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독립서점을 찾았다. 이곳엔 없을 줄 알았는데, 왠지 다 아는데 나만 몰랐던 느낌. 길 안쪽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던 서점이었다. 초록창 검색을 하고, 네비에 쳐본다.. 9분 나오는 독립서점이라니. 이럴 수가. 정녕 몰랐던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닫기 전에 얼른 차키를 꽂고 시동을 건다. 오늘은 일요일이 아니니 열었겠지. 나름대로 닫지 않아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으며 혹시라도 문이 닫았을까 봐 걱정스러운 눈으로 운전했다.
아, 다행히 안 닫았네. 조명이 조금 어두워서 닫힌 줄 알고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얼른 길가에 대충 세워놓고 화장실 급한 사람마냥 차문을 닫았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조금 사실은 설렜다.
아니다. 사실은 많이 설렜다. 독립서점은 정말로 사장님의 취향이 가득한 곳이니 나랑도 한 일억분의 일의 확률로 맞지 않을까 하는 두근반 기대반으로 들어섰다. 작고 아담한 사장님의 취향이 나무색의 테이블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커피까지 팔고 계셨다.
나는 짐짓 모른 체 하며 책부터 훑어봤다.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시집도 조금 있고, 종교에 관한책도 있었다. 적지만 다양한 책들도 구성된 서점이 알차고 꽉 차게 느껴졌다. 엄청난 두근거림을 애써 의젓한 척하며(나는 어른이니까) 책을 골랐다. 그것도 두권이나! 두권이나 내 취향에 맞다니!
고르는 시간 동안은 한참을 고심했다. 한 권씩들밖에 없는 책이니 왠지 잘 고르고 싶었다. 역시 중간부터 펼쳤고, 정말 오랜만에 얇은 소설책도 하나 골랐다. 화려한 문체로 써진 소설책은 빈틈없이 글자로 빼곡했는데, 표지는 전혀 안 그럴 것 같이 심플했다. 그것도 마음에 들었고, 일단 얇아서 좋았다. 그냥 막 들어도 손목에 무게감이 많이 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얇고 화려한 소설책이라니. 다 읽을 수 없다 해도 왠지 이 소설책만은 자꾸 눈에 밟힐 것 같아서 골랐다. 그리고 에세이집도 얇은 책으로 한 권 골랐다. 모름지기 책은 얇아야 제맛이지.라는 나의 고리타분한 취향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되게 많이 와본 척. 설레지 않은 척. 쿨하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사장님이 이곳에서 구입하신 책 선물로 책갈피를 드릴게요. 하면서 내민 작고 카드같이 생긴 플라스틱 책갈피에 반해버렸다. 감사합니다. 꾸벅. 엄청 쿨한 척 계산해놓고 책갈피를 건네받을 때는 처음 책갈피를 본 사람마냥 웃었더랬다. 그리고 다시 다른 서점으로 향했다. 이번엔 좀 더 큰 서점으로.
아이들을 맡기고 저녁 즈음 나왔으니 시간이 부족했다. 내일 되면 못 갈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한 군데에 더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여보 나 한 군데만 더 갔다가 가도 돼?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가끔 가던 조금 더 큰 대형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선,
사람 구경을 했다.
말 그대로 사람 구경을 했다.
친구끼리 온 여자애 둘. 우리 둘째 아이와 이름이 같은지 엄마에게 이름이 불리는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형과, 그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하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딸에게 어 잘 읽어 그래. 라며 무뚝뚝해도 자상하게 말하는 아빠와 딸. 이거 좋아 보이지 않아? 오 신기. 서점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물건을 보던 여자아이들. 그 와중에 타르트 이거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하며 묻는 내 소심한 목소리. 계산하며 으레 너무 사무적으로 손님을 대하던 계산원의 말투. 나 이거 필요했어 라며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셋의 여자 수다와 맞먹던 남자들. 사기 싫은 따분한 표정으로 초등 문제집을 고르던 남자아이. 문구용품에 눈이 가도 애써 참으려고 노력하며 에세이만 뒤적거리던 나의 갈 곳 잃은 두 눈.
구경하기에도 벅찼던 대형서점은 그야말로 문구용품에 눈이 한번 돌아가고, 사람들에게 눈이 돌아가고, 목소리에 눈이 돌려졌다.
나름대로 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또 얇은 에세이 집을 한 권 골라 그 사무적인 말투의 계산원에게 계산을 하고(불친절하진 않았다.
그저 일의 따분함을 못 견디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그 목소리들과, 설렘을 적기 위해 쓴다. 정말 의무적으로.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이게 맞는 건가. 나는 모르겠다. 이걸 기록하는 게 맞는 건가? 무엇이든 다 쓰는 게 맞는 건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쓰는 말과, 쓰여지는 말들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일기인가. 아니면 일기가 아닌가. 또 생각한다(사유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좀 어렵다 쓰기에. 난 왕초보니까)
알차게 보낸 내 하루에, 온몸으로 피곤함을 느끼며. 더 쓰면 따분해질까 봐, 그만 써야지 하며 맥주를 찾는다. 오. 여섯 캔이나 있다. 안 먹고 일주일을 버텼다니. 정말 대단했어. 오늘은 먹어줘야지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라며 나는 사온 책은 일단 잘 놓아두고 맥주 캔부터 땄다. 시원하게 캔 뚜껑 열리는 소리에, 금세 따분함은 잊혀지고 금방 설렌다. 이렇게나 사람이, 참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