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서 컵라면을 뜯었다

by 김태연




잠이 오지 않아서, 컵라면을 뜯었다. 지금 막 일어난 나는 오늘 새벽 컵라면을 먹은 사실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오전에 배가 좀 덜 고프네. 정도로 생각을 만끽한다. 얼음을 넣고 커피를 내렸다. 쪼로록. 빨대로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아침이 됐음을 알린다. 어느 책에서 그랬는데, 일어나서 처음 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는 커피라고. 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커피 머신을 버튼을 꾹 누르는 나는 내리자마자 한입 마셨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캡슐 맛있네.라고. 그게 설사 디카페인 일지라도.


새벽 2시 반. 신랑이 나는 솔로를 보며 먹으려고 했던 컵라면은 내 차지가 되었고, 남편은 다시 물을 끓였다. 먼저 먹어도 돼. 자상한 목소리에 나는 얼른 젓가락을 집는다. 어느새 새로운 컵라면에 물을 받아온 남편이 내 옆에 앉아서 같이 티비를 본다. 저 남자한테 끌리는 이유가 뭘까? 마성의 매력인가. 우리는 나름 티비에 심취해가며 같이 머리를 싸매고 나온 출연진들을 보며 의문한다. 당사자들은 보이지 않고, 타인에게만 보이는 이 어장관리 같은 남자의 행동에 여자 주인공들은 이미 홀릭 상태다. 저 상황이 되면 나도 안보이려나. 깔깔깔. 우리는 신나게 웃었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껄껄껄. 원래 남의 썸이 더 재밌는 법이지.



컵라면을 젓가락질하며 따끈한 국물도 마셔본다. 맞다. 컵라면은 특유의 맛이 있는데, 왜 이 맛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왜 이 용기를 바꾸지 않는 건지. 그래서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신랑은 굳이 잘 나가는데 바꿀 필요가 있겠냐며 대꾸한다. 넌 진짜 똑똑한 것 같아!라고 말하니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래. 나 공대생이야.

맞아. 너 진짜 똑똑해. 난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거든. 뭐 그럴 수도 있지. 남편은 무심하게 말하며 후루룩 라면을 사발채로 마신다. 그래서 사발면인가 봐. 먹기 편해서. 나도 한입 후루룩. 남편을 따라 똑같이 마셨다.



그 컵라면을 먹지 않았다면, 잠이 안 왔을 수도 있다. 그대로였다면 꼴딱 밤을 샐 처지였다. 왜 이렇게 잠이 안 와. 나는 그 사실이 좀 두려웠다. 잠을 못 잔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에게 다음날 짜증을 낼 시간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자야 해 자야 해. 나는 강박증을 가지듯이 의무적으로 자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누우려는 찰나의 라면 익는 냄새는 너무 유혹적이었다. 그건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냄새였다. 나도 벌떡 일어나 뭐야? 뭐 하는 거야. 나도 줘.. 한 젓가락만. 했던 게 한 사발을 어느새 꿀꺽하고 먹고 있었다.

배부름에 비로소 잠이 조금은 올 것 같기도 했다. 배고프면 잠들기 힘든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니 새벽 여섯 시. 한 세 시간 잔 거네. 새벽에 먹은 컵라면 덕에 배는 안고픈데, 졸리다. 뭐 그런 류의 생각을 한다. 하고 있다. 남의 연애 프로를 새벽 세시까지 보다니. 강렬했나 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에서 깨기 위해 새 껌통을 집어 들고 두 개나 껌을 덜어내어 씹는다. 에잇. 사과맛이야. 이번에도 실패했어.라고 생각하며 닫은 껌통에 자일리톨이라고 써져있는 문구를 본다. 사과맛나는 껌은, 역시 취향이 아니다. 자일리톨인데 사과맛은 아니지. 민트맛을 달라고! 나는 홀로 조용히 외치며 껌을 씹는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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