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있는 거지

by 김태연






우리는 다 같이 나갔다. 큰애의 문제집을 사러 간다는 핑계를 좋게 대며, 나는 나가겠다 선언했다. 둘째 아이가 따라오겠다며 같이 가자한다. 니 문제집이니까 너도 따라와. 큰아이는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들이 나간다 하니 남편도 자동적으로 딸려온다. 결국 다 같이 서점으로 향했다.


교보문고를 가고 싶었지만,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근처의 서점으로 가는 것으로 좋게 합의를 본다. 동네 서점은 아이들 위주의 문제집이 많은 편이라, 나는 교보문고 가는 걸 좋아하는데, 거리가 좀 먼 게 아쉽다. 다른 서점은 어떨지 몰라도, 교보문고는 아이들한테는 좀 관대한 듯하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있고, 나는 그게 너무 좋다. 서점이라는 게 꼭 어른만 와야 하고, 조용히 해야 하는 법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도 책을 고를 권리가 있고, 읽을 권리가 있다. 심지어 교보문고는 장난감도 가끔 판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참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결국엔, 아이들도 커서 어른이 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누구나 그런 성장과정을 겪어왔다. 노 키즈존이 많아지고, 떠들고 뛰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가게들이 많지만, 교보문고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열려있는 서점이다. 우리 모두, 다 그렇게 살면서 컸다.


하지만 오늘은 못 가니 결국 우리는 근처 서점으로 향한다. 책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자기가 글씨 연습을 좀 하겠다며 덥석 바른 글씨 쓰는 어른을 위한 책을 고른다. 응?니가? 난 여태까지 글씨를 갈겨쓰는 너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는걸? 의외라서 나는 초등학생을 위한 바른 글씨 쓰기 책을 다시 골라주었다. 자기도 글씨 연습 좀 한다고 한다. 너 못쓰는 거 알고 있었어? 하니 알고 있었단다. 헐. 충격.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충격. 나는,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알고 있었구나.. 나만 아는 줄 알았지? 나원참.


그동안은 특별히 잔소리하진 않았다. 잔소리를 해도 흘려듣는 아이였다. 어쩔 수 없네. 잔소리하면 더 쓰기 싫어질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저도 알고 있었나 싶은 거다. 받아쓰기해오는 거 보면 곧잘 또박또박 쓰는 아이가 평소에는 성격이 급해서 휘갈겨 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급해서 그런 줄 알았지. 니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지. 나는.. 할 말을 잃어서 그냥 바른 글씨 쓰기 책을 집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동화책을 한 권 사고, 내가 눈으로 훑어본 책을 두 권 샀다. 그 와중에 작은아이는 점토까지 골랐다. 만족스러운 쇼핑이다. 물론 큰아이는 조금 스트레스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각자 원하는 것을 골랐다. 들어주는 건 남편의 몫이다(남편은 책만 보면 잠이 온단다)

책 쇼핑을 끝내고 우리는 뽑기를 하러 뽑기 가게로 향했다. 5000원의 거금을 들여 500원짜리 10개로 바꿔 뽑기를 했건만 하나도 뽑질 못했다. 아쉽네. 쩝. 아쉬움을 남기고 아이 둘이 편의점에서 원하는 막대사탕 한 개씩 고르고, 다이소에 가서 강아지의 장난감도 두 개 골랐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커피숍에 가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기프티콘으로 커피를 바꿔 집으로 왔다. 다들, 모두 알찬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집에 와서 다시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많은걸 했다. 책을 샀고, 뽑기를 열 번이나 했으며, 커피를 샀다. 그리고 사탕까지! 교보까지 갔으면 이렇게 못했을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며, 그냥 동네 서점 다녀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았다. 게다가 재빠르게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왔다. 나도 꽤 만족스러웠다. 물론, 뽑기에 돈을 많이 쓴 건 좀 아깝지만.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뽑기라는 게 원래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안 뽑히는 게 뽑기 기계니까 말이다. 그렇게 돈을 썼지만,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싶은 거다. 우리의 간절함이 좀 오늘은 덜 통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일주일만 지나면 방학이 온다. 벌써부터 후들후들, 마음이 긴장된다. 방학이 오면 동시에 찌는듯한 더위도 몰려올지 모른다. 아이들이랑 뭘 해야 한담. 글은 쓸 수나 있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사온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다. 커피는 집에서 내린 게 훨씬 맛있다. 케이크도 그냥저냥 먹을만하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나는 수긍하며 다가올 방학을 생각한다. 오늘 사온 문제집의 크기가, 왜 이렇게 커 보이는지는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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