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오전이 오후 같은 이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거실은 엉망진창. 이와 같은 일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널브러진 블록 조각들을 본다.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피해 다녀야 한다. 밟으면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프기에.
아이들은 피해 다니는 능력이 만렙인 건지 저렇게 난리가 나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닌다. 블록 따위 밟을 일은 거의 바다에서 바늘 찾는 일만큼이나 희박하다. 아이들은 정말 무슨 발에 촉수라도 달린 건지 어른들보다 장난감 밟는 일이 거의 없다. 이상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날씨가 오전 같지 않은 오전. 오늘은 뭘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비도 오는데 나가기도 애매하고 마트에 가자니 최근에 다녀와서 살 것도 없고, 서점에 가자니 아이들이 싫어할 테고(사실 서점에서 더 이상 살 책은 없다) 비가 꽤 와서 나가서 노는 것도 좀 힘들다. 이런 날은 집에 있어야 하나. 셋이서 또 어떻게 집에 있어야 하나.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반대로 에너지 제로인 엄마가 같이 있으니 집에 있어도 뭘 할리 만무하다. 얇은 책들을 고르는 이유도 그러하다. 아이들을 보면서 읽기에 적당해야 하고, 가벼워야 들면서 읽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되지만, 스마트폰 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 핸드폰 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진 않을 테니.
최근 들어 저장하는 습관을 가진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복사해서 올리는 편이 아니라(복사를 하면 이상하게 창이 꺼진다) 바로바로 그때 브런치 화면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서 올리는 편이라서 그런지 저장은 필수다. 멋모르고 창을 꺼버릴 때도 있고, 발행 버튼을 나도 모르게 누를 때도 있어서 저장버튼을 꼭 누른다. 사람은 이렇게 실수를 한다. 몇 번 겪으면 안 할 법도 한데 망각의 동물인지 매번 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한다. 그래서 저장은 필수다. 한 단락 쓸 때마다 저장. 또 한 단락 쓸 때마다 저장버튼을 누른다. 실수와 더불어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방하는 차원으로 버튼을 누르는 셈이다. 그러면 일단 글을 날릴 일이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한 번에 쭉 쓰는 터라(그래서 좀 글이 뒤죽박죽이다) 글이 없어지면 통째로 써야 할 말들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늘 저장을 누르는데, 이 예방 행동은 나의 좋은 습관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 정도로 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갑자기 자기반성인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면 엄청난 거다. 뭔가를 예방하다니! 계획된 행동이 아닌가. 무계획으로 사는 여자라 계획하는 삶 자체가 엄청난 대단함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돈을 계획해서 써야 할 텐데 말이다.
역시 방금도 화면이 꺼졌다. 저장버튼을 안 눌렀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마치 비 오는 날 무방비로 우산 없이 비를 옴팡지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을지도.
좋아하는 향초를 켜 두고, 아이들의 수다 속에 글을 채워나간다. 그래, 이게 내 일상이지. 이 소란스러운 삶에서 어떻게 조용한 삶을 바라겠어. 그것도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는데! 나는 이 속에서도 쓸 수 있는 내가 대단해서 짜란다 짜란다.라고 외쳐주고 싶다. 물론, 아이들이 잠든 밤에 쓸 수도 있겠지만 밤에는 확실히 글이 너무 다분히 감정적이다. 다음날 보면 오글오글. 지우고 싶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오전에 써야 그런 충동이 덜하다.
얘들아 우리 뭐 할까 오늘.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돌아오는 건 침묵뿐.
비가 안 오면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할 텐데, 비도 오니 뭘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일단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을 해봐야 하나. 전투적인 눈으로 싱크대를 바라본다. 대체 왜? 맨날 치워도 나오는 것일까? 아니다. 이런 의문을 하면 끝도 없지. 어차피 해야 할 일. 짜증 내면서 할 필요는 없지. 한 끼 잘 해결했으면 된 거지 그걸로.
나는 나를 위로하며, 전투적이었던 내 눈을 푼다. 나는 순한 양으로 변신한다. 변신한다. 변신한다.....
곧 애들이 뛰면 또 코뿔소가 될 나를 알고 있기에, 일단은 진정하기로 한다. 진정하라.. 너에겐 저장 버튼이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