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휴일, 간만에 한강을 달렸다. 정말 좋은 계절 속에 있구나를 실감하면서. 뛰다가 찍다가 뛰다가 찍다가...사진을 하면서 생긴 안 좋은 습관 중 하나가 무엇을 하든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진과 스마트 폰이 만나면서 생긴 습관인데,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내가 너무 시각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그러면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은데, 그게 알면서도 잘 안된다. 그렇게 생겨먹은 건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것_
평생 노력하는 수밖에.
어렸을 적 집 마당에 심었던 꽃과 나무들이 가끔 떠오른다. 해마다 백반 냄새와 함께 봉숭아 물을 들이며 쪼글쪼글해진 새끼손가락이 부끄러워 주먹을 꽉 움켜쥐고 다니던 기억들. 사루비아 꽃잎을 다 따 먹어서 주인집 아줌마한테 혼이 나던 기억들. 서러워 울면서 집으로 도망쳤던 기억들... 전부 너무 희미해져 이제는 정말로 겪었던 일들이 맞는지 가끔 의심이 가는 기억들이다. 사람의 기억들을 전부 다 데이터화 한다면 그게 총 얼마만큼의 분량이 나올까. 16기가 메모리 하나면 충분할까...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흐뭇해하며 샤워를 했다.
우린 정말 좋은 계절 속에 있구나.
2018 10. 03.
all photos are taken by iphon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