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분. 쓰고 싶은데 쓸 말은 없는.
문장도 생각이 안 나고,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
나는 그런 날에 가끔 글이 쓰고 싶다. 문제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얀 백지 바탕 위에 검정 글씨를 어떻게든 적어내고 싶은 저녁이 있는가 하면,
상쾌한 기분이지만 막상 하루를 시작하지 못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오전이 있다.
그리고 세밀하게 예민해지는 밤이 있다.
그런 날들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들지만, 지는 저녁노을과 떠오르는 구름 속의 해를 느끼며 나는 쓰지 못한다.
쓰지 못한다니, 엄청난 절망이다. 그렇게 좋은 날들은 왜 뭔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중요한 건 이렇게 좋은 날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비가 세차게 오는 날도, 눈이 비처럼 내리는 날도 쓰지 못한다. 이쯤 되면 글쓰기를 멈춰야 하는 게 아닐까. 쓰는 것이란 본래, 기록이 아니던가. 나는 왜 기록하지 못하는가.
그래도 쓰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어디든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쓰고 싶은 날들이 더 많기에 뭐라도 적으려 한다. 적으면 뭔가 나오겠지. 일기도 안 써본 사람이 적는다니, 코웃음이 날 말이지만 나는 꽤 진지하다.
쓰지 않는 날들이 더 우울할 때가 많다.
우울의 심리 저 밑에는 나를 대변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심연으로 기분이 내려갈 리 없다.
쓰면 나아지나?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를 하지 않고선 끝도 없이 내려가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다. 붙잡아야, 다시 올라올 테니. 그런 기분이 들 때, 허전할 때 뭔가 써야 낸다는 의지가 타오른다. 의지는 우울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더 나아진다거나, 더 좋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 되었건, 어떤것이든간에.
글쓰기가 취미가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글쓰기 자체와는 무관한 사람이었으니.
차라리 글씨 예쁘게 쓰기가 더 취향에 맞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글 자체는 좋지만, 쓰는 건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같다. 없는 것에서 있는 걸로 만들어야 한다니. 나는 그런 건 잘하지 못한다. 해낼 끈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향에 안 맞아도 취미로는 만들어질 수 있더라. 그건 신기한 일이었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는 백지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 싸매는 일이라니. 생경하다.
이토록 절실한 순간들이 순간처럼 지나가겠지. 손에 잡힌 모래처럼 빠져나가려나.
뭔가를 쓰고 싶은데 쓸 말이 없다. 우울하지도 않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