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지어야 할지 생각이 딱히 안 난다. 제목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알레르기로 인해 한쪽 눈이 퉁퉁 부었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늘 챙겨두었던 비상용 알레르기 약을 입안에 한 개 털어 넣는다. 소위 말해 약발이 들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땡땡부은 눈을 하며, 아이들 밥을 대충 차려주었다. 역시나 둘째 아이는 몇입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먹지 마 안 먹어도 돼. 한창 예민해진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둘째 아이의 식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었다. 나는, 아이의 까탈스러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태다. 찬물을 달라는 둥, 미지근한 물은 싫다는 둥, 변덕 같은 아이의 요구에 정확히 짚어 말한다. 찬물은 안돼, 미지근한 물도 먹기 싫으면 그것도 먹지 마. 해열제를 먹여주던 엄마는 오늘따라 유난히 냉정하다. 아마도, 몸에 피로감이 쌓여서 터진 알레르기 때문에 이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그러리라.
부은 눈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팔도 슬금슬금 아파온다. 다리도 여기저기 가려워진다. 몸이 피곤하니, 한꺼번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도 아파오고, 저기도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픈 건 괜찮지만 가려운 건 곤란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들이 낸 상처들이 내 몸에 그득그득하다. 아토피를 가진 여자는 이게 참 괴롭다. 그나마 얼굴로 오지 않는걸 감사히 여겨야 하나. 목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차지한 아토피가 낯설지 않다. 나는, 이걸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왔으니. 무려 30년이 넘는 아토피와의 동거를 한 셈이다. 나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토피. 지독하게 건조한 몸. 나는 그런 내 몸을 내버려 둔다. 한때는 대학병원에 가서 약도 받아먹고, 영양제도 받아먹고, 독한 약도 발라보고, 다 해 봤지만 그런 게 여름에 다 무슨 소용이람. 씻고 나오면 땀이 나는데, 로션을 도저히 바를 수가 없다. 피부 장벽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셈이다. 그렇다고 또 엄청 심하지도 않다. 대학병원에서 그랬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병원엔,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꼭 나를 닮은 큰애는 아토피는 없지만, 비염을 달고 산다. 강아지도 키우는데 비염이 심해진다. 아마 강아지 털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검사했을 땐 개털 알레르기 수치도 높게 나왔다. 강아지를 보낼래, 네가 주사를 맞을래?라고 물어봤을 땐, 본인이 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주사가 무서울 법도 한데, 강아지는 보내지 않겠단다. 주사 맞으면 된다고. 아이가 어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가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나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건 감격스럽기보단, 그저 생각의 다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낫다. 그것도 정말 많이. 옳은 말을 하면서, 옳은 생각을 한다.
비염을 완화시키기 위해 요즘 주사도 맞고 오는 내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 어제는 용케도 혼자 가서 맞고 왔다.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아니야 나 정말 아팠어. 그래도 대단해 너. 내 아이는, 나도 모르게 한 뼘 훌쩍 크고 있었다. 혼자 학교 끝나고 주사를 맞으러 가서 혼자 약도 타 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처음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생활이 될 것이다. 대견스럽기까지 해서 속된 말로 눈물까지 쥐어 짜낼뻔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개는 애들만 보면 으르렁 거린다. 저거 저거. 누구 때문에 지금 이러는지도 모르고 배은망덕한 놈! 나는 생각하며 강아지를 흘겨본다. 엄마 그러면 벌 받아. 나를 보며 큰애가 말했다. 아이들은, 정말로 어른들보다 낫다.
눈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약효과가 나는 건가.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여본다. 아직 부은 눈의 느낌이 생경하다. 알레르기는 가끔 여러 가지의 형태로 온다. 눈을 떴는데 콧물이 계속 난다거나, 눈이 갑자기 붓는다거나. 재채기를 마구 해댄다거나, 주로 코로, 아니면 눈으로 오는 형태다. 알레르기는 아토피의 다른 말이라고 하기도 하고, 알레르기의 큰 틀에 아토피도 있고, 비염도 있고, 천식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 큰 틀 안에 내가 속해있음은 확실했다. 나는, 늘 달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비가 와서 폭염이 좀 누그러진다더니, 비가 올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조금 생소로운 느낌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비는, 올 생각을 안 한다. 건너편 너머의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아침 준비하느라 분주하겠지. 우리 집은 여섯 시 반에 애들이 밥을 먹었다. 이러다가 새벽 네시에도 일어나서 밥 먹을 판이네. 나는 갑자기 웃겨서 깔깔깔 뭐에 홀린사람마냥 웃었다. 새벽 네시는 너무 했다 정말. 여섯 시 반도 고역인데 네시라니!
성치 않은 다리를 살살 긁으며 으, 네시에 일어나면 차라리 화를 내고 말겠어.라고 생각한다.
미라클 모닝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애들이 하려고 작정을 했군. 습관처럼 감사일기를 펴고,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아이들이 일찍 일어났어요. 감사합니다. 늘 늦지 않네요 정말.
다가올 방학이 엄두가 안 난다. 방학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