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의 단상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는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에 달린 부제부터 배꼽 잡게 만드는 '연년생 아들을 키우는, 초등 교사 엄마의 리얼 환장 에세이 - 그렇게 초등 엄마가 된다]라는 책.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대로,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굉장히 규격화되기 좋은 직업에 종사하지만 반대로 지극히 규격화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향내를 물씬 풍기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배꼽 빠지게 웃다가 울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분이 쓰는 글의 가벼운 와중에도 그냥 흘려지지 않는 메시지들이 반가웠다. '맘충 면제 쿠폰'을 발급받고 싶은 그녀의 마음과, 생전 욕이라고는 몰랐던 그녀가 뛰어난 '욕쟁이'로 성장한 배경, 그리고 맥주와 치킨을 두고 지인의 상심을 위로하던 순간의 웃픈 느낌까지 담담한데 어딘가 뜨끈하게 만드는 그런 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무언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조금 가벼워도, 쉬워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긴. 나만해도 언젠가부터 치열하게 싸우고 치고받는 영화나, 작품성은 있으나 심오해서 머리가 같이 아파오는 이야기는 자꾸 피하고... 그냥 보기에 좋고, 좋은 사람들만 나오는 그런 영화를 더 찾게 되는데 정작 내가 하는 이야기는 진지했다니. 역시 사람은 입장에 따라 알고 있던 것도 기억이 안나기도 하나보다.
사는 것도 고달프고 피곤한데, 굳이 시간을 내서 무겁거나 진중해지고 싶지 않은 그 마음들을 너무 잘 알고, 이해하기에 당장 내 글에서부터 힘을 빼기로 했다. 처음에 시작할 때 생각했던 '내가 쓴 이야기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라던지, '그냥 사람들이 많이 읽고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어'라는 가벼운 생각만 남기고, 일상 속의 기억들을 모아보자는 본연의 취지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그래서 오늘은, 나의 육아 암울기 못지않게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생각났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을 하나 소환해 볼까 한다.
공무원인 아빠와 전형적인 현모양처인 엄마.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 서울에 거주하던 중산층의 4인 가족.
한 가지 우리 엄마가 정말 뛰어난 것이 있었다면... 수입은 정말 고정적인 경찰 공무원인 아빠의 적은 월급을 마치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분신술이라도 시켜 그 돈으로 저금도 하고, 우리 학원도 보내고, 살림도 하고, 아빠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의 박사과정까지 다 마치게 해 드렸다. 결혼하고 엄마의 입장이 되고 나서 보니... 이건 뭐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라 해도 설명이 부족하다.
뿐만인가. 결혼생활 10년도 안되어서 아파트도 하나 장만한 엄마는, 내가 3학년이 되기 전에 우리 가족이 새 집에서 신나는 삶을 시작할 수 있게 진두지휘 하셨다. 학년 중에 들어가 아이들과 서먹해지게 하지 않게 하려고, 아직 추위가 절정인 2월 전에 이사를 갔고 엄마의 전략대로 우리는 새로 반 배정을 받은 친구들 사이에 부드럽게 들어가 무난히 새 학년을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당시 우리가 이사 간 동네는, 신규 아파트가 막 들어서고 있던 단지 쪽과, 아직 재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허름한 빌라들이 공존하고 있던 곳이었다. 전학가게 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지만)는 과거의 세대수를 기준으로만 설립되었기에 새로 생겨난 아파트 단지의 학생 수를 흡수하자니 과부하 상태였다. 한 반에 60명 가까이 되는 것도 부족해서, 전 학년이 2부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 교실 중앙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주전자를 얹어두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던 낡은 난로 시설도 기억이 나지만, 무엇보다, 하굣길에 눈앞에 펼쳐지던 마치 돗자리 위에 촥 깔아놓은 검은콩 같이 수 많던 아이들의 뒤통수가 재미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얼마 가지 않아, 아무래도 아이들이 너무 많은지, 결국 신규 학교가 설립되었고 3, 4학년을 보낸 그 학교에서 거주지를 기준으로 아이들이 새 학교로 이전하게 되었었다. 이전 학교보다는 소규모에 당시로는 최첨단 설비가 반영된 새 학교로 간다는 것이 마냥 신이 났고, 새로 설립된 학교로 오신 선생님들도 어딘가 즐겁고 신이 나있는 분위기였다. 흥이 넘치시는 교장 선생님을 필두로 온 학교가 신명 나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었던 2년이었다. 물론,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나의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에도 딱 2번의 가슴도 머리도 아프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 하나
그 학교에서 지내는 2년 동안 나는 총학생 부회장도 하고, 학생회장도 하고, 수련회에서 앞에 나가 춤도 춰보고, 방송 출연도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신나게 학교를 다녔다.
당시 기존에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헤쳐 모여서 새 학교에 모인 우리 반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새 학교를 다닌다는 흥분에 들뜬 초등학교 5학년들이었다. 이 연령의 아이들이 갖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특히 열 두 살의 여자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이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눈을 뜬 것은 물론 여럿이 몰려 또래집단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또래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남자아이들은 같은 나이라고 해도 공 하나 던져주면 먹던 밥도 잊고 뛰어노는 것과는 달리, 여자아이들은 이미 빠른 아이들은 2차 성징이 시작된 것은 물론 주변과 자신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이틴 소설과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에 반하기도 하는 그런 나이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달라진 것은 인지 못하고 이제 막 가시가 돋아나는 고슴도치처럼 온 사방을 이리저리 찌르고 다니는 모순덩어리의 시기랄까.
문제는... 그런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당시 우리 담임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의 심경변화를 크게 인지하거나 세심하게 지도하기에는 매우 무리가 있는 고학년을 처음 맡아보시는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이름 한번 더 부르고, 심부를 한번 더 시키는 것으로 '저 아이를 편애한다' '선생님은 쟤만 이뻐한다'는 원성과 뒷말이 터져 나오는 그런 예민 보스 5학년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주야장천 내 이름만 불러대셨던 것.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마도 내가 반에서는 반장이고, 총학생부회장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일을 시키기에 수월한 아이였을 것이다.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되는 전형적인 말 잘 듣는 착실한 모범생 타입이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에게는 "편의"에 의한 선택이었던 내가, 아이들에게는 "편애"의 대상으로 비추어졌던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 우리 엄마는 '학교에 부모가 자주 드나드는 것 아니다'라는 아빠의 강경한 원칙 덕에 치맛바람은커녕 공식적으로 부모님을 모셔가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 학교에 잘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었다. 그래서 엄마의 촌지 등의 영향으로 선생님의 편애를 받는다는 의혹에서는 멀리 있었지만, 한번 토라진 반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키도 다른 아이들보다 크고, 이미 마음은 중학생 같이 섬세하지만 성적은 4학년 같은 탓에 주목받고 싶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목소리 큰 아이들을 위주로 이런 원성이 높아졌다. 물론, 그 시샘의 당사자인 나에게 그 이야기가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대 놓고 나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 정도로 못된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여자아이들이 흔히 일상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하는 또래문화의 모습 중 하나인 '다 같이 화장실 몰려가기' 같은 일상 속의 작은 이벤트에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빼놓는 경우가 생겨났다. 아, 거꾸로 말하면 여자아이들 특유의 또래집단 문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고, 상대적으로 예민한 감정 변화에 무딘 내가 '아이들이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계기가 바로 이 '화장실 몰려가기' 이벤트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겨우 열두 살 아이. 당연히 상처 받는 마음이 있었지만 뚜렷이 그것을 문제라고 짚기도 애매하고 안 하기도 애매한 그런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여름 방학을 앞둔 7월이 아니었을까. 바깥공기와 햇살은 뜨겁지만, 새로 설비된 학교인지라 실내는 그렇게 덥지 않았던 어느 오후. 올리브 색의 반팔 린넨 원피스를 입고, 얇은 가죽 벨트를 한 선생님이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내보내고 여자아이들만 교실에 남으라 하셨다. 각자의 자리가 아닌 교탁 주변에 몰려서 둥글게 앉아보자고 하신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에게 꼭 할 이야기가 있어"
"뭔데요?"
"너희가 선생님이 누구 하나만 예뻐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선생님이 설명을 좀 하려고...."
로 시작된 이야기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고 그 '누구 하나만 예뻐한다'의 주된 대상인 나는 마치, 선생님이 나의 대변인이 된 양 굳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불편해서 자리를 벅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듣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는'네, 선생님'의 표정보다는 '뭐야 지금 또 쟤 감싸는 이야기 하는 거야?'와 같은 표정이 더 많이 읽혔기에 더 그랬을 수도.
여하튼, 이 이상한 간담회 아닌 간담회 이후 아이들이 변했느냐?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변했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로 ‘나는 특정적인 누군가를 편애하는 그런 선생님이 아니다’라는 것을 공언하신 뒤로는 심부름을 시키실 때도 각별히 주의하시는 눈치였고 적어도 그런 선생님의 노력은 미세하게나마 빛을 발하기 시작해서 서서히 아이들과 나 사이의 긴장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변하게 한 것은 시간이었다.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만난 우리 반 아이들은 어느새 또 자라나 조금은 더 스스로가 하는 말과 행동을 객관적으로도 보는 ‘언니’와 ‘오빠’로 한 뼘 더 자라났다.
그렇게 에피소드로 끝난 이야기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 모아 놓았던 그 날과 비슷한 날씨에 올리브 색 원피스를 입은 누군가를 보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공기와, 선생님의 떨리던 입술까지 기억속에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을 보면, 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야기 둘
집안의 첫 손녀의 첫 ‘학교 졸업’인 까닭에 일가친척 대잔치가 되어버린 내 졸업식 날.
운동장에서 사진을 백장 즈음 찍고, 인원도 많고 정신도 없는 탓에 부모님과 친척들은 먼저 식당으로 향하고 나는 사촌동생들과 함께 졸업 모자와 가운을 학교에 반납하고 따라가기로 했었다.
꽃가루와 밀가루가 막 뒤섞여 지저분해진 교무실로 가는 길에 설치된 졸업모자와 가운 수거함에 들렸다 가운을 학교 건물을 막 나서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어깨를 잡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옆 반의 담임 선생님.
학년 주임 선생님이자, 6학년에서 나와 성적을 엎치락뒤치락하던 아이 재인이가 속했던 반의 담임선생님이셨다. 아, 추가로 상당히 많은 촌지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신 분이셔서 개인적으로 존경할만한 어른이자 스승은 아니라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그런 분.
'이 선생님이 왜 나를 부르시지?’이라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선생님께서 나에게 흰 편지봉투를 하나 건네시는 것이 아닌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나를 뒤로 하고, 인사할 새도 없이 그 선생님은 황급히 돌아 학교 건물로 들어가셨고 멍하니 그걸 쥐고 있던 나는 빨리 가자고 성화하는 동생들 덕분에 우선 그 봉투를 주머니에 구깃하게 넣고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식사 후 우리 집으로 다들 몰려와 정신없는 오후를 보낸 뒤에야 다시 그 봉투로 생각이 갔다. 착한 어린이인 나는 당연히 어른이 주신 것이니 먼저 엄마에게 보고 먼저 해야지!
"엄마, 재인이네 반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이거 주셨어"
"그게 뭐니? 뭐 받을 게 있었어?"
"나도 몰라. 한번 볼까?"
뜻밖에도. 그건 편지였다.
그것도 사과와 고백의 편지.
이 선생님은 본인 반의 1등인 재인이를 과하게 추켜세우고 감싸는 과정에서 어찌나 사사건건 나를 걸고넘어지시는지... 공적인 교사들의 회의 자리에서 나를 헐뜯어 우리 담임 선생님과 싸움이 난 적도 있었다. 중학교 배정 시점에도 내가 재인이가 배정받은 학교보다 좀 더 좋은 곳으로(학업 성취가 높은 학교로) 배정을 받게 되자, 학생 회장직 활용해서 비리로 배정받은 것 아니냐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교무회의에서 꺼내신 것이 학생인 나와 우리 엄마의 귀에까지 들어갈 지경이었으니... 고작 열세 살 아이를 향한 이 어른의 치졸함은 사실 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당시 이 선생님의 이런 딴지에 맞서던 나의 담임이 나에게 "아우. 저 선생 쓸데없는 소리 더 진짜 못 듣겠다. 더 시험 잘 봐서, 저 선생님 아무 말 못 하게 재인이 확 눌러버려!"이런 소리를 하신 적도 있었을 지경.
그런데 이렇게 일 년 내 나쁜 어른이었던 이분이 나에게 건넨 편지 속의 내용인즉, 그러한 본인의 행동이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뉘우치시며 나에게 '그런 행동은 '재인이'때문인 것이지 나에게 특별한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너는 좋은 아이니까, 앞으로 잘 클 것이라 믿는다. 부디 선생님의 이런 부족한 모습은 잊어다오'라는 내용이니 읽는 내내 당황스러움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또 사과를 하시면서 본인의 제자였던 어린아이의 탓으로 그 이유를 전가하시는 것 역시 참 그 선생님 다웠다.. 싶기도 하지만.
고작 열세 살이었던 어린이인 내가 어른을 이해해 줄 필요는 없고,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그분의 치졸함을 용서를 해 줄 의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읽어 내려가며 순수히 선생님의 그 사과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늘 굉장히 낡은 양복을 입고 다니시던 그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해해 주고 싶었다. 그분도 누군가의 아빠이고, 가장이었을 것이고, 재인 엄마가 내미는 촌지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받은 돈만큼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셨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마 부끄러웠으리라. 그 돈이 보내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아이를 앞세워 다른 아이를 공격하는 것이 내내 찜찜하고 마음에 걸리셨으리라. 그래서 나에게 진심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를 손에 쥐어주고 황급히 돌아서 들어가셨던 것 같다. 그 사과를 받은 나는 부디, 나에게 건넨 그 사과 편지 이후에 또 상처 주는 아이가 없으셨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