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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Dec 12. 2022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Building in Public

몇 달 전 패스트벤쳐스의 Textbook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예비/초기 창업자를 위한 무료 온라인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소개가 붙어있었지만, 실상은 ‘창업하려면 제발 이 정도는 알고 시작하세요!’ 턱받이를 들고 다니며 VC가 떠먹여주는 수업이었습니다. 마켓 컬리의 김슬아 대표, 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 에이블리의 강석훈 대표와 같은 사업가들이 나와 창업에 대해, 그리고 창업을 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10주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패스트벤쳐스는 이런 자료를 왜 무료로 나눠주고 있을까요?


처음 창업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창업의 영역 중, ‘창조’라는 단어에 쉽게 집착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에 집착하거나, 기술에 집착하거나, 또는 시류에 집착합니다. 그런데 창업에는 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가 창조한 사업을 ‘계속’ 해나가는 일입니다.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기술을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시류에 맞게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창조’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계속’도 중요합니다. 그 계속은 누가 해야 할까요? 바로 사업을 만든 그 사람입니다.


왜 이런 뻔한 말을 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제가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0년 여름, 저는 디자이너로 볼하우스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로고와 간판을 바꾸는 간단한 작업으로 시작된 대화는, 인테리어와 가격 정책 그리고 운영 방식까지 바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장소’를 만드는 일로 발전했습니다. 스페어룸이라는 회사를 구두로 설립하고 컨설팅에 가까운 형태로 오픈을 준비하던 중, 운영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컨셉을 제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가치있는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 가을, 볼하우스의 운영진으로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11월부터 코로나로 인한 방역 지침에 따라 오프라인 공간에 계속되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술과 음식을 팔 수 없게 되자 매출의 1/4이 줄어들었습니다. 9시 이후에 문을 열 수 없게 되니 매출의 1/2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 모든 실내체육시설에 영업 중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40일간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문을 닫는 기간 중에도 내야 할 몇 천만원의 월세와 책임질 월급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니 통장을 까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어떻게 나가는지 봐야 합니다. 직원들의 스케쥴도 조정해야 합니다. 닫혀 있는 시간 동안 리브랜딩도 해보고, 기존 고객군이 아닌 곳들에 영업도 합니다. 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해 생각나는 모든 수를 다해봅니다. 볼하우스의 회계, 재무, 인사, 마케팅, 영업까지 다 직접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치워 나갔습니다. 나중에서야 우리가 한 일이 경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창업을 생각하면 창조하는 부분이 참 중요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일입니다. 경영해 나가는 일입니다. 내가 잘하는 부분도 있고, 하기 싫은 부분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은 부분도 있고, 안해도 될 것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 해야합니다. 내가 계속 해야합니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경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저도 여전히 잘 모릅니다. 세상에 나와있는 경영서를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고, 패스트벤쳐스의 Textbook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 Y Combinator의 스타트업 스쿨에 참가하면서, 제가 한 일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책을 읽고 수업을 듣는다고 경영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읽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돌아봅니다. 계속해서 다음을 준비합니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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