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 가족이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것에 반대하지 않은 것에 가깝지만 갓 성인이 된 나는 덩달아 이민자로 자랐다. 20대를 모두 보낸 뒤 서울에 돌아왔더니 한국이 놀라웠다. 눌러앉아 동거인을 만났다. 정착을 했다. 그리고 가끔 두 번째 고향에 돌아간다. 사람들과 식탁을 두고 웃음을 주고받기 위해 10시간의 비행을 떠난다. 고향에 다녀왔다.
친구에게 표를 받았다. 카페 아르티지아노에서 아침을 먹고 전시를 보았다.
구석에 적힌 싸인을 찾는 일과 오래된 액자의 이름표를 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아침마다 호텔에서 보이는 산과 창과 땅을 구경했다.
선물용으로 산 디저트를 에라 모르겠다며 함께 퍼먹는 일.
중국 이민자들이 도시의 한쪽을 차지한 이곳에는 훌륭한 식당이 가득하다. 일행이었던 둘을 제외하고는 비-아시안을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던 아시안의 비율을 즐겼다.
같은 호텔에서 일주일을 지냈더니 아침마다 동서남북 모든 반경의 골목을 산책했다.
20대의 가난을 모두 밴쿠버에 부었더니, 추억이 서린 곳들이라고는 팀 홀튼이나 서브웨이밖에 없었다. 몇 년 만에 돌아간 밴쿠버는 월세가 올라있었고, 그만큼의 물가도 치솟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질 좋은 식사를 곁들일 수 있게 된 나를 대견해했다.
배경에 초점이 맞은 사진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구경했던 산과 창과 땅.
돌아가기 전날에는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잔치를 차려주었다.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 식탁과 소파에서 자리를 잡고 술과 음료를 들며 말을 던졌다. 누군가가 잡으면 그다음을 꺼냈고, 건네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쪽으로 던졌다. 말 뭉치가 끊이지 않았다. 고향에는 가족이 있었다.
자가 제작 음식의 향연을 마쳤더니 파이 두 개가 오븐에서 튀어나왔다. 도무지 이길 수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지는 것이 기뻤다. 호의를 온전히 받고, 다음 호의를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해 준 나의 고향에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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