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와 일본 재단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he Tokyo Toilet Project)는 도쿄의 시부야구와 일본 재단(Nippon Foundation)이 협력해서 추진한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다. 2020년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맞아 어둡고, 더럽고, 무서운 공중화장실의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시부야구의 17개 공중화장실을 리디자인했다. 16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했고, 파란색 점프슈트는 휴먼메이드의 니고가 디자인했다. 홍보를 위해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에게 연출을 제안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아름다운 기획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건축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이 청소를 하는 모든 장면이 좋았다. 세면대와 변기, 거울의 안 보이는 곳 까지도 모두 닦는 직업윤리가 좋았다. 주인공은 언제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고, 더 효율적인 도구를 가져오고, 손님이 들어오면 나와서 기다린다. 매일매일 화장실을 깨끗이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고, 돌발 상황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다. 그러면서도 비는 시간에는 하늘을 본다. 숨겨둔 틱택토(tic-tac-toe)를 남기기도 한다. 억울한 상황에는 화를 쏟아 붙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시간에 여유를 찾는 법을 안다. 주인공의 직업윤리를 구경할 수 있는 모든 장면이 좋았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일본 재단(Nippon Foundation)은 전범 기업이다.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도박 사업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세운 비영리 단체다. 사사카와는 가미가제 특공대 개념을 설립하기도 했고, 일본 재단은 전쟁범죄를 미화하는 역사왜곡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왜곡을 하는 일이 직업윤리일지도 모른다. 그 의도가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보고 말았지만, 이러한 배경을 한 명이라도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 직업윤리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결과와 찝찝한 배후는 공존할 수도 있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이기고 싶은 곳에서는 싸우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