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만 낯선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한국의 웹사이트에서 '서울 토박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적어도 조부모 이상부터 살아온 사람 사람'을 지칭해야 한다라고 한 의견을 보고 정말이지 크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가.
그에 반해, '뉴요커'라는 단어는 그 사용함에 있어서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도전을 위해서 찾아오고 또 떠나가는 곳이기도 하기에, 부모가 뉴욕에 살았거나 말거나 살았던 기간에 상관없이 '지금 현재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뉴요커'라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실제, old money가 주축을 이루는 맨해튼 내 어퍼 이스트사이드 생활권 일부를 제외한다면...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부모님부터 뉴욕 또는 맨해튼에서 살아온 사람을 만나는 경우보다 성인이 되어 본인의 의지로 이 곳에 머물게 된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것]으로 뉴요커의 정의를 내리기에 더욱 거침이 없는 듯 하기도.
그래서 반대로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을 지칭하는 별도의 단어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많은 뉴요커들이 [현재]의 뉴욕을 바라보고 있을 때, [과거부터 현재까지] 쭉 이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곳은 어떻게 느껴질까?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네이티브 뉴요커이자... 두 딸아이의 엄마인 엘리자베스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에게도 이 도시는 특별할까? 이 도시를 떠난 노후를 생각하고 있을까? 이 곳의 진보적인 문화에 대해서 오랜 시간 지켜본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본인의 경험을 비추어 지금 이 도시에서 또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까?
굿모닝! 엘리자베스.
진짜 뉴요커(?)가 느끼는 뉴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누구에게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당신이 떠올랐어요.
태어나기 전부터 뉴욕에 있었고, 지금도 뉴욕에 살고 있고, 아이들도 뉴욕에서 키우고 있는 사람!
하하.
맞아요. 그 표현이 딱이네요.
부모님도 뉴욕에서 쭉 살아오셨고, 저 역시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네요.
맨해튼 내에서 로워 이스트, 어퍼 이스트사이드 등 이리저리 도시 내 이곳저곳을 오가며 맨해튼 내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 살아본 것 같아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뉴욕은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대학 시절에는 아틀랜타에서 산 시기도 있었고, 최근에는 아이들 때문에 일 년 중에 몇 달은 플로리다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그 어느 곳도 뉴욕을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이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는요.
극장, 스포츠, 뮤직, 뮤지엄 등등…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다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누군가 '뉴욕은 별로야, 재미없어'라고 이야기한다면 저는 아주 명백하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줄 것 같아요!(하하) 재미없다는 말을 할 새도 없거든요. 해 볼 수 있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도시 곳곳에 엄청난 창의력들이 뿜어져 나오는 곳들이 가득하죠. 독특한 스토어들도 많고, 실험적인 연극 등... 언제나 즐길 것들이 가득하거든요.
뭐, 물론 피곤한 부분도 있어요. 언제나 전력 질주를 하는 느낌으로 살고 있기도 하고... 늘 시간에 쫓기죠. 그래서 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좀 떠나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실제 떠나 있는 시기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 곳을 떠나 있을 때에는 다시 너무나 돌아오고 싶은 곳이기도 해요. 이 곳에서만 누리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도 쭉 이 곳에서 키우고 싶기도 하고요.
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다인종, 다문화가 존재하는 이 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때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는 해요.
얼마 전에는.. 아이와 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를 함께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어요. 둘이 늘 단짝으로 붙어지내는 친구라 그날도 사이좋게 손을 잡고 가는 길이었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야! 나는 네가 정말 좋아! 어쩌면 우리도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어!"
"맞아! 여자끼리도 결혼할 수 있으니, 우리도 할 수 있을 거야:)!"
이 두 여자아이들의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그... 그래 ^^:;;;너희들이 정말 서로 좋아하는 것 엄마도 알지.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 하긴 했는데... 워낙,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는 곳이니 아이들 역시 같은 성별끼리 결혼한다던가, 부모가 한쪽만 있는 경우라던가... 에 대해서 매우 매우 사고가 열려있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런 성에 대한 인식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여기서 자라왔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어쩌면 이런 부분이 낯선 것은... 이 뉴욕이라는 곳에 제가 살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싶기도 했거든요.
아니에요. 뉴욕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도 이런 새로운 트렌드(?)는 꽤 충격적이었어요.
얼마 전, 아이의 학교 입학 서류를 작성하는데... 제가 신청했던 모든 학교의 입학 서류의 아이 정보 기재란에는 아이의 성별 관련 부분에 여지없이 이런 질문과 선택 가능한 옵션들이 있었어요.
How do you identify your child?
(아이의 성별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Option : He( ) She( ) They( ) It( ) We( ) Binary ( )
옵션 : 그 ( ) 그녀 ( ) 그들 ( ) 그것 ( ) 우리 ( ) 양성의( )
그중, 바이너리(양성의)..라는 말은 저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어요. 겨우 만 3세를 넘은 아이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는 서류인데 이런 내용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죠.
*추가 설명 - 단순히 남성끼리 호감을 느끼는 게이나, 여성끼리 호감을 느끼는 레즈비언을 제외하고도... 생물학적 성과 본인이 스스로 인지하는 성이 다른 경우, 또는 트랜스 젠더로의 변화 과정에 있는 경우 등 굉장히 다양한 성별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는 특별 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3인칭 대명사의 사용을 더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별'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부분도,
'뉴욕'에 국한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음.... 미국 전체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새롭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이고.. 이해가 필요한 부분인 것은 분명하고요. 아마 미국 내에도 몇몇 곳들이 더 있겠지만 아마도 뉴욕과 캘리포니아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두드러지게 진보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분명, 뉴욕은 이런 부분에서 가능한 모든 다양한 문화를 포함하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기에 또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이 곳에서 살아오고 이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물론 굉장히 환영하는 바예요. 때로는 '아, 너무 이른 것 아닌가...'싶은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 시대는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어때요?
한국은, 아직 동성결혼에 대해서 사회적인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는 아니에요.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커밍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적인 부담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은 편이기도 해요. 또한, 남성과 여성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전통적인 가정 방식 이외의 형태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이 이 부분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앞서 이야기한, 학교의 입학신청서를 예로 들어보자면... 아직도 많은 학교들이 '보호자 1과 보호자 2'가 아닌 '아빠와 엄마'란을 기재하게 되어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다면 여러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아직 비일비재하고요.
흠... 미국은 되려.. 기존의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난 가정의 특별함이 개개인이 가져야만 하는 '독특한 강점'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 문화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학교도 기본적으로 학교는 인종적, 종교적, 성적인 것이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되려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와 다른 '비전통적인 가정'이 좀 더 환영받고 좀 더 좋은 면으로 부각되는 경우도 있죠. 실제, 유명 사립학교들에서 신규 학생들을 선발할 때 , 좀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어떤 면으로는 더 환영하기도 해요. 우리 가족같이 그저 백인들로 이루어진 가정은 "Boring(지루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내세울만한 특이점이 없는 사람들로 더 여겨진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하하
타인과 '다른 점'이 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인 시대이니까요.
이런 뉴욕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는 아주 오랜 기간 이루어진 변화였을까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수십 년 전과 180도 바뀐 것이니까요.
제가 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교실 안의 풍경은 모두 '비슷한 아이들' 백인 아이들 투성이었죠. 하지만 제가 지금 제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실을 들여다본다면 그야말로 정말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아이들이 가득해요. 그리고 이런 다양성과 진보적인 부분은 학교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기도 하고요.
음. 당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뉴욕의 맨해튼에서 자란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전업주부에 아이들 양육에 정말 최선을 다한 어머니 덕분에... 뉴욕에서 태어나 자라며 누릴 수 있는 장점을 정말 충분히 경험하며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도시가 가진 인프라를 백분 활용하여 저와 제 동생에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셨고... 특히 엄마가 관심 있어하시던 '예술'분야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신경을 쓰셨어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여주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MOMA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란다는 것은 정말 큰 혜택이었다는 것을 크면서 더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린 시절 즐겨 찾던 공간들이 대부분 지금도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제가 어릴 때 즐기던 것들을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좋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어릴 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보았던 New York City Ballet Theater(뉴욕시티 발레 티어터)에서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을 이제는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 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반대로 저는, 이 도시에 살면서 이 곳의 훌륭한 문화적인 인프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기도 해요.
매일 회사와 집, 동네만 오가며 이 도시에서 산다면, 왜 엄청난 집값을 감당하면서 살고 있느냐고 거꾸로 묻고 싶을 만큼요. 꼭 큰 비용을 내지 않고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무료로 진행되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도시에 산다는 것은 쉽지 않죠. 그래서 그만큼 도시가 제공하는 엄청난 특별한 혜택을 더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노후도 이 곳에서 보낼 생각이에요?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미국 내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이도시의 에너지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어서, 언젠가 노후에는 좀 더 느린 삶을 찾아서 떠나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 저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뉴욕에 대학 즈음 와서 10~15년 정도 지낸 친구들이 "It was enough. It's too much"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시 외곽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들이죠. 하지만 아직은 저는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아마.. 여기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이미 익숙한 것이겠죠?
네이티브 뉴요커의 교육과 육아가 궁금해요.
지금 아이들이 진학한 학교가, 실제 한국에도 명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한 학교예요.
들어가기도 굉장히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학 전에 어떤 준비를 했었어요?
제 생각에는... 우리 아이들이 서로 다른 3가지 프리스쿨 환경을 경험한 것이 주요했던 것 같아요.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는 프리스쿨을 오전에는 갔다 오고, 오후에는 프랑스 프리스쿨을 보냈었어요.
그리고, 남편의 직업 자체가 플로리다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일이라 일 년 중 몇 개월은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에 가있어야만 했는데, 그곳에서는 또 다른 프리스쿨을 다녔죠. 그렇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다른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 다른 지역을 두루두루 경험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추가 설명 - 프리스쿨: 유치부 과정 이전의 만 4세까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형태의 교육 기관을 말한다).
그렇게 다른 형태의 학교들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보낸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최종 보내기로 한 학교는 프렌치 스쿨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그만하기로 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이들이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고, 남편이 특히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싶어 했어요. 저와 남편 모두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지만, 실상 그다지 즐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배웠으면 하는 언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보자고 한 거죠.
하지만, 실제 다른 언어를 모국어(영어)만큼 구사하게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방과 후에 집에서도 사용해야 지속적인 훈련이 되는데, 학교에서 보내는 몇 시간 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죠. 그리고 프랑스어 자체를 제가 익숙하게 사용하며 아이들에게 어떤 지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제가 그 부분까지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랑스인 학교 선생님과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가 힘든데 어쩌겠어요 (하하하하) 그래서 1년 해보고 바로 접었죠. 다행히. 지금 입학한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같이 배울 예정이라... 어떻게든 이어질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새로운 언어"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마주하는 다소 낯선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하게 아이들이 대처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일례로, 우리 애들은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 아이들만 남아서 처음 해보는 프로그램에서도 겁내 하거나, 울거나, 부모를 따라 뒤돌아 나오는 경우가 전혀 없어요. 마치 거기서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처럼, 처음 가는 곳에서 아주 잘 적응하고 신나게 놀죠.
그런 부분이 지금 입학한 학교의 인터뷰에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작은 아이들의 입학 테스트라고 크게 거창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닌데...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서 별도의 공간에 낯선 어른과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워해요. 그래서 실제 평소라면 잘할 수 있는 말도 안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런 면으로 우리 아이들은 너무 편안하게 그 인터뷰에 다녀왔던 것 같아요. 첫째 딸인 에바의 경우 다른 친구 네 명과 함께 총 다섯 아이들만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들어갔다가 웃고 나왔죠. 그 공간과 시간을 편안하게 생각했다면 잘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6세와 4세인 에바와 스칼렛에게는 주로 어떤 책을 읽어주나요?
Fancynancy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요. Pattingtone bear 시리즈도 자주 읽죠.
아, 그리고 요즘은 아이들이 Fairy tales(요정 이야기)와 Greek myth(그리스 신화)에 빠져있어서 그걸 많이 읽어달라고 하는 편이에요. 주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을 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정~말 겁이 많아서, 무서운 이야기가 있는 책도 좀 피하는 편이긴 하네요. 얼마 전에 [아기 돼지 삼 형제] 책을 읽고 나서는 '늑대가 우리를 잡아먹으러 오면 어떻게 해~~~"라며 아이들이 밤이고 낮이고 자꾸 품으로 뛰어들고,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으니 안 들어오는 것 맞냐고 100번쯤 묻는 통에 한동안 고생했어요. (하하) 그 뒤로, 약간이라도 아이 입장에서 공포스러운 포인트가 있는 이야기는 좀 피하려 해요.
이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하던 크게 상관없어요.
다만... 아이들이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은 간절해요. 매일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왜냐하면... 저는 제가 바로 그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거든요. Art History(예술사)를 공부했고, 아트 갤러리에서 일했고 일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반대로 주변에서 정말 일을 정말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죠. 아주 직접적인 예로 아버지가 금융권에 계신데, 바로 아버지가 일을 통해서 행복을 찾으시는 분이었어요. 대학시절부터 일하셨는데, 아직도 일을 즐기고 일에 몰두해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느끼고 즐긴다고 말씀하세요. 아마 아버지의 사전에 은퇴란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렇지 못했지만, 제 아이들은 스스로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도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일상은 어떤지 말해줄래요?
늘 정말 Crazy라는 말을 달고 살만큼, 바쁘죠 (하하)
전체적으로는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저의 최근은 아이의 통학에 쓰는 시간이 많은 편이죠. 7시에 보통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 얼른 만들고... 준비하고는 8시에 집에서 나가야 해요. 학교에 9시에 도착하고 집에 돌아오면 10시죠. 그리고 픽업을 위해서 늦어도 2시 15분에는 다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 사이에 장도 보고, 저녁 준비해두고, 각종 집안일을 처리해야 해요. 3시에 아이 픽업을 하면 4시에 귀가하죠. 요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을 애프터 스쿨에 데려가고, 오고... 아이들은 6시 반에 먼저 먹이고, 그 후에는 목욕시키죠. 그리고 나면 보통 8시 즈음에 취침하게 되는 것 같아요.
늘 머릿속에는 "Do everything on time" 이 말을 되새기며 종종걸음으로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렇게 내 가정의 소소한 삶의 순간들을 챙겨주며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즐기려 하고 있어요.
그럼.. 네이티브 뉴요커로서,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당신이 주로 잘 가는 곳을 소개해줄래요?
잡지나 기사를 통해서 뉴욕의 유명한 레스토랑 리스트는 수도 없이 볼 수 있고, 유명한 셰프들의 식당도 많지만... 뉴욕에서 태어나 오래 살아온 진짜 뉴요커가 사랑하는 곳이 궁금해요.
음.. 일단 저희 가족은 트라이베카의 로컬 레스토랑들을 선호하긴 해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Tutto Il Giorno는 가족 손님들을 정말 환영하는 곳이라 자주 가죠. 이들을 위한 키드메뉴는 별도로 준비가 되어 있고 매주 일요일 12시부터 2시에는 Magic Bruch라는 테마로 마술쇼를 진행하기도 해요. ( http://tuttoilgiorno.com/ )
남편과 데이트할 때에는 좀 더 모던한 느낌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MOMA 안에 있는 The Modern도 좋아하고요, Gramercy Tavern도 자주 가고는 해요. 아, Il Cantinori의 이탈리안도 좋아해요.
- The Modern https://www.themodernnyc.com/.
- Gramercy Tavern https://www.gramercytavern.com
- Il Cantinori https://www.ilcantinori.com/
얼마전 아이와 함께 한창 재개발의 중심에 있는 South Williamsburg 윌리엄스버그에 다녀왔다. 예전에 사탕공장이 있던 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들어섰고, 그 다른 한쪽 켠에는 새로 올라간 빌딩들이 21세기의 디자인의 중심이 이 도시에 있음을 자랑하고 있던 그런 풍경의 한가운데 높이 10층에 달하는 Domino Sugar Refinery(도미노 설탕 정제공장)의 외벽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버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제 더 이상 가동할 일 없는 사탕 공장이지만 그 역사가 남아있는 외벽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내부에만 새로운 것이 차오를 예정이란다. 그리고 나는 겉은 역사가 서려있지만, 안은 새로운 콘텐츠로 채워질 이 건물이 꼭 이 곳 뉴욕이라는 도시와 참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초 여행으로 들렀다가 다시 돌아왔던 뉴욕은, 십수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어딘가 서울보다 더 지저분하고 낡고... 큰 변화가 없이 정체되어 보였었다. 그 시간 동안 서울의 수많은 곳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을 보았기에 더더욱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는 공사만큼 천천히 변해가는 도시의 외면과 달리, 이 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놀라울만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문화'가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곳에서 자고 나란 네이티브 뉴요커에게도 낯설고 빠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빠른 사회 가치관 변화의 저변에는 새로운 그 무언가에 대해서,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한다는 뉴요커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에 유연하게 다가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그 생각이, 어쩌면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이라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뉴요커들의 자부심의 근원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