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다

by 김태연

나는 엄마.라는 나름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남편은 직장인, 회사원, 집에서는 아빠라는 명함으로. 내 첫아이는 학생이라는 명함을. 심지어 우리 둘째는 풀잎만 봐도 좋다고 웃어대는 유치원생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하나씩 명함을 달고 산다. 명함이 한 개인 사람도 있지만 몇 개씩 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남편만 해도, 벌써 3개나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무언가를 달고 산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는, 나의 명함이 싫었다고 이제 와서 고백한다. 나는, 아줌마인 것도 싫었고, 애엄마인 것은 더더욱 싫었다. 그렇다고 처녀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무언가의 타이틀이 그저 싫었다. 30대 중반, 주부, 아이 둘을 가진 여자. 그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사는 건 재미없어! 나는 재밌게 살고 싶단 말이야!라고 마음속에서 외쳐도, 나는 장난감이 즐비한 집 안에서 벗어나 봐야 기껏 다이소에 가서 볼품없는 물건들을 사 오는, 그런 여자에 불과했다. 재미있게 사는 법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도무지 곱게 쓰이지 않는 이 마음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터져버릴 때면 나도 내 감정에 어쩔 줄을 몰랐다. 곱게 쓰이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해야 곱게 쓰인다는 말인가. 마음을 곱게 써야지. 어른들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그건 마치 내 어깨를 양쪽에서 곰이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아이를 돌봐야 하고, 잘 키워내야 하고, 집도 깨끗해야 하고, 전업주부는 논다는 인식이 강하니 음식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하는.. 뭐 그런 류의 책임 말이다. 나는 그 책임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아마도 직장인이었다면 더 했으리라. 직장 내에서도 잘 해내야 하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잘 맞춰가야 하는.. 그렇다고 백수였으면 좀 덜했을까? 백수였다면 아마 부모님의 눈치와, 친척들의 관심을 정통으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타이틀에도, 책임은 딸려오기 마련이었다.



어느 곳이든, 관계는 존재했다. 다 털어버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것은 먼지처럼 조용히 앉아서 어느새 수북이 쌓인다. 내가 털어내면, 나를 향해 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관심이라는 건, 그런 먼지 같은 존재였다.


책임을 덜기 위해, 관심을 덜기 위해선 나 스스로 귀를 닫는 수 밖엔 없었다. 엄마라는 타이틀에도 너무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야 했다. 너도 사람이야? 나도 사람인데. 이렇게 생각해야 터질 것 같은 감정의 풍선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고, 책임과 무게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했다. 관계엔 너무 닫혀있지 않아야 했다. 관심을 떨쳐버리겠다고, 관계를 닫아버리는 건 무모한 짓임을 알고 있었다. 그저, 내 일상에 균열이 가지 않게 내가 나의 균형을 잘 맞춰주어야 했다.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제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어린애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



지금은 엄마, 라는 타이틀도 꽤 괜찮고, 30대 주부, 애 둘 딸린 아줌마도 썩 나쁘지 않다.

그것은 나임이 분명하고, 내가 아니라면 그 타이틀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저마다 하나씩 무언가를 가지고 있듯, 나도 가지고 있음에, 생각보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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