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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Feb 21. 2022

내 나이가.

그렇게 중요할 일인가 싶지 말입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나이'가 중요한 문화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한 것은.

병원도, 관공서도 아니요,

아이를 보낼까 싶어 찾아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였다.


한국 초등학생 학원 라이프에서 빠지면 큰일 난다는, 바로 피아노 학원.

여러 곳을 아이와 방문해 본 끝에, 가장 하이톤의 목소리를 보유하신 즐거움이 넘치시는 선생님이 계신 곳을 다니고 싶다고 아이가 말했다. 수업 첫날, 아이와 나에게 간단히 지켜야 할 점을 원장님이 설명해주셨다. 어리바리한 모녀가 두리번거리며 원장님을 따라다니던 중,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기계에 능숙하게 엄마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작은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무슨 신문물이냐는 나의 질문에, 방금 아이가 입력한 번호로 학원 입실 완료 알람이 엄마에게 간다는 원장 선생님의 안내에… 사막에서 콜라병을 발견한 부시맨 마냥 아이와 둘이 서서  “….. 우와!!!! 진짜 대박이네요…!!!”를 외치고 있던 중, 딱 우리 집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가 학원 입구에 들어섰다. 친구 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또래 아이가 반가웠는지 대뜸 우리 집 어린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넌 이름이 뭐야?”

그런데 그 질문을 받은 아이가 답을 하기 전에 우리 집 어린이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 몇 살이야?”

“어..? 나? 나 여덟 살.”

“난 아홉 살인데? 너 왜 나한테 반말해??!”

그리고 쌩하니 사라진 아홉 살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갑작스러운 한 살 언니의 버럭에 살짝 슬퍼서 눈이 축 쳐진 아이. 그 곁에서, 도대체 그럼 나는 올해 몇 살인지를 다시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 연말을 향해가던 2021년.


'내 나이가 이랬었나?'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 것은, 함께 일하자는 몇몇 회사들과의 인터뷰 과정을 지나는 과정 속에서였다. 그동안 이주 기간 동안 진행했던 프리랜서 일과, 미국에서 벌려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일해보는 것을 고려하며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생각하는 필드의 여러 회사들을 만나보면서도 [나이]가 주는 무게를 벗어나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마음에 각인할 수밖에 없었다. 내 나이를 묻고, 그것을 기준으로 기존의 조직원들 사이에 어떻게 끼워 넣을지 고민하는 회사의 대표님들을 마주하면서 실제 쌓아온 이력 못지않게 나이가 가지는 의미가 그토록 크다는 것도 더 훅 와닿았다.  

한국의 회사여서 그랬을까.


대락 몇 가지로 추려보니... 내 나이가 갖는 의미는 이랬다.

큰 조직 내에서는 MZ세대로 통칭되는 90년대생 직원들과 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은 가능해 보이는 나이.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제 어느 정도 붐이 형성되는 단계를 지난 스타트업에 속하는 기업들의 경우 CEO나 기존 임원진의 나이보다는 많기도 한 나이. (그래서 불편할 수 있는 나이)

이미 직장 생활을 접은 동기와 친구들이 많은 나이.

큰 기업이라면, 조직 내에 또래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나이.  

스무 살 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라테는'을 이야기하는 꼰대 중의 하나로 보일 수도 있는 나이.


문제는, 그렇게 특정 나이를 '이 나이의 사람들은 이러하다'라는 사회의 시선 안에 넣고 보니 갑자기 나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이 훅 줄어들어버렸다. 사회에서 '유용하다' 생각하는 나이는 정해져 있고, 그 나이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 사실을 가늠하고 나니, 마음은 조급해지고, 갑자기 해결이 필요한 미션들은 무엇이든 빨리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흘러가고 싶지 않아도 등 떠밀려 흘러가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일에 빨리빨리를 외쳐야 했다.


그제야, 미국에서는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서울에 오니 갑자기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지, 아니, 왜 더 빨리 흐르는지 그 이유가 이해가 갔다.

 

안정적인 고용이란 없이, 회사에서 언제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한 미국에서는 특정 조직이나 분야에서 '버틴 시간'이 그 사람의 실력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고용이 불안정적인 사회에서는 조직 내 높은 연령괴 직급을 보유한 사람들은 시간에 비례하는 양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실력'을 겸비하는 것이 당연지사.

이는, 어떤 상황에도 해고되지 않을 실력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만의 무시할 수 없는 연륜과 노하우로 반드시 조직에 필요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런 사례 중 하나로...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 중에는 코로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 역할을 주도해온 미국 국립 전염병 & 알레르기 연구소 소장직을 하고 있는 닥터 파우치(Dr. Fauci)가 있지 않을까 싶다. 1940년 생으로, 현재 나이 81세라는.... 한국이라면 이미 '정년'을 넘기고 댁에 계셔야 할 법한 나이에도 굳건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미국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이 할아버지를 보며 본인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이들에게 힘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어지는 일 할 수 있는 기회와 연륜과 경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닥터 파우치 - 이미지 출처 USA totday *각주 참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에게도 질문했었다.


나의 나이가 연륜을 의미하는가?

나의 경험은 시간만큼 어떤 눈을 키워왔는가?

내가 나이로 인해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문화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해하는데 내 '나이'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만큼인가?


질문을 품은 채 인터뷰를 이어가던 시기, 다양한 기업들의 신년의 인사이동을 공지에 따른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삼성 전자 임원도 세대 교체....30대 상무, 40대 부사장 나왔다]

[30대 그룹 혁신 '속도전'...x세대 이하 임원 47%로 급등]


#30대 임원 #젊은피 #40대부사장


이런 키워드들이 즐비한 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지금 한국이 지나고 있는 사춘기 같은 성장통이 느껴졌다. 직함을 떼어내고 소통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지만,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인지가 아니라 젊다는 면이 가장 강점처럼 읽히게 쓰인 CEO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며 과연, '젊다는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맞을까? 노력에 의해서 획득한 가치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나이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분위기는 이들이 가진 진짜 실력을 드러낼 기회를 줄 것인가 알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고민하던 몇몇 회사들 중 한 곳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이런 회사라는 곳에서 얼마나 일하게 될까? 길어야 10년??"

"야, 무슨. 10년씩이나. 5년이면 모를까. 점점 더 빨라진다 말이지. 요즘은 특히. "


몇년대 생이, 어떤 직급과 직함을 거머쥐었다는 기사가 흐르고.

나이가 어린 직원들을 높은 직급에 배치하는 것이 회사가 젊어진다는 것과 동일어로 읽혀지는 상황 속에서는 어쩌면 친구의 이야기처럼 앞으로 5년 후 한국 직업 시장 내 나의 시장 가치는 0로 수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나이를 잊고 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대신 내 이름 안에 쌓이는

경험의 값을 헤아려 보기로!





관련 기사 모음


https://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20/05/03/coronavirus-white-house-expert-dr-anthony-fauci-americans-trust/3042991001/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12095945g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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