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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쉬탈트폴.2

나를 잃고 너를 이해하다.

by 김선희

01. 파란 원피스




지희는 엑셀러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신호등이 황색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딘가 조급했다. 그녀 자신도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불안이 계속되었다. 특히 은서와 나눈 톡 이후로는 더더욱.

무슨 일일까.

한여름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칙칙했다. 창밖을 스치는 바람도 태양열에 달궈져 마치 헤어드라이어가 온몸을 훑는 것 같다. 지희는 무심결에 조수석에 놓인 텀블러를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움에 잠시 멈칫했다. 마치 얼음 조각이라도 건져내듯, 지금의 이 불안한 감정을 식히고 싶었다.

은서는 지희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멀어졌고,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지희의 기억 속 은서는 조용하고 눈이 예뻤던 착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초등 동창 모임 커뮤니티인 밴드에서이다.

어느 날 준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희야, 너 은서 기억나? 김은서."

"김은서? 야, 어떤 김은서 말하는 거야? 내가 아는 김은서만 세 명이야."

"왜, 그 조용하고 눈 크고, 우리 동네 골목 위 끝에 살던 애 있잖아."

"아, 2반 김은서! 얼굴만 알지. 친하게 지내본 적은 없어서 잘 몰라."

"그래, 그 김은서. 지금 밴드에 들어왔어. 내가 딱 알아봤다니까! 근데 그 녀석 은근 매력 있더라? 미국인가 캐나다에서 살다 잠시 한국에 들렀다는데... 요즘 고향 동창들 사이에서 은서 얘기로 난리야. 빨리 들어와 봐."

훈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다. 누나가 여럿 있고 피부가 하얀 데다 곱상하게 생겨 또래 남학생들보다는 여자아이들과 더 잘 어울렸던 아이였다. 그의 호들갑에 지희는 폰을 열었고, 그렇게 은서를 20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훈이 말대로, 아이들은 은서에게 큰 호기심을 보였고, 대화창의 알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가식 없는 은서의 말투, 친구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 위트와 친근함이 지희에게도 전해졌다. 뭐지? 이 기분 좋은 청량함은. 글만 보고 있는데도 그녀의 웃음소리와 표정이 그려졌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맑은 느낌이 지희를 미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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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민출판사의 편집장입니다. 매일 매 순간 다양한 작가의 삶들을 만납니다. 저의 화두는 항상 사람입니다. 제가 만났던 그리고 스쳐갔던 사람들의 빛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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