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를 까며
이사를 결정하고 남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텃밭의 울타리를 걷어내기다. 구멍 숭숭 뚫린 망으로 둘러친 울타리는 텃밭의 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벽이었다. 사슴과 토끼에게 나의 것을 나누지 않으려는 이기심은 풍경의 단절을 가져왔고, 겨울이면 흉물스러운 모습에 나를 움츠려 들게 하였다. 자연의 접근을 막는 일은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었음을 거둔 울타리에서 본다.
제비콩과 호박이 서리가 내리도록 울타리를 점령했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열매를 맺던 텃밭의 마지막 선물, 열매에는 씨가 있다. 오종종한 보랏빛 꽃 닮은 바글바글 꼬투리 속의 제비콩을 모으는 일은 인형에 눈 붙이는 작업이다. 단순하지만 엉덩이의 힘을 믿고 끝을 보는. 늙은 호박의 배를 가른다. 진홍 속살에 켜켜이 박혀있는 호박씨를 긁어낸다. 씨 받아 내년을 기약할 것도 아니고… 쓰레기통에 넣으려던 망설임의 손이 주춤한다. 늙은 호박은 딱딱한 꼭지까지도 약이라는데, 호박씨에 붙은 실을 걷어내고 씻어 체에 밭친다. 네이버 초록창의 도움을 받아 호박고지, 호박죽을 만들고 호박씨를 볶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호박씨를 껍질째 입에 넣고 씹는다. 일일이 수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모든 씨나 열매는 껍질에 영양분이 더 많다. 아니 수치는 핑계에 불과하다. 호박씨 껍질을 까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수고에 비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너무나도 초라하다. 어떤 도구나 연장을 사용할 수 없이 손가락의 힘만으로 호박씨의 껍질을 벗기는 일은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는 피로와 스트레스 가득한 일이다. 강력한 앞니를 사용하지만 두 동강 난 속씨와 껍질은 침 범벅의 잔해를 확인하고 다음 공정을 어금니로 넘긴다.
불편함의 자리에 거침을 놓고 호박씨를 씹는다.
호박씨를 씻을 때 쭉정이를 애써 골라냈다. 쭉정이는 사전적 의미로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한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 혹은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껍질만 있는, 쓸모없는' 쭉정이의 발견이라니. 볶은 호박씨에서 온몸으로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내보낸다. 품 안에 알맹이를 담지 못한 쭉정이는 전체가 알맹이다. 가장 보드라운 껍질이고 알맹이 아닌가. 어떤 보호막 없이 제 스스로 홀로 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약자이며 잠재적 강자다.
추억 정리, 짐 정리에서 늘 망설이는 부분
발판을 딛고 올라서야 꺼낼 수 있는 가족 앨범. 딸들의 출생에서부터 산모 수첩까지, 딱 미국 오기 전까지만 정리되어 있다. 미국에 갓 왔을 때 남편과 내가 힘들고 찌들어 있을 때도 딸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 나름 노력했었다. D.C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하면서도 공짜로 주는 남은 음식을 싸 오지 않았다. 딸들에게 먹일 음식은 제일 먼저 내오는 음식을 제 값 주고 먹였다. 그래야만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것처럼. 그래도 그 당시 딸들의 모습은 왜 그리 없어 보이는지…
-니들 앨범 가져가!
-엄마가 계속 갖고 있어!
딸들의 사진을 양손에 올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떨림은 없지만 가슴 한편이 시려 온다. 아직은 버리지 못한다. 슬픔은 준 만큼 되돌아왔지만 기쁨은 항상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세월 탓! 부모 탓!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1000년 전만 해도 1퍼센트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급 출신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김대식>이란다. 쭉정이도 ‘부모를 잘 만났으면, 시간을 잘 맞추었으면 꽉 찬 알맹이를 품었을 거다’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난 한국에서 단 한 번의 실패로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실패에서 주저앉지 않을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었다. 햇빛 아래 서 있을지 그늘 속에 머물지는 나의 선택이다. 쭉정이가 되었어도 걸러지지 않고 사랑받는 자리에 섰다. 가고자 하는 곳이 갈 곳이다.
#쭉정이
*대문 그림 : 인생이여 만세(Viva la Vida), 프리다 칼로,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