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까지 등원을 마치고, 비가 오기 전에 얼른 문방구로 달려갔다. 중학교 앞에 생긴 문방구는, 요즘 대형 문방구처럼 큰 곳이 아니라 작은 그야말로 요모조모 알록달록 가득한 문방구다. 엄마, 나 파일 필요해 다 썼어. 어제 큰아이의 준비물이 생각이 나서 비오기 전에 부리나케 달려간다. 비가 그치고 폭염이 올 거라더니, 아직은 아닌가 보다. 나는 딱 한 개씩 필요한 물품들을 사 가지고 나온다. 학교 앞 문방구는, 당연히 대형 문방구보단 비쌀 수 있지만 급할 때 필요한 물건 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래서 학교 앞에 문방구가 꼭 있어야 하는구나. 정말 필요할 때 준비물이 다 구비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주문할까 하다가, 대량으로 사야 하는 난감함 때문에, 조금 비싸더라도 문방구를 가끔 이용한다. 필요한 것만 살 수 있게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찍 문을 연 야채가게에서 양파와, 토마토를 샀다. 아파트 밑에 있는 대형슈퍼는 10시가 다 되어야 오픈하는데, 이 야채가게는 정말 일찍 연다. 사장님 내외가 부지런하신 것 같다. 생긴 지도 얼마 안 되었고, 가게는 작은 편이지만 있을 건 알차게 다 있다. 무엇보다, 마트처럼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혹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물론 대형마트를 좋아한다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요즘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려고 하는 중이다. 카드값은 사람을 어쩔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아, 카드값. 언제쯤 다 갚을 수 있나. 티끌모아 태산이라는데, 난 태산을 만들려면 한참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애증의 카드값. 지긋지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비를 한다. 아니, 내가 소비를 한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나의 소비는 늘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돈을 썼었는데, 만만치 않은 카드값이 자 봐봐, 어디 한번 써봐, 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좋아! 너를 쓰지 않겠어!라고 자신 있게 외치면서 나는 소심하게 체크카드를 내민다. 수시로 울리는 나의 통장 알람 소리가 가끔 무섭다. 이제 그만 써야 하지 않나. 나는 어느 순간 확인하고 싶지 않아 진다.
현실은, 정말 가끔 외면하고 싶은 법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아 후다닥 들어왔다. 곧 또 비가 오려나. 나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창문 밖으로 바라본다. 많이 온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걸 보면 얼마나 오려고 이러나. 이러다가 안 오는 거 아니야? 아, 생각만 해도 더워진다. 분명히 폭염이 온다 했단 말이다. 30도를 넘는 더위가 찾아온다고 기사에서 봤다. 30도가 넘다니, 비 와서 날씨도 습할 텐데. 벌써부터 턱턱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더위에.
어제 쓴 글을 봤는데 어찌나 감성적이던지. 나는 주로 오전에 글을 쓰는 편이다. 어제는 남편이 티비를 틀어놓는 바람에 제대로 집중해서 글을 쓴 것도 아니었다. 오늘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서 지울까, 하다가 그대로 둔다. 맞다. 이런 부분도 내 안에 존재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하니 한결 나은 것 같다. 밤에는, 글을 못쓸 것 같다. 일단 이성적이지도 않고, 너무 감정에 치우쳐있다. 으아. 오글오글, 게다가 세종대왕님까지 꺼냈으니 쥐구멍이 있다면 어디로든 숨고 싶다. 개구리 소리라니! 정말.. 너무 귀여워서 어디론가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얼른 창을 닫는다. 읽다가 못 읽겠어서. 내 안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니, 나는 새삼 부끄럽다.
에세이를 쓰겠다고 결심했던 건 별 이유는 없었다. 전문적인 글을 쓸만한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아는 게 많아야 뭐라도 쓸 텐데,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나마 사고의 폭이 좁아도 쓸 수 있는 에세이를 선택했다. 근데 이게 웬걸, 여기는 에세이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연령도 다양하고, 볼거리도 가득하다.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특히,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거나. 나랑 비슷한 사람의 글을 보거나, 하면 유독 마음이 쏠린다. 댓글은 뭐라 써야 할지 몰라서 하트만 뿅뿅 누른다. 나의, 나름 응원 방식이다. 잘 보고 있어요 계속 써주세요. 하는 생각이 담긴 하트랄까. 그 마음이 나처럼 동일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작게 소망한다. 정말로 작게.
어제 열심히 양봉업자의 영상을 본 덕분에 남편과 나는 사이좋게 꿀을 한입씩 나눠먹었다. 달콤했다. 이건 사양꿀이니 잡화나 아카시아 꿀은 더 맛있으려나?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나의 남편은, 다 먹으면 한번 사보라고 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보니 그렇게 해보라는 뜻이다. 뭐 꼭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 볼까? 하며 나는 초록창을 뒤적였다. 꿀 하나 사겠다고 심오하게 손가락을 놀리는 나의 손이 분주했다. 물론 사진 않았지만. 나는, 현명한 소비자니까. 에헴.
빨래도 얼른 건조기에 넣어야 하고, 사온 토마토로 주스도 만들어야 한다. 할 일이 산더미다. 오자마자 만사 제쳐두고 글부터 썼는데, 돌아보니 엉망진창이다. 그래, 늘 아이들이 나가고 남은 자리는 정돈돼있는 법이 거의 없다. 일단은 밥부터 먹어야지. 사람은 배가 불러야 짜증이 덜 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