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제목을 제일 마지막에 쓰는 편이다.
내가 쓰는 글은 한 주제로만 있는 편이 아닌지라(이랬다가 저랬다가, 글도 사람 마음처럼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에는 제목을 먼저 쓰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마땅한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늘, 마지막에 맞춤법 검사까지 하고 나서야 쓰는 편이다.
오늘은 드디어 미루던 병원에 다녀왔다. 사실 귀찮아서 월요일에 갈까 했지만 남편이 월요일이 되면 또 귀찮을 것이라며 오늘 다녀오라 해서 결국 옷을 꾸역꾸역 입고 나갔다. 웬일로 신호도 한 번에 바뀌고, 병원에 가자마자 진료도 바로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괜찮냐고 물어보는 간호사의 말에, 아직이요. 라며 나지막하게 웃어 보이곤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가 아이들이 아파서 못 간다고 미뤄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세심함에 조금 놀랍기도 하고, 와 기억을 하고 계셨구나. 그게 벌써 일주일 전에 한 말인 것 같은데 싶었다.
요즘은 좀 어떤가요? 선생님은 늘 비슷한 질문을 제일 먼저 하신다. 음.. 요즘엔 좀 괜찮아요. 그럼 특별한 일은요? 별로 없었어요. 괜찮았어요. 선생님 근데 제가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외부에서 받는 자극에 특별히 스트레스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까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먹어요. 비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평소에는 괜찮다가 특별히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다거나 그래서 그 스트레스에 힘들어질 때를 대비해서 먹어두기도 해요. 예를 들면 직장 상사에게 혼이 났는데, 그게 유난히 힘들고 며칠 내내 간다면 먹어야겠죠.
다정한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구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는 말에 갑자기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열 시에 시작하는 진료 시간에, 열 시 십 분도 안돼서 도착했는데 그 사이에 세명의 환자를 봤기 때문이다. 오. 사람들이 진짜 부지런한 건가. 아니면 선생님의 진료가 엄청나게 빠른 건가. 많은 사람들이 먹는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맞다. 정말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먹는다. 이곳에서 글을 읽기만 해도 약을 먹거나 나처럼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다 사람 사는 게 똑같구나. 싶은 거다.
그제야 공감 능력이 한 백배는 얻은 느낌이었다. 역시 의사인가. 힘내세요 라는 말보다 태연님 같이 드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그렇게 든든한 아군을 둔 느낌이다. 약간, 으쓱했다. 음 맞아 맞아. 나만 그런 건 아니지.
나는 아이의 게임시간에 대해 물어볼 때도 있고, 돈문제에 관해 얘기할 때도 있다. 신랑한테 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선생님 앞에서는 무슨 점쟁이한테 점 보듯이 줄줄이 말하게 되는 거다. 요즘에는 되는 게 없어요 선생님, 점을 보러 가볼까요?라고까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점 보면 좀 나을 것 같냐고 되려 물어보셨지만..(나는 모르겠다 대답했다. 허허)
요즘에 다들 저보고 좀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해요. 태연님은 어떤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도 좀 가라앉는 느낌이에요. 그게 무기력한 것 같나요? 아니요 그런 것 같진 않고, 그냥 여름이라 힘든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어요. 날이 더우면 사람이 좀 쳐지기도 하고, 그렇죠. 아이들을 보는 건 어때요? 여전히 힘든가요? 아니요. 요즘은 괜찮아요. 막 전처럼 스트레스받거나 그러진 않아요. 확실히 더위 때문에 쳐지는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날이 워낙 더우니까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고 일상이 아직은 잔잔하네요 그죠? 네 맞아요. 좋아요. 그럼 약을 수면제를 하나 줄여도 될 것 같나요? 네 그래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선생님과 약을 조율해가며 조금씩 줄여나간다. 공황이 올 때 먹는 약도 하루에 한 개 이상 복용하는 일도 드물고, 자기 전에 먹는 메인 약의 용량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하셨다.
더위에 쥐약이라 좀 쳐지는 걸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미세한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텐션이 좀 낮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난 확실히 그냥 더워서 그런 것 같다. 가을이 오면 또 다르지 않을까.
나오는 길에 가방 안에 두둑이 넣어둔 약봉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2주는 버틸 수 있겠군. 꼭 영양제를 잔뜩 받아오는 느낌이랄까. 뭔가 이것만 있으면 뭘 하든 마음이 불편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선다.
오늘 오길 잘했네. 신랑이 가라고 한 이유가 있었나 보군. 나는 생각하며 집으로 운전대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