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P.M. (2)

침묵의 시간

by 맨모삼천지교

뉴스를 통해 먼저 알려진 회사의 감원 계획은 같은 팀원들이 들어 있는 채팅창을 정신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 팀이 가장 위기라는 것은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던 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9시에 반갑지 않은 공지 메일이 전 사원을 대상으로 고지되었다.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로 시작되는 진솔한 '척'하는 CEO의 메일은 읽기도 전에 꺼버렸다. 그 후 이어진 감원 대상자들의 퇴직금을 포함한 일종의 패키지에 대한 인사부의 메일을 읽어내려가면서도, 단 몇 달 사이에 달라진 이 모든 상황이 꿈같았다.


'사무실에서 짐을 싸서 나오기라도 했다면... 실감이라도 나지...'


짐을 싸서 나오기는 커녕 오피스는 여전히 폐쇄 상태였고, 매우 급한 일에 한해서만 팀별로 한정된 인원만 사무실을 오가는 것이 가능했다. 전체 직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팀 A는 월요일과 수요일, 팀 B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일시적으로 방문 가능한 상황. 그 결과 수많은 퇴사자들의 짐 역시 이 방문 가능 일정에 따라 방문 및 수취가 가능했는데, 원칙적으로는 '더 이상 직원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피스 입장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이번 상황에 한하여 추후 오피스를 여는 시점에 1층 프런트에서 임시 방문증을 제공하겠다는 메일 속의 친절한 문구가 얄미롭게 느껴졌다.


뉴스 속에 미국 역사상 기록을 갱신중이라는 실업율과, 그에 따른 실업급여 신청자의 행렬에 참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미국 성인 2명 중 1명이 실업인 상태라는데, 하필 좋지 않은 한쪽이라니.


회사에서도 일부 직원들의 경우 상황이 나아지면, 최우선 순위로 재채용을 고려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다른 회사로의 지원 역시 상상도 못할 상황이니 기다림 외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출처 :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0/05/08/business/economy/april-jobs-report.html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뉴욕시에서 뉴욕 주 외의 다른 주로 이동한 사람들의 경우 14일의 자가격리를 거쳐야 함은 물론, 60세 이상의 고령자와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가 공고된지 이미 오래였고 이를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이미 올해 일흔이 넘은 아빠가 한참 진행성 폐암으로 약물로 항암치료를 진행중이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도저히 돌아갈 수는 없었다. 또, 설사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차를 빌려 서 적어도 19시간은 쉼 없이 운전해야 하는데.... 얼마전 다녀온 스키 여행에서 받은 벌점 덕분에 면허는 정지 상태. 그래서 이러나 저러나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온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나를 직접 데릴러 거꾸로 여길 오시겠다고 우기는 아빠 덕분에 결국 큰 소리로 싸우다시피 이야기한 뒤에야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일단 더 견디기로 했다.


그렇게, 머물 이유가 사라졌지만 도망갈 방법도 사라진 이 도시 속에서의 하루하루 속에서 아주 가끔만 그를 떠올렸다. 동시에 그를 사랑한다 생각하고, 그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슬프지 않은 스스로가 더 놀랍기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그는 평온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절대 나와 같이 직업을 잃고 당장 다음 달 집값 낼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설사 직업이 사라져도 걱정할 이유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되새겨졌다.

나는 슬프거나 기쁘다는 감정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정신없이 잘려나가버린 일상을 주워담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을테니. 그러니 굳이 나의 마음을 그의 온전하 삶에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원래 SNS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스티브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본인의 상태를 열심히 타전중이었다. 테니스 코치 크리스는 언제 뉴욕을 떠난 것인지...매일 산과 들판의 사진만 인스타에 가득 도배 중이었고 (하긴, 체육관이며 극장, 공원이 모두 폐쇄되었으니 그의 수입도 제로로 수렴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니 어딘가 떠나는 편이 나았을 듯 하다. 게다가 하루라도 운동 안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사람이니...), 노아는 변함없이 모두가 우울한 이 상황 속에서도 매일 같이 이 바이러스로 뒤집어진 이 사회를 비웃는 웃긴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메리는 불과 4개월전 이직했던 디자인 스타트업에서 한달치 월급도 못받고 짤렸다며 "Where is Justice!!!!(정의는 어디에!!) "라는식의 울분에 찬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가득 올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 못읽을 정도로 업데이트 되는 새로운 뉴스와 각자의 새로운 일상들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줄어들어갔다. 매일 진행되는 백악관의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을 두고 트럼프의 어이없는 발표를 비웃으며 떠들던 지인들의 채팅창도 말수를 잃어갔다.


다들 할 이야기도, 주목할 거리도 없이 하루하루...

그저 오늘이 지나길, 내일이 오길, 그리고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이 되길 바라는 시간의 연속 속에 무료한 하루가 쉼 없이 저물어갔다.

마치, 숨을 들이마셨다 내 쉬는 것을 잊어버린 채.

있는 대로 허파 가득 그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도시 속에서.


그런 모두가, 유일하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집 안에서 마치 소라게처럼 웅크리고 있을 뿐 살아는 있구나...라고 되새기는 순간은 있었다.

하루에 딱 한번 저녁 7시 정각.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경찰관, 슈퍼와 약국의 판매직원들 등.... 모두가 바이러스로 집안으로 숨은 상황에서도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가 하루에 한 번, 창문을 열고 박수를 치는 그 시간.

유리컵을 두드리기도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기도 하는 모두가 약속한 2분의 소음 속에는, 이 순간을 위해서 종일 기다렸나 싶을 정도로 매일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사람과 아이의 내용을 알 수 없는 괴성까지 매일매일 각양각색의 소리로 다양했고, 매일 조금씩 더 커졌다.


하지만, 분명 이들이 소리로 환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 역시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임에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 말하는 것도 어색한데 환호성을 지르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왠지 모르게 입 밖으로 큰 소리를 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을 떼는 순간 뭔가 더 잘못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7시면 창가를 지키며 입으로는 소리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2분의 환호성이 끝나고

모두가 창문을 닫을 때까지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Part 3는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우선, 습작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 속의 주인공 애니처럼...저 역시 꽤 긴 우울한 도시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정신줄을 잡고, 평상을 아무리 유지하려 애썼지만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네요. 그래서 읽으신 분들이 눌러주시는 [좋아요]는 힘내서 또 써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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