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오늘 병원선 메르씨(Mercy)가 뉴욕을 떠납니다. 지난 3월 30일 급격히 증가하는 확진자 숫자로 인해 부족한 병상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도착한 미 해군함의 병원선 메르씨(Mercy)는 약 한달여간의 지원을 마치고 다음 지원이 필요한 도시가 확정될 때까지 소속항인 버지니아 항구로 돌아갈 예정입니다.메르씨는 약 1천여개의 병상을...."
집에 있기 시작한 이후로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연결해주는 TV 속 뉴스에서 병원선 메르씨(Mercy)가 뉴욕을 떠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병원선...? 아!’
화면을 보고 나서야 어렴풋이 한 달 전 즈음 병원선의 도착을 알리던 뉴스 화면이 떠올랐다. 거대한 군함이 온통 하얀색 옷을 입고 핏빛의 십자가를 달고 있는 모습. 마치 바다에 둥둥 떠있는 앰뷸런스 같은 병원선 메르씨의 도착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곳이 얼마나 비극의 한가운데 있는 지를 보여주는 증표 같았다. 911 테러 당시 처음 뉴욕에 왔었다는 메르씨가 도착한 날은 마침,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2개의 불기둥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숫자를 넘어선 날이었다. 메르씨의 도착과 함께 당분간 도시의 모든 국기를 조기로 게양할 것이라는 주지사의 이야기를 전하던 앵커의 뒤로도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배경음으로 수없이 들려왔었다.
그런데 그 배가 이제 뉴욕을 떠난단다.
‘그만큼...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일까?
이제 저 배가 없어도 무언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늘 습관처럼 틀어놓고도 막상 보지는 않고 라디오처럼 홀로 울리게 두었던 TV 앞에 가만히 앉아... 눈과 귀를 한데 기울이며 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집중했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브로드웨이의 모든 쇼가 중지되고... 회사도, 공원도 모두 폐쇄된 3월의 도시였지만, 뉴스 속의 상황과 상관없이 회사의 동료들과 친구들의 삶은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만 가지 않을 뿐... 어디든 열려 있는 곳을 찾아 단체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했고, 파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바이러스와 관련된 음모론이 가득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계속 공유하며, 도시를 폐쇄한 것은 겁쟁이들의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고 비난하는 친구까지.
그래서 식료품 조차 동네 작은 슈퍼에서 배달로만 조달하고 있어서, 정말이지 집 밖에 단 한 발짝도 안 나가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너무 심하게 유난 떤다'라고 했다. 사실 나 역시 바이러스가 너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스티브와의 일도 그렇고, 회사의 분위기도 좋지 않아 더 나쁜 무언가를 나의 상황에 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 뿐, 공포에 질려 집안으로 숨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이 만나게 되면 물어볼 스티브의 안부에 무어라 답하는게 좋을 지도 몰랐기 때문인 것 역시 나의 자발적 칩거에 한 몫했다. 그 후 결국 팀까지 해체되고 정리해고 대상에 오르고 보니... 바이러스 조차 나의 불행을 따라 집 앞으로 찾아오고야 말 것 같은 마음에, 낯설지만 동굴 같은 나의 공간 속에 더 머물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한동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소식이 없던 수다쟁이 노아가 거의 일주일 가까이 바이러스에 걸려서 정말 죽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코끼리가 가슴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며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걸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맛을 못느끼고 있다는 고충도 함께. 그리고 그즈음 같은 팀이었던 라일리가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팀 채팅창에 공유하며 고통의 순간 가족조차도 곁에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잔인한 바이러스의 비극을 알렸다. 그렇게 모두의 주변에 하나 둘, 실제 본인이 아프거나 친구 또는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언제나처럼 모임을 주선하고 만나자고 이야기하던 에너지 과잉의 사람들 조차 서서히 숨죽이며 가라앉아간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치 숨을 토해내는 법을 잊은 듯 멈춘 도시로 둥둥 떠왔던
병원선이 떠난다는 소식.
손에 든 채 마시는 것도 잊고 있던 탄산수를 한 모금 넘기는데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끔거림이
묘하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뜯지 않은 몇개의 박스중 하나에 박혀있던 에코백을 발굴하듯 찾아내어 손에 들었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10블록 너머의 트레이더 조(Trader Joe***)까지 걸어가 보기로 하고 나선 길. 특별히 꼭 거기서 살 것이 있다기보다는, 늘 전화로 주문하고 제품을 배달 해주던 집 앞 슈퍼가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 앞의 모퉁이 작은 델리 (Deli: 식재료를 위주로 생필품도 일부 구비하는 동네의 소규모 슈퍼를 주로 일컫는다. 직접 요리한 음식을 팔기도 한다)가 동네 일부 가까운 건물들에만 저렴한 배달비로 배달 서비스를 한다는 정보는 지금 아파트의 주인 할머니 베로니카에게 전해받은 정보였다.
이미 은퇴한지 오래인 전직 교사라는 베로니카 할머니는, 집 계약할때 한번 본 것이 전부였다. 이 집에 머문 적이 없어 요청할 것은 없었지만 월세는 단한번도 밀리지 않고 내고 있던터라 따로 연락할 일은 없었었다. 그런데, 박스더미와 함께 정신없이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문자가 한통 왔다.
[잘 지냈어요? 집에 있는 것 같아 문자 합니다. 화장실 환기구 쪽 유리창 바깥쪽 배관을 교체하는 공사를 하다가 유리에 조금 금이 갔었어요. 교체가 필요한 정도인지 보고 알려주세요.]
'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주친 적도 없고, 집 안에서 큰 소음을 내는 것도 아닌지라 매우 의아했지만 '선을 넘지 않는 정중한 말투의 집주인'이란 콘크리트 정글같은 뉴욕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희귀종이라는 생각에, 얼른 답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유리창은 모퉁이가 살짝 깨져있어서 교체를 하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의뢰하고 청구드리면 될까요?]
[우리가 쓰는 빌딩 관리사가 있어요. 집을 잠시 비워줘야 할텐데, 가능한 날짜를 알려주세요. 제가 이야기해두죠.]
마냥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어쩔까 고민하다가 화상회의 시간에 늦었다는 사실에 답하는 것도 까맣게 잊고 그 날이 지나버렸었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부랴부랴 보낸 답.
[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일하다 깜빡하고 답이 늦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쭉 해야하는 상황이라서요..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좀 지내보고 추후에 다시 요청드리겠습니다. ]
[그래요, 바쁘죠...편하게 해요. 참. 혹시 동네 관련해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요. 편하게]
마치 내가 집만 얻어놓고 살지 않다가, 이제 살게 된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베로니카 할머니는 그 후에도 간간히 내가 잘 있는 지 문자로 안부를 물어오며 이런저런 동네 주민 생활 정보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알게된 깨알같은 정보중 하나가 바로 이 델리였던 것!
홀푸드*나 프레시 다이렉트**가 주문 폭주로 막혀버린 상황에도 100달러 정도만 구매하면 당일 저녁에 배달까지 해주는 이 작은 델리는, 집콕 라이프에 무엇보다 소중한 지원군이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온라인 주문 사이트 따위는 없어서, 필요한 품목 리스트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19세기 주문방식이었는데, 그것 역시 시간이 좀 지나니 나름 익숙해졌더랬다.
그런데, 그 델리가 그저께부터는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던 것. 더 기다리기에는 크지도 않은 냉장고가 텅 비어가서 사냥을 나가는 원시인의 심정으로 결국 에코백을 옆구리에 끼고 문 밖을 나섰다. 그리고, 일단 가는 길목이니 델리를 먼저 들려보았다.
분명 입구에는 “Open”이라는 표지가 걸려있는데 가게 안의 불은 꺼져있고 인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오래된 만큼 허술해 보이는 문에는 작은 걸쇠가 전부인 이상한 상황속에 발걸음을 돌려 트레이더 조로 걸어가는데, 저만치 집주인 할머니 베로니카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오오.. 애니..잘 지냈어요?”
“네.. 저는 뭐 계속 집에만 있어서요.”
“그쵸..그게 모두를 돕는거니..그런데 어디 가는 길인가 봐요?”
“네, 델리가 전화가 안되어서 장보러 가려고 나왔어요.”
“...... 가게 당분간 못 열거예요”
“네? 왜요??”
“앤써니 어제 갔어요. 하늘로”
“네?? 앤써니라면, 그 주인분이요?? 혹시..”
“맞아요. 배달 다니던 직원이 하나 코로나에 걸려서 본인이 요즘 직접 배달 다녔는데... 언제 걸렸는지 모르게 걸려서 입원한다고 들었는데, 나흘만에 갑자기 어제... 갔네요.”
“아...친하셨나봐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마음 아프시겠어요."
"...갈 때가 되었겠거니 하는데. 장례식도 못가보니 마음이 무겁네요. 애니도 늘 건강 조심해요. 마스크랑 장갑 챙겼죠?"
"네..."
떠나는 병원선을 바라보며, 이제 많이 나아졌다, 이제 발걸음을 떼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하루였는데.
고칠 새도 없이 무너져버려, 채 뒤집어 걸지도 못한 OPEN 싸인을 본 것 같은 기분.
그 때.
주머니 속의 전화가 울렸다.
거의 두달만에 보는 이름. 스티브였다.
스티브는 무슨 일로 애니에게 전화를 했을까요?
병원선이 떠난 뉴욕은...어떤 모습으로 남아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계속해 나갔을까요?
그리고 그 안의 애니는 어떻게 될까요...?
4편은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참조]
*Wholefoods : 유기농 식자재 대형체인, 미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Amazon의 계열사로 온/오프라인 구매가 모두 가능하다.)
**Fresh Direct : 한국의 마켓컬리와 같은 식자재 주문 온라인몰. 프레시 다이렉트를 통해서만 구매 가능한 신선식품들이 있으며 연회비를 내면 배송비가 무료라 인기)
***Trader Joe: 유기농 식자재를 주로 취급하는 미국의 식자재를 주로 다루는 대형 마켓. 저렴한 가격은 물론 특징 있는 자체 제작 상품들로 한국에서도 해외직구로 구매하는 주부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