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낮잠에 빠졌다. 거의 억지로 재우다시피 했다. 아프면 자야 된다며 거실에 낮잠이불도 두 개나 깔았다. 훌쩍 큰 첫째 아이는 다리가 이불 밑으로 많이 나온다. 어린이집 다닐 때 쓰던 이불이니, 오래도 가지고 있었구나. 최근에 버리려고 했는데 안 버리길 잘한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잠을 요구했다.
오지도 않는 잠을 자려니 꿈뻑꿈뻑 눈만 뜨던 아이들이 어느새 잠들었다. 콜록콜록. 기침을 번갈아가며 하는 아이 둘이 안쓰럽다. 어른인 나라면 주사라도 맞고 왔을 텐데, 아이라 약도 독하게 못 먹는 건가. 이래서 학교 가지 말란 말씀이셨구나. 의사 선생님은 몇 시간 앞을 내다본 것이란 말인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거실에 대자로 누우니 하늘이 보인다. 날씨가 말도 못 하게 더울 것 같다. 이제 막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온다. 너희들 학교 다녀오는구나. 재밌었니?라고 묻고 싶다. 나는 참견쟁이 아줌마니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린다. 뭐가 저렇게 재밌을까. 들리는 웃음소리가 싫지 않다.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다.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이 집에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계약 만료가 언제였더라. 문득 그 생각이 든다. 가서 계약서라도 다시 봐야 하나. 재계약 안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전에 살던 곳도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나가 달라 정중히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을이니 나오긴 했지만, 들리는바로는 집주인이 들어오지 않았고, 집이 비어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쩔 수 없다. 얼굴 붉혀가며 살겠다고 우길 순 없는 거니까.
그나저나 여길 비워야 하면 우리는 또 어디로 가야 하지.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진다. 큰아이 학교 때문에 갑작스럽게 움직일 수도 없고, 웬만하면 이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싶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집값이 나날이 치솟는다. 안정화가 된다고 해도 이미 많이 올라버린 집값은, 우리가 엄두도 못 낼 만큼이다. 우리 신랑 월급으로는 택도 없다. 나는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아이가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한다. 마음이 심란해진다. 저번처럼 또 쫓겨나면 어떡하지. 그러면.... 하긴 뭐 생각해보니 집은 늘 있었다. 돈이 없을 뿐이었다.
강아지도 누웠다. 우리 넷은, 대자로 뻗어 누워있었다. 갑자기 콜록거리던 큰아이가 깼다. 나의 심란한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혀진다. 맞다. 지금 이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야. 얼른 나아야지. 나는 큰 아이에게 인터넷으로 주문한 귤 박스에서 귤을 3개나 꺼내 손수 까준다. 겨울에만 먹는 귤이 이젠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 생각보다 의외로 맛있어서, 다 먹으면 한 박스 더 시켜볼까 싶다. 여름에도 귤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다니. 이젠 계절과일은 없어지는 건가. 의외로 또 여름철에 제격인 수박은 맛이 맹탕이다. 에잇 젠장. 실패한 수박이 떠오른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수박이 맛없으면 돈이 어찌나 아까운지! 그 이후로 난 수박을 잘 사지 않았다. 두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에 산 귤이 이렇게 맛있으면 어쩌라는 건지. 참 별일이야. 나는 생각하며 잘도 먹는 아이에게 귤을 건넸다. 다 먹은 아이에게 손은 닦았느냐며, 귤 하얀 부분까지 다 먹어야 한다며 잔소리를 그새 늘어놓는다. 관대해지겠다더니만 눈에 보이는 거슬림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공부하란 소리도 안 하고, 티브이를 켜도 그냥 내버려둔다. 콜록콜록. 아이의 기침소리가 싱숭생숭한 내 속 시끄러움을 그새 덮는다. 집은 나중에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래. 지금 생각해봤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렁그렁. 콧물이 가득 찬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아이가 닌텐도를 집어 들길래, 나도 모니터를 켰다. 그래. 너도 너 할거 해. 나도 나 할거 할게. 이미 들리지도 않는 아이에게 말했다.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금세 빠진 아이는 내 말이 들리긴 한 걸까. 남은 귤껍질을 버리며, 상자 속 귤이 몇 개 남았나 세어본다. 아직 좀 남았네. 금방 안 시켜도 되겠다. 큰아이가 귤을 다 먹고 나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다들 거의 하교를 마친 모양이다. 요즘 애들은 어른보다 더 바쁘다. 학원 다니랴, 공부하랴 자신의 시간이 없다. 이와는 정 반대로 생활하는 내 아이는 너무 시간이 많아서 탈이다. 뭐, 나쁘진 않다. 다른 애들과 똑같이 살 필요는 없겠지. 공부는 결국 자기 몫이니, 필요하면 제가 찾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억지로 떠밀어봤자, 우리 관계만 망칠 뿐이다. 나는,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 엄마이니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는 어쨌든 학원은 싫다 했으니. 존중해주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좀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나도 엄마니까.
그나저나, 이 더운 여름에 축구는 어떻게 한담. 땀 뻘뻘 흘려가며 뛸 아이가 그려진다. 방학 때 18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축구특강을 신청했다(본인이 하고 싶단다) 그 덕에 주 3회나 학원에 간다. 비록 한 시간씩이지만 그게 어딘가 싶어서 냅다 오케이 했다. 남은 시간은 뭘 한담. 계획도 서서히 짜야한다. 방학 시작이 얼마 안 남았다. 방학 내내 바다를 달려갈 순 없으니 대신해서 놀거리를 생각해보는 중이다. 아니면 규칙적으로 매일매일 산책을 좀 나간다던가, 나의 계획은 아이와 절충해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주로 놀거나, 같이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내 아이는 나가는 건 싫어하고 같이 뭘 하자는 것도 좀 컸다고 시큰둥이다. 안돼 안돼, 우리 이렇게 방학을 보내면 안 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여름방학이니 메뚜기라도 관찰하자고 해야겠다. 잠자리도 좀 관찰하고 그러자고.
쌩쌩 잘 돌아가는 에어컨 덕에, 시원하다. 아직 잠들어있는 둘째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게임하며 콜록거리는 큰아이가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부모님과 주말 잘 보내라는 학교 선생님의 알림장이 핸드폰 액정화면에 잔상처럼 남는다. 부모님과 잘 보내래. 너 우리랑 잘 보내야 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큰아이가 어쩌라고? 하는 표정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