운더리 없이 사정없이 부딪히는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중립의 역할을 해야 할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동안 미국에 이사 온 뒤 유치부 이전 Pre-K(4세 반)를 다니던 시절, 이번 상황과 유사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도 바로 선생님이셨고, 가해자 부모로부터 사과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 것 역시 학교와 교사분들이었다.

(그 시절 그 이야기... https://brunch.co.kr/@sunheean0305/14. 그러고 보니, 아이가 이러한 류의 괴롭힘을 당한 것도 미국에 와서 두 번째였다. 다인종, 다문화에 대해서 열려있는 도시 뉴욕이라지만... 어떤 어린아이들-특히,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동물 같은 감각으로 약한 아이들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씁쓸하게도.)


그래서 나 역시,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었던 곳은 바로 그 러닝 포드의 교사 지젤이었다.


처음엔 지젤(선생님)에게 아이가 안네와의 사이에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두 아이 사이를 유심히 살펴봐 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선생님인 지젤의 반응은 "Really? 정말요? 이상하다. 전혀 그런 문제없는데?" 라며 전혀 금시초문이라는 식이었다. 더불어, 내가 직접 보거나 들은 상황에 대해서 직접 대화를 재현하며 설명을 해도 "안네가 원래 좀 그래요. 나한테도 가끔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요 뭐."라며 안네 자체의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도움을 구할 곳은 선생뿐인지라, 매일 아이를 데리러 러닝 포드의 수업이 끝날 즈음에 가면 그 날은 어땠는지를 묻고는 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이 선생으로 인해 문제는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아이들 사이의 대화가 점점 심각하게 괴롭힘의 양상으로 진행이 되는 동안에도 이를 들으면서도 묵과하고 있었던 것. 또한, 아이들 사이에 그 날 있었던 일을 본인이 놓친 부분들은 모두 제외하고 내용을 바꾸어 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이 문제를 선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교사인 '지젤'은 왜 그랬을까?

정해진 시간 동안 가르치기만 하면아이들 인원수에 상관없이 그녀의 월급은 동일했다.

그녀에게 고용 계약서를 전달했고, 급여 관련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안네의 엄마였다.

심지어 퇴직 교사라는 안네의 할머니를 통해서 커리큘럼에 대해서 비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받고 있던 상황. (즉, 암묵적인 그녀의 상사이자 콘트롤러는 안네의 엄마였다.)


그리고, 영리한 안네는 이 모든 권력관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안네의 엄마 말을 듣고 움직이는 선생인 지젤은 안네가 어떻게 빈이를 괴롭혀도 혼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알 수 없었다. 혼이 나지 않으니,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안네는... 빈이의 엄마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다양한 괴롭힘의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로 인해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을 아주 빠르게 내릴 수 있기도 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눈 앞에서 안네가 빈이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고 빈이는 울기 시작하는 상황에도 무반응인 러닝 포드의 선생 지젤을 눈 앞에서 지켜본 날.


우리는 개선에 대한 희망 따위는 버리고, 미련 없이 러닝 포드를 떠나기로 했다.


괴롭힘에 대한 인정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는 가해자와 방관하는 선생이 있는 그곳을 말이다. 아이는 아이라서 떄로는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고 행동이 변화하도록 가르쳐주는 어른이 없는 공간은 소설 파리대왕속의 무인도와 다를바가 없었다. 안네의 행동은 개선되기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훨씬 많은 수의 가정들의 가치가 충돌할 수 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교실 안에 많은 친구들이 있을 테니 나쁜 친구를 피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지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이들이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기준을 어떤 개인이 정한 기준이 아닌... 수 없이 논의된 어떤 규칙을 기준으로 배울 수 있었다면 안네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을까? 같은 문제가 학교에서 생겼다면 결말은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담임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면, 적어도 도움을 받아볼 다른 교사들 (교감, 교장, 학부모 코디네이터)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들을 끝없이 던지며...그간 내가 '좋은 학교'라 생각했던 곳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기준을 후회했다. 학교를 성적을 위해 영어, 수학, 과학, 미술을 배우는 공간으로 더 크게 생각했던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코로나로 학업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아이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이라 믿으며 홈스쿨링과 러닝 포드를 병행한 내 선택의 이면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회 공통의 중요 가치를 배우는 공간으로의 학교]의 의미를, 당장의 수학과 과학을 더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괴롭힘에 상처 받아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뒤늦게 후회하며 되새겨야 했다.


러닝 포드를 나오겠다는 우리에게 모든 책임의 화살을 돌리며 금전적인 손해(우리가 그만두니, 나머지 세 학생이 내야 할 러닝 포드 비용이 증가)를 부담하라는 돼지엄마 세이지(안네의 엄마)의 문자에 치를 떨며,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 어떤 성인이 되는지를 생각하며...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죄책감을 느끼며 많이 울었다.


어쩌면 엄마가 된 뒤 가장 많이.

울고 있던 나에게. 아이가 건넸던 편지. 정작 나를 위로한 것도 아이였다.


그 후 우리는...


이 모든 상황에 격분하며 도와준 소중한 친구들과, 법적인 소송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준 뉴욕의 변호사 분들. 그리고 전후 상황을 듣고,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준 지극히 '정상'인 러닝 포드의 나머지 두 가족들의 중재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이 기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인 누군가와 말을 섞는 것도 싫어질 정도로 어두워졌던 나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기운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를 학교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전에 이미 낸 홈스쿨링 신청서는 잘 접수되었다는 통보가 왔고, 이미 1/4분기 홈스쿨링 보고서도 작성을 완료해두었지만....


남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우리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웃을 수 있는 다른 좋은 친구들과
믿고 기댈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들의 위로로 일상으로 돌아왔 듯
나쁜 친구에게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도.
좋은 친구들이 덮어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우린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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