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Nov 27. 2023

위로와 치유

사다리를 오르면

11월 24일 금요일 눈이 부시게 맑다 흐리다.

블랙프라이데이, 이날이 아니면 세상 물건이 동나는 줄 알고 새벽 줄 서기를 마지않던 풍경이 낯설어진다. 딸들과 함께 이쁜 쓰레기를 믿지 못할 가격에 샀다고 흥분하던 시절이 있었나 싶다. 팬데믹은 우리에게서 그 시절도 추억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사위는 블랙프라이데이에 만능 트랜스포머 사다리를(길이와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100불이나 할인된 가격에 샀다고 좋아했다. 높은 천장이나 사선의 벽에 받침을 놓기에도 용이한 다재다능의 사다리라고. 관절을 꺾듯이 연결 부위를 이리저리 돌리며 만들어지는 모습이 팝핀현준의 춤사위 같은 사다리.


내게도 사다리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화살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면 나풀거리는 꽃무늬 모자를 쓰고 비닐봉지는 팔목에 걸고 뜰에 선다. 눈높이에 뻗은 연팥죽색 순. 손톱만 한 잎이 오종종 줄 서있다. 순에 손을 대면 잠자던 생명이 기지개를 켜며 바르르 떤다. 봄을 꺾어 모은다. 볕 잘 드는 꼭대기의 순을 따기 위해 삼단 사다리를  세운다. 한 칸 두 칸 사다리를 오를 때까지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나의 몸을 기댈 마지막 단이 남아있고 혹 사다리에서 떨어져도 그다지 충격이 심하지 않은 높이다. 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볼 때는 조금만 올라가면 손 닿을 것 같던 순이 오른 만큼 저 멀리 달아난다. 조금 올라간 자리에서 보이는 순들은 더욱 크고 빛난다. 내 자리에서도 충분히 거둘 수 있는 순이 많지만 나의 시선은 항상 멀리를 향한다. 파랑새는 내 집 처마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내 집을 떠날 때다.


정상에 서면 위험한 것.

나를 돕던 손이 나를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혼자 설 수는 있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귓가를 스치던 봄바람도 옷깃을 여미게 날카로워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보조 사다리를 나를 둘러싸게 세우는 일이다. 디딘 사다리가 무너져 내려 정상에 서지도 못했다. 바라만 보던 것이라 손에 넣고 싶었다. 이제 나를 정상에 세우기보다 보조 사다리의 역할로 눈을 돌린다.

사위의 트랜스포머 사다리가 차고 이곳저곳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재능은 짐이 된다. 선택의 폭이 좁을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는 게 힘들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데 사위가 남긴 것에 내 것을 더하려니 삐걱거린다. 딸과 위태로운 동거를 시작하며 나름 많은 것을 포기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여전히 많은 것을 나만의 공간으로 밀어 넣을 궁리를 한다. 그만큼 불화의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싸라기가 흩뿌린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 한다. 딸이 원하는 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