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안녕하세요. 사진가 황선희입니다. 저는 지난여름에 두 딸(7살, 3살)을 데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2주간 다녀왔는데요, 이 글은 기존의 사진가의 시선이 아닌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해병 훈련 가족 여행을 다녀온 평범한 아빠의 입장에서 쓴 가벼운 여행기입니다. 진지한 삶의 성찰 혹은 타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선들 그런 건 없습니다. 자, 그럼 수박 겉핡기식의 캘리포니아 여행기, 함께 떠나볼까요? ^^
처음 도착하자마자 묵었던 쇼어 호텔은 산타 모니카 해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부티끄 호텔로 깔끔한 외관과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무척이나 맘에 드는 곳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엔 다소 편의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후의 느린 햇살이 통유리를 통해 길게 드리워지는 로비 전경을 바라보는데 순간 아! 이런 게 바로 캘리포니아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시, 이곳에서 소송에 민감한 미국 특유의 liability(라이빌러티) 때문에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되면서 '이번 여행,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liability(라이빌러티)란?
우리말로 법적 책임에 해당하는 단어로,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심심찮게 듣게 되는 단어입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빌리는 과정에서부터 라이빌러티의 위력을 실감했는데요,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카시트에 앉혀야 하기 때문에 차량을 렌트하면서 두 개의 카시트 (주니어용과 토들러용)를 함께 주문했었습니다. 처음 보는 카시트이기도 하고 ISOFIX 장착이 되어 있지 않아 차를 인수해주는 매니저에게 카시트 장착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더니 라이빌러티 때문에 자기들이 해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는 조금 황당한 말을 해주더군요. 만에 하나 자기들이 장착을 해줬다가 사고가 나서 뭔가 잘못되면, 자기들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옆에서 설명을 해 줄 수는 있어도 대신 설치는 못해준다고, 정말 나도 해주고 싶은데 못해줘서 미안하단 뉘앙스로 말을 하는데, 진짜 디스 이즈 아메리카! 그렇지! 이래야 미국이지!! 쓴웃음을 삼키며 낑낑거리며 카시트를 장착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머문 쇼어 호텔에서도 라이빌러티 이슈는 계속되었습니다. 객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뜨거운 물에 의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전자레인지며 물을 끓이는 전기 주전자 등 일체의 비품들을 모두 없애버렸더군요. 덕분에 이제 막 24개월이 지난 둘째의 이유식으로 준비해 온 햇반을 데울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객실에서는 안되더라도 직접 가지러 갈 테니 룸서비스 차원으로 호텔 내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를 대신 이용해서 데워다 주기만 하면 안 되냐고 아주 상냥히 (그러나 간곡히) 물었으나 대답은 노! 외부 음식은 라이빌러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하지만 이해해달라는 야멸찬 답변만 돌아오더군요. 그렇지! 이렇게 융통성 없이 굴어야 미국이지! 흥!
하지만 좋은 점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비록 키즈 프렌들리 하진 않은 곳이었지만, 나름 부띠크 호텔답게 아기자기한 미니 풀이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리기에 좋았습니다. 사실 물놀이를 하기엔 바닷가보단 풀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좋죠. 아이들의 관점에선 잘 모르겠으나 아빠의 관점에선 그렇습니다. ㅎㅎㅎ 모래 없고, 깨끗하고, 씻기기 편하고...
산타모니카 비치
산타모니카 비치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7년 전에 와이프와 둘이서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른 둘이 참 여유롭게 말리부, 라구나, 산타모니카... 그것이 애 없는 부부들의 특권인 줄도 모르고 유유자적 돌아다녔었는데, 이제 한 명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하나(바로 저)는 장비 가득한 백팩을 어깨에 메고 모래 구덩이에 빠져 덜거덕 거리는 유모차를 억지로 밀으며 걸으려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막 힘들고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ㅎㅎ) 버바 검프 레스토랑도 여전히 그대로고 저 바다도 그대로인데 저와 와이프만 변했더군요. 이런 감상에 젖을 찰나 역시 아이 둘의 아빠에게 감상은 사치, 유모차에서 내려서 자기도 언니 따라 직접 걷겠다는 둘째의 울음+생떼 콤보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산타모니카 해변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했지만 그때 느꼈던 자애로움은 없었습니다.
산타모니카의 해변을 거닐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해운대에서 봤던 비치파라솔들이 떠올랐습니다. 네, 그 압도적인 숫자로 기네스에도 올랐다는 비치파라솔들. 여기가 부산의 해운대보다도 더 유명한 휴양지라면 휴양지인데 왜 그런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여기 산타모니카나 말리부와 같은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해변에서는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장사를 할 수 없게 해 놨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도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스크림을 팔거나 일회용 돗자리 따위를 파는 상인들이 돌아다니긴 합니다만 바닷가를 이용하기 위해 일종의 입장료처럼 원치 않아도 내야만 하는 자릿세 따위는 없습니다. 일종의 공공재 역할을 하는 것인데 물론 외국에도 사유지에 해당하는 바닷가들이 있어 입장료를 내거나 아예 출입을 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곳들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우리의 아침을 책임졌던 IHOP(아이합) 팬케익 하우스. 지금도 미국 여행에서 가장 생각나는 건 아침마다 먹었던 따뜻한 팬케익과 진한 커피 한 잔입니다. 저에게 미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여기 IHOP과 같은 다이너의 풍경들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뚱뚱한 웨이트리스가 드립 커피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커피를 따라주는 모습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는데요 실제로 이렇다 할만한 전통 음식이라고 내세울게 별로 없는 미국 사람들에게 이러한 가정식 느낌의 식사야말로 미국 전통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름부터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라니 ㅎㅎ
Getty Center (게티 센터)
LA에 오면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게티 센터였습니다. 폴 게티의 컬렉션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도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흥분됐었거든요.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프라이즈 상'(Pritzker prize)을 50세의 최연소 나이로 받았고, 이 기록은 여전히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건축에 화이트만 고집하고 장식과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며 극단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은 그래서 백색 건축이라는 별명이 붙는데,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작업에 고집스럽게 화이트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게티 센터를 지을 때 건물에 컬러를 쓰길 원하는 건축주와의 갈등 때문에 타협점으로 베이지를 쓴 것은 유명한 일화죠. 그가 이토록 화이트만을 고집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요, 태양의 빛을 어느 각도에서 어떤 시각에 받아들이냐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은 화이트가 유일하기 때문에 화이트는 모든 색이고 가장 완벽한 색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하는군요. 화이트에 관한 그의 철학은 그의 저서 [리처드 마이어의 30가지 색]이라는 책도 있듯 거의 종교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강릉에 있는 SEAMARQ 호텔은 리쳐드 마이어가 건축한 국내 최초의 건축물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
여러 가지 상설전,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어 볼거리들이 많았는데 제가 방문했던 기간에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특별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LACMA, GEROGE PAGE MUSEUM(LA BREA TAR PITS)
여행을 하는 동안에 가끔, 아니 자주 미국은 정말 복 받은 나라로구나 하는 걸 느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여기 라끄마(LACMA)라고 부르는 LA 카운티 뮤지엄과 조지 페이지 뮤지엄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두 곳은 서로 붙어 있어 같이 방문하기에 좋은데, 여기 조지 페이 뮤지엄 앞을 가면 La Brea Tar Pits(라 브레아 타르 연못으로 줄여서 탈핏이라고 부릅니다)를 볼 수 있습니다. 약 4만 년 전 지진으로 인해 캘리포니아 해저에서 원유(아스팔트)가 흘러나와 타르 연못을 이룬 곳으로 이 안에 빠진 수많은 생물들이 산채로 매장이 되어 매머드를 비롯한 빙하기 시대의 많은 동, 식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 발굴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석 군락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근처를 지나가면 고약한 타르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크으...
얼마전 유림이가 만든 그림책 '공룡과 떠나자'를 보면 여기에서의 기억들이 강렬하게 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과 마주하게 되면 아이들과의 여행이 고행길이어도 그나마 헛수고한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아주 조. 금. 은.
인데버를 직접 본 사이언스 센터나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대망의 디즈니랜드 이야기는 글의 편의를 위해 PART 2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