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P.M. (4)

by 맨모삼천지교

"애니.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러네. 오랜만이네."

"회사는...?"

"아, 기사 봤구나. 뭐.... 그렇게 되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묵이 이어졌다.

전화를 받지 말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궁금하기도 했다. 이 난리통의 그는 어땠는지. 물론 늘 그랬듯 그는 충분히 잘.. 지냈겠지만.


잠시 이어진 침묵 끝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집을 당분간 비울 예정이라 짐을 좀 정리하는 중인데.

당신 물건이 꽤 나와서 어째야 할까 해서."


"이사하나 봐?"
"응. 당분간 롱아일랜드 집에 가있으려고."

"아.. 나올 때 다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게 있었나 보네.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게 아닌 걸 보면 급한 건 없을 것 같아. 나중에 상황 좀 더 괜찮아지면 내가 가지러 가던지 할게."

"알겠어......... 그리고."

"............. 응?"

"미안했어."

"...........

................잘 지내."


바람나 헤어진 전 남자 친구의 오랜만의 전화가 겨우 짐 때문이었다니 화가 날 법도 한데, 그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는 늘 감정을 내비치는 쪽을 더 저열하게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때문에 격한 싸움이 없이도 헤어진 우리였는데.


참 묘했다. 이제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짐을 싸서 나오던 그날 밤에도 분명 그는 내 뒤에서 오늘과 같이 읊조리듯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건넸었다. 마치 해야 할 이야기라 한다는 톤으로, 나를 바로 보지도 않고 내 뒤에서 그렇게. 그래서 그 말은 정말이지 하나도 미안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답하지 않은 채 그 말을 뒤로하고 걸어 나왔다.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나 자신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오늘 그의 미안하다는 말속에는 조금은 더 진심이 느껴졌다. 왜일까.


스티브의 부모님은... 구글에 이름만 검색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분들이었다. 러시아계 유태인인 스티브의 할아버지는 뉴욕에 정착한 이민 1세대였고, 스티브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유태인 가족들이 그러하듯 부모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으며 판사로 안정적인 평판을 쌓아갔었다. 스티브가 막 고등학교를 다니던 쉰 살 즈음, 이웃의 TV 제작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범죄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한 것이 유명세를 얻어... 중산층에 속했던 그의 삶도 상류층의 그것으로 한순간에 변화했다고 한다. 물론, 내가 만난 시점의 스티브와 그의 가족들은 이미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풍족한 생활이 완벽히 몸에 배어있었지만 말이다. 흔히들 뉴욕을 일컬어 욕망의 도시라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스티브의 아버지와 같이 법조계라는 검증된 '지성'까지 겸비하며 유명세를 얻어 탄탄한 대중의 인지도를 겸비하는 경우는, 바로 그 욕망의 사다리를 성공적으로 타고 올라간 케이스였다.

그런 그의 가족에게는 미국 내는 물론 유럽에도 몇 개의 별장이 있었는데, 그중 스티브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맨해튼에서도 가까운 롱아일랜드 비치에 있었다. 다른 곳들에 비해, 가장 처음에 산 별장이었다는 그곳은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어서인지 다른 곳보다 스티브는 그곳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곳으로 당분간 아예 가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매우 이상했다.


대부분의 직장과 시설이 문을 닫은 3월 중순 이후, 내가 아는 '회사를 취미로' 다녀도 상관없는-즉, 당장 그만두어도 전혀 경제적인 타격이 없는- 여유로운 사람들과 본인의 근무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고위직들은 이미 진작에 뉴욕을 떠나 한적한 교외나 따뜻한 날씨의 휴양지 별장으로 떠나갔다.

반대로 나와 같이 꿈을 따라 뉴욕으로 달려와, 한 달을 벌어 한 달 집세를 내고... 미래를 보며 버티던 많은 사람들은 직업을 잃고 집세조차 낼 수 없게 되어 또 도시를 떠났다. 만약 나도 스티브와 함께 동거하는 와중에 의도치 않게 모아진 생활비 여유분이 아니었다면, 집에 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더라도 낼 수 있는 집세가 없어 떠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결론적으로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가 집안에 갇혀버린지 거의 두어 달이 되어가는 지금의 뉴욕.. 그것도 맨해튼에는,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집에서 컴퓨터로 안정적으로 일하며 수입에 큰 변화가 없는' 중상위층의 화이트 칼라의 직업 소유자들만 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등 떠밀려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은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교외로 떠날 정도의 여유나 다른 선택지가 뚜렷하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충분히 이미 도시를 떠나고도 남았을 그가... 이제야 뒤늦게 떠난다는 것이 거꾸로 의아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하지만, 이미 끊은 전화기 너머의 그에게 문자로 그 이유를 묻지는 않기로 했다. 내 감정에 대한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으로.


오랜만에 간 마트는 불과 몇 개월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한동안 큰 마트를 간 적이 없어 그간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 밖에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아마도 안에 머무는 사람의 수를 통제하느라 입장 대기줄이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앞사람과 약 2미터(6피트)씩은 간격을 둔 채 마트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노라니 앞에 붙어 있는 고지물이 눈에 띄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내부 입장 불가합니다. 임직원을 지키기 위한 조치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


마트 안으로 들어서니, 바닥에도 사람들의 동선을 알리는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전에는 자유로이 오가던 길에도 각각 일방통행, 우측통행의 스티커들이 붙어 있어 이전처럼 자유로이 가고 싶은 곳을 오가며 물건을 고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마켓 안은 인구 밀도가 낮았고 계산을 위해서 서있는 사람들도 차분하고 질서 정연했다. 너무 오랜만에 밖에 나와 계절을 잘못 감지한 내 옷차림만 마치 늦겨울 같을 뿐, 다른 사람들의 복장은 이미 변해버린 날씨만큼 꽤 가벼워 보였다.

아직 휴지와 키친타월이 있는 섹션은 다른 곳에 비해서 물건이 차있지 않았지만 내가 필요한 정도의 휴지는 사는데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는 급히 필요한 몇 가지만 가지고 나올 예정이었는데... 마트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딱히 그동안 안 먹고 지낸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식재료들을 보니 신기하게도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하긴, 한동안 거의 같은 음식만 먹고 억눌렸던 식욕이 나올 법도 했다.


두 팔이 뻐근하도록 가득 산 물건들을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과는 분명 다른 거리를 둘러보며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나무들은 연한 잎을 내밀며 자라고 있었고, 화단에 새로 심어진 꽃들은 마치 내가 잠들어 있던 순간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귀에 대고 소리치는 듯했다. 완전히 문을 닫아걸었던 가게들은 문을 열고 있다는 현수막을 걸고, 테이블을 밖에 내두고 Take out(테이크아웃)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켜는 도시의 에너지를 마주하며 돌아오는 길의 바람은 부드러웠고, 문을 연 카페 밖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나른해 보였다. 길가로 드리워진 누군가의 집 계단 위에 잠시 무거운 봉투를 양 발 옆에 내려놓고, 마스크를 잠시 내렸다.


한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함께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와 가슴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젖혔다. 눈에 들어오는 막 피어난 꽃과 그 너머의 하늘.

끝을 보지도 못한 겨울이 가고, 눈 앞은 봄이었다.





벌써 4화네요.


코로나와 함께 맞이한 봄 산책을 기억하며 적어 내려 갔습니다. 애니에게도... 이제 봄이 올까요?


만날 수 있다면.

문 앞에 와인 한 병 걸어주고 와주고 싶을 만큼, 자기감정도 소리 내어 크게 이야기 못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는데. 좋아진 날씨만큼 그녀에게도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7/24일 발행될 (5)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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