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질 않는다. 흐린 구름만 잔뜩 껴있을 뿐. 나는, 나가서 커피를 사 와야 하나 잠시 속으로 갈등했다. 바닐라라떼가 먹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오전부터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느라 힘을 빼서 그런지 달달한 카페인이 필요했다. 나가서 사 올까. 비 안 올 때 나갔다 올까.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고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연다. 귀찮아, 그냥 집에서 먹지 뭐.
세상 귀차니즘에 걸린 내가 집에 들어오니 할 일이 또 쌓여있다. 다시 나갈걸 그랬나. 허허, 왜 이렇게 뭐가 많은 건지. 남편이 아침에 일 가기 싫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의 말 뜻이 이거였군. 나는 나뒹구는 빨랫거리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으며 생각한다. 일단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빨래부터 세탁기에 집어넣고, 커피를 내린다. 얼음컵에 섞이는 커피가 꼭 청량한 탄산음료같이 보인다. 빨대로 쪼로록, 마시고 나니 커피가 없다. 나는 일단은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뭐라도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다 마셔버린 커피를 보며 생각해본다. 샷 하나만 넣었는데 두 개는 넣을걸 그랬나, 한번 쭉 들이키니 없네. 무슨 사발면 국물 마시듯이 마신 느낌이다. 바닐라 라떼를 대체해서 먹었다기엔, 너무 빨리 먹었다. 아쉬워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나는 최근의 글을 확인해본다. 아직 아침이니 마땅히 쓸 말이 없다. 그냥 곰 두 마리가 어깨에 있는 것 같은 정도? 빼고는, 그날이 그날인지라 다양한 소재거리가 별로 없다. 아! 최근에는 당근으로 닌텐도 게임 포켓볼을 팔았다. 사는 사람이 설마 있으려나, 하고 올려봤는데 사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은 가끔 문득 현실로 와닿을 때가 있다. 그러면 깜짝 놀란다. 응? 오 진짜 사는 사람이 있네. 진짜 그런 사람이 있네. 싶은 거다. 이번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일단 그 게임칩 자체가 없어서 필요 없었고, 뭔가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누가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구매자의 따님분이 갖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작동이 될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작동도 잘 된단다(게임칩이 없어서 작동이 되는지 확인도 불가능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었다.
나한테 별로 필요 없었던 그 물건은 구매자의 딸아이가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고, 마침 물건이 나온 셈이다. (지금은 구매가 안되는듯하다) 적당한 시기였다. 나는 팔고 싶어 했고, 구매자는 필요했던.
간혹 가다 이렇게 티키타카가 잘 맞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중고거래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딱, 뭔가 시차가 딱딱 들어맞을 때. 내 생각보다 빨리 팔렸을 때. 구매자가 감사하다고 할 때 등등..
그나저나 내가 맡긴 지갑은 잘 팔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름 명품이라고 맡겼는데, 사람들이 필요로 하질 않나 보다. 이럴 땐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게 일이다. 요즘은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 하나 넣고 에코백만 들고 다니니 명품이 별로 필요가 없다. 어릴 때 뭐가 그렇게 갖고 싶어서 안달이었는지. 가질 수 없으니까 안달이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철부지였구나 싶다. 우리 신랑 주머니 사정 뻔히 알면서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철부지에서 벗어났다고 할 순 없지만 말이다.
쓰질 않아서 위탁을 맡긴 터라 별로 미련이 없다. 돈이 없으니까 여보가 아껴 쓰네. 남편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그런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필요하지 않은 것들 뿐이다. 먹는 것을 제외하곤. 하도 쟁여둔 게 많아서 그거 다 쓰려면 한참이 걸릴 거다.라는 생각도 들고, 명품은 막상 들고 다니질 않으니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가방 한 개 빼고 다 위탁업체에 맡겼다. 예상보다 느리게 판매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취향이 아닌가 보지. 하는 거다. 게 중에서도 분명히 나랑 같은 취향 한 명쯤은 있겠지. 싶은 약간의 기대감도 조금 있는 거다. 그러면 팔릴 것이다. 싸게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웃기다. 살 때는 그렇게 남편에게 졸라서 사놓고 팔 때는 미련도 없다.
그게 다 사람 마음이지 뭐. 막상 가지고 나니 별게 아니었네.라고 생각이 드는 거지 싶은 게, 간사하다 간사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타이레놀 한 알을 얼른 삼킨다. 명품은 그렇다 쳐도, 어깨에 두 아령이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무래도 잠을 잘 못 잔 듯하다. 먹고 잠을 다시 자고 일어나면 좀 나으려나. 오늘은 두 아이들이 기관에 갔으니 그걸로 만족스럽다. 내 명품쇼핑보다 훨씬 더 더,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이걸 이제 깨닫다니!
간사한 내 맘을 숨기기 힘들어 나는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