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으로 '나'를 드러내는 연습들.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찾도록 도와주지?'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건.... 도대체 뭘 말하는 거지?'
'자기의 경험을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도록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이런 고민들을 머릿속에 하나씩 쌓으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답을 찾아내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계기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아이의 첫 입학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개 개인의 행복과 의지가 다른 어떤 가치보다 크게 중요시되는 '미국'이라는 곳에서 아이의 학교 생활을 지켜보며...' [자기 주도]라는 단어가 혹시 이런 식으로의 진행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몇가지 이벤트를 마주하게 되었다.
Talent show 탤런트 쇼
9월에 학기 시작한 뒤어느 날 학교 일정 공지에 "탤런트 쇼"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재능을 선보이는 쇼라...?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도 여전히 엄청 인상적인 기억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학예회'와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공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차이일까?
어린이 시절의 기억 속 학예회는, 유치원을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이 다 기획하고 짠 내용에 따라 아이들이 긴 기간 동안 수도 없이 연습을 반복하고 실수 없이 부모들 앞에서 완벽히 선보이는 그런 행사였다. 완벽함을 위해서 6-7세의 아이들이 수도 없이 연습을 반복한 덕에 초등학교 1, 2학년의 기억보다 유치원 학예회 준비하던 시기가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유치원 학예회를 끝으로 학교에서 무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어떤 재주를 보이는 행사는 없었다. 고작해야 수련회의 장기자랑 정도일까. 그렇게 아이의 탤런트 쇼 공지로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유치원 시절을 제외하고는, 전체 학년 학생들이 어떤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경우도 별로 없었던 듯했다.(운동회 매스게임 제외!)
그래서, 처음 아이 학교에서 하는 [Talent show 탤런트 쇼]에 대한 공지를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지극히 내가 아는 정보를 기초로, 유치원의 학예회 정도로 생각했었다.
선생님이나 학교가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학생들은 정해진 지시 사항에 따라 준비하고, 부모는 가서 구경하는 그런 형태 말이다!
그런데, 관련 공지를 훑던 중, Audition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오디션...? 이라니..?
그리고 참가 대상을 보니, 유치부는 물론 초등학교 학생 전 학년 중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원하는 콘텐츠로 참여할 수 있는 형태란다. 즉, 이 탤런트 쇼는 '누군가 정해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각자가 잘하고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을 선보인다니! 그리고, 원한다면 매 년 참가를 원하는 어린이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년 참여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학예회라기 보다는...장기자랑의 공간을 학교에서 열어주는 셈.
누가 정해준 내용에 맞추어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출연하기로 한 각자가 내용을 기획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사전 오디션까지 있다니. 아이에게 해보라고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처럼 포기가 더 빠를 사람들을 위해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었다.
Q) 아이가 오디션에 준비가 안되었는데... 긴장해야 하나요?
A) 긴장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오디션에서는 순수히 이 탤런트 쇼를 진행하는 프로듀서가 각 공연의 순서를 정하고, 공연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만 할 예정입니다.
Q) 아이들의 공연 길이는 어느 정도인가요?
A) 대략 2분 정도입니다. 오디션에서는 할 예정인 공연의 반 정도만 하면 됩니다. 공연별 디테일 확인을 위해서 사진을 찍어둘 예정이에요.
높게만 느껴졌던 벽이 조금 낮게 다가올 즈음... 마침, 같은 반 친구로부터 함께 팀으로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혼자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팀으로, 그렇게 우리 딸의 첫 탤런트 쇼가 시작되었다.
공연 한 달 반 전의 오디션은 단체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수준으로 지나갔고, 그 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무대에 오르기로 한 친구들과 다 같이 좋아하는 노래를 고르고, 아이들이 원하는 의상 스타일을 함께 골라보고... 하며 연습을 빙자한 단체 플레이 데이트가 지나갔다. 한국 학예회의 군무나, 엄청 체계적인 분장이나 발표가 익숙했던 나는, '과연 이정도 수준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괜찮을까?'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아무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탤런트 쇼 당일.
각양각색의 옷과 분장을 한 아이들과. 아이들의 가족들로 가득한 강당에서 진행된 쇼에 선 아이들의 공연은 내 생각보다 훨씬 여러모로 놀라웠다.
우선, '완성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SNS를 통해서 볼 수 있는 한국 유치원 학예회의 수준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래와 같이 참여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콘텐츠는 누군가 짜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싶.은. 것.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
여자아이들의 무한 사랑 "겨울왕국 2"의 주제곡 'Into the Unknown'을 무반주로 무대에 서서 부르는 아이.
미동도 없이 서서 난센스 퀴즈를 객석에 던지는 꼬마 스탠딩 코미디언.
좋아하는 노래에 맞추어 단체로 그저 신나게 뛰다 들어온 우리 딸을 포함한 꼬마 응원단.
홀로 무대에 등장하여 정말 말 그대로 프리~~~ 한 댄스를 마음껏 추고 쿨하게 사라지던 유치원생.
내용이 어설퍼 보일지라도 이 모든 공연에 대한 관객들 (대부분 가족,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뿌듯한 어깨는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그제야, 나는 이 행사의 목적은 물론, 학예회와의 근본적인 차이가 이해가 갔다.
얼핏 비슷하게 보이는 행사였지만 '진행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고 참여하는 폭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학부모 참관 수업]
vs [Family Friday 패밀리 프라이데이]
Kindergarten(한국의 유치부 과정에 해당)에 입학한 뒤,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것을 했는지... 등등 내가 없는 곳에서 어떤 것들을 새로 경험했늠 지 궁금해서 아이의 하굣길에 늘 "오늘은 뭐했어?"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궁금함에도 아이는 쾌활 발랄하게 "재미있게 놀았어~" 한마디만 쿨하게 던져주는 까닭에 나의 궁금증은 딱히 풀 길은 없었더랬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알파벳을 이어서 뭘 좀 읽기도 하는 것 같고, 내킬 때는 뭘 쓰겠다고도 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인지,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등등 궁금함을 가장한 걱정이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는데... 학교가 시작하고 한 달 후 즈음 학교에서 공지가 왔다.
첫 번째 차이.
학부모들의 방문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아이들의 가장 첫 아침 수업 시간인... 오전 8시 반~9시 15분
이 시간이라면 출근하는 모두가 회사에 약간의 양해를 구하고 충분히 참석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또한, 아이들도 부모님이 참석하는 것으로 인해 남은 시간 진행될 학교 수업일정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도 합리적이었다. 개인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회사원들에게는 이 시간이 아니라면 개인 휴가를 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침 이른 시간에 진행되다 보니, 회사에 약간 지각하는 정도로 충분히 참석이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실제 패밀리데이 날 학부모들의 참석률(특히 아빠들의) 은 매우 높았다.
워킹맘으로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던 시기, 어쩌다 이런 어린이 집 행사가 있을때면 대부분의 행사가 오전 10시 이후에 진행되어, 회사에 연차를 내고 참여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의 생애 최초(!) 첫 행사에 참여했을 때는, 오전에 잠시 들렸다 출근한다는 생각으로 오전 반차만 썼는데,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 바로 집으로 하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우리 아이만 남겨놓고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마음이 아파 오롯이 그 날은 하루를 통으로 연차를 써야하는 상황이 생겼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서 남편의 연차는 사용하지 않도록 하느라 늘 이런 행사에는 엄마인 나만 참여하는 경우가 잦았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두 번째 차이.
선생님의 진행이 아닌.
'아이들이 진행하는' 패밀리 프라이데이.
운동장을 가득 메운 부모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이렇게, 아침 8시 반에 진행되는 패밀리 데이는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매우 적절한 시간이었는데... 남은 의문은 한 가지였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진행하려면, 진행해야 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더 이른 시간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이 좀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며, 우리 아이의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니, 아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우리를 불렀다.
아이 곁으로 가서 인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들뜬 마음으로 흥분해 있는 아이가 "엄마 이거 봐 이거 봐" 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이 무언가 진행을 하시리라 생각하는 것은 물론, 선생님의 진행을 아이가 소란스러워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아이를 조용히 시키고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더랬다.
선생님을 보고 있는 학부모들도 없고, 다들 모두 본인의 아이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가족 단위로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설명을 하며 이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부족한 비품을 채워주거나 아이들이 하는 질문 정도에 답하는 정도만 하고 계셨다.
그제야, 나와 남편은 이 모든 학부모 참관 수업인 패밀리 프라이데이는,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들에게 그동안 본인들이 배운 것들을 설명하고 함께 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프레젠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에게 프레젠테이션은 담당한 딸아이 역시, 바구니 안에 정성껏 준비한 프린트물과, 주사위, 그리고 연필, 색연필을 들고 우리에게 자신의 설명을 하며 우리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우리를 보며 뿌듯함으로 점점 어깨가 솟아오르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리에서 하는 활동이 끝난 후에는, 교실 곳곳에 있는 자신이 참여한 작품이나 글쓰기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박물관의 큐레이터 마냥 이리저리 우리를 아이가 이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들이 세상 가까운 부모를 대상으로 스스로가 배운 것들을 선보이는 '인생 첫 프레젠테이션(발표)'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패밀리 프라이데이'였던 것이었다.
세 번째 차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지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닌,
내 아이에 오롯이 더 집중하는 시간.
간단히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 같은 숫자놀이가 끝나고 고사리손에 이끌려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설명을 들었다. 교실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 중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설명하기도 하고, 진행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도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같이 웃으며 같은 반 친구 가족과도 인사하기도 하며 그렇게 40분은 훌쩍 지나갔다.
참석하기 전,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 대비 어떤지 매우 궁금했었고 패밀리 프라이데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익히 알고 있던 한국의 학부모 참관 수업과 같은 방식일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부분들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읽기, 쓰기가 얼마나 잘 되는지. 다른 아이들은 더하기 빼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수업시간에 집중은 잘하는지... 그리고 우리 아이는 지금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
그런데, 이 패밀리 프라이데이를 통해서 우리가 오롯이 보고 돌아 나온 것은 '우리 아이'에 대한 사항이었지, '다른 아이들 대비 우리 아이가 어떤지'가 아니었다. 그 공간과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우리 아이의 성장을 살펴볼 방식도, 내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현재 한국의 학부모 참관 수업은 어떤 방식일까? 궁금해졌다.
현재 교사로 재직중인 친구에게 물어보고, 온라인상의 각종 참여 후기를 읽어본 결과....한국의 학부모 참관 수업 방식은 놀랍게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로부터 무려 30년 전과 거의 동일했다. [부모들은 모두 뒤편에서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관객의 역할로 참여하고, 선생님이 진행하고- 선정된 아이가 답하는 형태]로 계속 유지 중이었다. 상대평가가 사라진 초등학교 교실에는 여전히,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내 아이가 더 집중을 잘하는지, 대답을 잘하는지를 보는 방식의 참관 수업 형태가 더 많이 진행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진행 준비가 필요한 교사의 시간도 확보가 필요했기에 이른 아침에는 진행이 어려운 부분이 있을 듯 했다.
그리고 진행 방식 속의 면면 중....무엇보다, 교실안에 마치 없는 듯이 조용히 있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이나 선생님의 지휘아래 ‘참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아이들의 활동 방식에 매우 큰 아쉬움이 남았다.
모두가 시간을 내어 준비하고 참여한 행사라면 덜 부담스럽고, 더 즐겁고,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한 방식으로 변환한다면 어떨까?
언젠가.
다달이 아이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를 바라보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돈만큼 값어치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 학원에서 시키는 것 아니면 공부에 관심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클 때까지 들어갈 이 모든 교육비를 모아서, 나중에 중장비를 한 대 사주는 게 더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아닐까" 이 웃픈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늘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독립"된 성인으로 "자발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가 도와주는 길일까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기에 어깨만 마주 기댔더랬다.
그 후, 아이를 키우며 늘 머릿속 한켠에 자리한 질문, '어떻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를 풀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만난 이 두 가지 행사는 마치 찾고 있던 문제의 해답을 발견한 것 같아 더 반가웠다. 당장의 교육 정책이나 방향을 개인인 우리가 바꿀 수는 없더라도,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의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던 것.
그래서 내가 찾은 답은 이랬다.
아이가 보내는 시간 속,
아이가 보내는 모든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범위를 열어주고,
눈물나게 어설프더라도.... 어른이 정한 기준에 맞춰 만들려 하지 말고,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것.
그 작은 순간들이 어른인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홀로서기의 시작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