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하는걸 네가 알아주진 않아도

by 김태연


하늘이 개었다. 비가 언제 왔었냐는 듯이 해가 잠깐 떴다가 구름에 가려진다.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집인데도, 날씨가 왔다 갔다 하면, 집안의 조명이 켜졌다가, 잠시 꺼졌다가, 하는 것 같다. 이렇게도 일조량이 중요했다니. 새삼 해의 중요성을 느낀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지. 전업주부의 매일 고민이다. 평생의 고민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생각하며 메뉴를 고른다. 아주 유심히 잘 골라야 한다. 손이 많이 가지 않지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저녁 식사를 생각해야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 나는 알면서도 만사가 귀찮아 남이 하는 요리를 동영상으로 본다. 재주가 많기도 하지 어떻게 이런 요리를 생각할까. 세상 나만 모르는 남들의 능력은 이렇게나 뛰어나다. 나는 아주 열심히 본다. 따라 하지도 않을 요리 채널을 아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건 너무 어렵군. 보기만 해야겠어. 라며



둘째 아이의 열감기에 12시간 내내 가동되건 에어컨을 잠시 중단시켰다. 고생했어 너도 좀 쉬어야지. 나는 필터를 주문하며 작년에 산 에어컨을 본다. 무인도에 가져가야 한다면 나는 에어컨만 가져가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에어컨에 대한 나의 사랑은 아주 과분할 정도다. 더위에 약한 나를 일으켜줄 건 에어컨뿐이다. 남편도 아니고, 얼음도 아니다. 시원해야 움직일 맛이 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둘째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본다. 해열제를 먹으니 좀 떨어졌다. 3일 정도는 열이 날 수 있다는 의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기억난다.



더우니 입맛도 없는데 아픈 아이는 더 없는 것 같다. 평소에도 입 짧은 아이가 절반은 더 짧아졌다. 나도 없는 입맛. 너도 없니? 그렇다고 안 먹이고 약만 먹이는 건 반칙이다. 아픈 애는 뭐라도 먹여놓고 약을 먹여야 죄책감이 줄어든다. 엄마의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밥은 먹였다!라고 나 자신에 대한 자기 위안이 필요하다. 아플수록 더 잘 먹어야지. 나는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내 아들에게 말해준다. 나는 그랬나. 누군가한테 나도 그런 존재였었나. 까마득한 기억이 사라진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야.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아마도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였을 때일 것이다. 사랑받는 것은 곧 상처받는 것이다.라는 진짜로 너무 어설프고도 웃긴 나만의 사랑방식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젊음인가. 사랑이라는 건 원래 상처도 받고, 주기도 한다. 감정이라는 게 일방통행이어도 상처를 받고, 쌍방이어도 상처를 받는다. 어느 쪽으로든. 사랑과 상처는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아이가 아파서 못 먹으면, 나도 속이 좀 안타깝다. 싫다고 거부하는 아이에게 한 번만이라도 더 먹으라고 한다. 아프니 자야 한다고 강요를 다섯 번이나 한다.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도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네.

내가 너를 사랑하는걸 네가 알아주진 않아도, 나는 충분히 행복해. 그러니 아프지 마렴. 어서 털고 일어나서 너풀거리는 나비처럼 뛰어봐.

사랑이라는 게 꼭 받아야만 좋은 건 아닐 수도 있겠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도 사랑의 한 종류겠지. 감정에도 다양한 이름들이 있듯이 사랑에도 다양한 마음들이 있겠지. 어떤 종류의 것이든 나는 너를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단다.라고 생각하며 열이 나는 아이에게 한번 더 해열제를 먹였다. 그렇게 다정하고 좋은 엄마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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