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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Dec 03. 2023

위로와 치유 (2)

반짇고리

어머님 방

- 장판 밑에서 천만 원 나왔데!

- 장인어른 때도 장판 밑에서 돈다발 나오는 것 봤어.

- 울 아버지는 언제 나도 모르는 매직을… 근데 기억하는 액수가 맞긴 해요?

밤 12시에 우리는 보물 찾기를 했다. 어머님이 즐겨 찾던 곳을 샅샅이 뒤진다. 찾는 사람이 임자란 말에 손놀림이 바빠진다. 매트리스 아래, 베갯속, 반짇고리를 까 뒤집는다.


반짇고리

내 혼수물품 중의 하나. 플라스틱 바구니를 색동의 반짝이는 화섬으로 솜을 두어 둘러 씌웠다. 지나치게 반짝이는 반짇고리를 어머니는 부러워하셨고 바느질에 관심이나 재주도 없는 나는 물실크의 촌스러움을 미련 없이 어머님께 선물하였다. 모든 기성복(심지어 빤쓰까지)을 손수 자르고 꿰매어 당신이 원하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던 어머님. 마지막까지 어머님의 시간과 마음을 차지한 주인공이었다. 어머님의 손길은 번쩍이던 촌스러움도 시간의 먼지와 함께 고운 주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젊어 맵고 단단하던 솜씨는 헐거워진 뚜껑을 거칠게 옭아매 놓고도 눈감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머님의 낯빛이 하얗다. 지나치게. 거칠게, 바투게 쏟아내는 호흡에 틀니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산소 호흡기 없이, 앓는 소리 없이 힘든 잠을 주무시는 모습에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는다. 응급실, 24시간이 고비라는 24시간을 넘겼지만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으니 집으로 모시라는 통보. 살아서 집으로 오셨다. 내가 머물던 내 자리에서 눈 감을 수 있는 곳, 미국이 좋은 점이다.


우리를 한 자리에 모으고 밥 먹을 시간을 허락하시고 떠나셨다. 아무도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나는 하지 못하는데 두 딸은 할머니를 꼭 끌어안고 볼을 비빈다. 어머님이 나 죽으면 입혀달라 하셨던 한복을 꺼낸다. 어머님의 마지막 흔적을 두 딸이 거침없이 처리한다. 나에게는 없는 핏줄의 DNA가 이런 것인가… 

- 미국 사람은 도저히 입힐 수 없는 수의야~! 우리 할미 너무 춥지 않을까?

- 캐시미어 목도리 해드려!

꽃버선, 아끼던 노리개, 진달래빛 본견 치마저고리, 붉은 끝동에 어머님이 환해지셨다. 남의 손이 아닌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아들과 두 손녀의 손으로 마지막 치장을 마치셨다.


12월의 첫날

늦은 밤, 램프 요정 지니 같은 거구의 장의사가 왔다. 하얀 플라스틱 백에 어머님을 모시고 긴 지퍼를 올리자 어머님과 우리 사이에 막이 쳐지고, 아물린 지퍼의 고리 수만큼 어머님과의 연결 끈이 끊어진다. 비로소 소리 내어 운다.

- 할미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밤인데도 포근하네…

낮에 뿌린 비가 뽀얀 안개 되어 피어오른다. 이웃의 크리스마스 전등빛이 안개를 타고 퍼진다. 마음의 준비를 오래 했던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구메구메 눈물이 난다 했는데. 나쁜 며느리였음이 슬금슬금 머릿속을 헤집을 때, 낮은 고백으로 안갯속에 흘려보낸다.

- 어머니, 감사해요.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이 집에서 이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어머님은 싫어하셨지만 아버님과 같이 뒷마당에서 저희 집 지켜주세요.



#반짇고리 #구메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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