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브랜드를 보는 즐거움

샤넬 뷰티 아뜰리에

by 맨모삼천지교


원래 오늘은 해야 할 다른 일은 뒤로하고, 아침 햇살이 너무 좋아서 소호에 잠시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장소를 발견했다.




소호에 있는 샵에서는 보통 업타운보다는 좀 더 다이내믹한 VMD와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나 브랜드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5th avenue나 메디슨 애비뉴 못지않게 꼭 돌아볼만한 이유를 선사한다. 특히 소호 우스터 스트리트 (Wooster street) 쪽에는 특히 재미있는 곳들이 많은데... 오늘 그 인근을 지나다가 얼마 전 친한 언니가 소호 샤넬 부티크 옆에 샤넬 코스메틱 관련 재미있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디쯤에 있을까... 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아주 작은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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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가가 보니, 문은 닫혀 있고 옆에 작은 벨이.

1층도 아니고 2층에...?? 그리고 열어둔 것도 아니고 잠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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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글로벌 브랜드에서도 대단히 한국적이었던 나의 옛 상사 한분이 떠올랐다. 결국에는 늘 '매출'이 얼마냐로 평가하길 좋아하신 그분이었다면... 이런 2층에, 그것도 벨을 눌러야 열리는 문을 설치하는 이런 스토어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ROI와 transaction의 감소 등등을 이슈로 프랑스 본사로 제안도 하기 전에 먼저 그 선에서 끝났겠지..?라는 생각. 그리고 '샤넬이 이런 곳에 했다'라고 이야기하면 '다시 검토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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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진 black & white의 2층으로 향하는 높은 계단이 눈앞에 보였다. 계단부터 샤넬스럽군..이라 중얼거리며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끝에, 슬슬 펼쳐지기 시작한 공간에서, 친절히 맞아주는 어드바이저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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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상징적인 단어들이 써있는 개인사물함과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써있던 곳.

기본적으로 샤넬의 모든 뷰티 제품을

마. 음. 껏. 즐겨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으로,

전 세계 최초 & 유일한 샤넬의 뷰티 아뜰리에라는 설명을 들으며 내 전화번호를 등록하고 이를 통해서 받은 문자로 웹사이트에 접속 후 온라인 가입 완료.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휙~끝나는 등록 방식.


그리고, 편안하게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된 개인별 라커에 물건을 넣고, 전화기만 손에 들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각 락커에는, 샤넬의 아이코닉 단어들 (No.5, coco.. 등)이 적혀있다. 원하는 단어를 골라 가방을 넣고 나서 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입구 편에 준비되어 있는 클렌징 섹션은, 말 그대로 메이크업을 지우고 세안을 할 수 있도록 타월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다. 세안을 할 필요는 없더라도, 손이라도 씻고 깨끗하게 메이크업을 해 볼 수 있도록 모든 클렌징 & 손소독제까지 준비되어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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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쪽으로 기초 스킨케어부터 베이스 메이크업,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색조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계속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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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크업 스테이션 2. 립스틱바 3. 베이스메이크업바

개인적으로 제일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립스틱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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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립 제품들을 조금씩 덜어서 넣어둔 작은 큐브를 마음대로 골라서, 일회용 어플리케이터로 깨끗하게 즐겨볼 수 있도록 해 둔 공간인데, 청결은 물론 정말 각양각색의 색상들을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샤넬 코스메틱 덕후라면.... 만세를 부를만한 곳은 아닐지.

그리고, 이 공간에서 사용하는 모든 메이크업 제품들은, 아래와 같이 위생적인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각종 어플리케이터가 모두 일회용으로 깔끔히 준비되어 있고, 브러시들도 세척된 상태로 사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컨실러의 경우 사용해보려 꺼냈더니,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원래 뚜껑에 달려 있는 스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스틱이 모두 잘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1회용 어플리케이터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식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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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이 가진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샤넬 화장품 제품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발라볼 수 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첫째는.
5번가의 매장들도 텅텅 비는, 온라인 전성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샤넬이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는 점.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온라인으로 이탈하고 있고, 오프라인 상의 매장 운영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브랜드들이 매장을 닫고 있다. 그 와중에도 분명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구매를 멈추지 않는 일부 품목들이 있는데... 바로 "직접 경험하고 확인해야 구매 욕구가 생기는 품목들" 되시겠다.


물론, 화장품도 그중 하나. 그러니, 이러한 제품 테스팅 만을 위한 목적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것 역시 이런 시장 변화에 너무나 발맞춘 활동인 셈. 구매에 대한 의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아주 편안하게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도록 유도하는 공간에서 체험한 고객은 결국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구매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체험"을 선사하는 곳으로써의 목적을 정확히 수행할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

image.png?type=w580 출처: www.wsj.com

위 차트만 보더라도... 전체적인 온라인 비즈니스가 어마어마하게 성장 중인 지금도, 'Health, Personal care & Beauty' 시장은 온라인상의 매출 비중이 전체 시장 규모의 10% 이상을 못 넘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비중은 다른 섹터만큼 커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라고 본다.


둘째는.
이미 잘 되고 있는 브랜드가,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어떤 형태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지와 그를 통해 어떻게 발전을 꾀해야 하는지 ,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참 잘 알고 있다는 것.


언젠가, 각종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가 한국의 가로수길에서 시작될 무렵...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브랜드 내부에서 팝업 스토어에 대한 논의가 나왔었다. 하지만, 본사로의 제기도 진행되기 전에 한국 오피스 내에서 이미 제안이 종결되어 버렸었는데, 그 이유는 "백화점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오가는 거리는, 프리미엄 하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였던 것. 그 후, 시간이 꽤 많이 지나 샤넬이 가로수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나서야 후발주자로 그 후에 팝업 스토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 다른 브랜드들이 매일매일 팝업 스토어를 열기 시작하던 시기에. 즉,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하나의 예시로 길을 만든 후에야 걷기 시작했던 것.


이처럼 비슷한 규모의, 또는 더 큰 매출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이 기존의 틀에 갇혀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새로운 방식을, 늘 먼저 뚫고 나갔던 브랜드가 샤넬이었던 것 같다. 패션 하우스로서의 명망과 프리미엄은 그대로 가지면서,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다양한 각도에서 실험해보고 모색하고... trial & error를 통해서 끊임없이 성장 중인 것이 보이는 하이엔드 브랜드라니.


마치 엄친딸을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브랜드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사람들이 좋아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토대로 시도해 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시도 자체가 더 어려운 것도 사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든다.



이 공간을 돌아 나오는 길에 보였던 문구.

Creat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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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내내 기분이 상큼했던 이유는 코 끝에 맴돌던 향수 덕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는 공간의 에너지를 받아왔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었다. 하던일에 익숙해 지지 않고, 새롭게, 안해본 일을 두드려 보고 나가보라는 마치 그런 이야기를 이 공간이 나에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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