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끝나가다니 믿을 수 없어

by 김태연



휴가가 끝나간다. 아쉬움에 탁상달력만 뒤적거리는 나는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 마음이 잼처럼 졸여졌다.

남편의 공식적인 휴가(라고도 할 수 없던 휴가였다)가 끝나감은 동시에 나의 휴가도 끝임을 알리고 있었다.

어찌어찌 보낸 휴가가 이렇게 끝나가다니! 아 이럴 수가. 나는 탄식하며 지나간 달력 속 숫자를 바라본다.


이번 휴가엔 뭘 했더라. 아이들과 물놀이터를 다녀오고, 숨은 독립서점을 찾아다녔고, 두 아이와 지지고 볶는 일상생활을 했으며, 빨리 가지 않는 나의 시간과 허무하게 지나가는 남편의 시간을 비교했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도 같다.


그래도, 아마 지금까지 보낸 휴가 철 중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이렇게 단시간에 몇 권씩 사는 경우는 드물었으니. 그것도 얇은 책만 골라서 쏙쏙 사는 재주까지 터득했다. 요모조모 알찬 시간을 보냈음에도, 흘러간 시간이 아쉽고 휴가의 끝이 보임에 서글퍼진다. 아아 휴가가 끝이라니 말도 안돼..


초복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벌써 내일모레가 입추가 된다. 입추라니. 이렇게 더운걸? 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달력을 본다.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가 금세 관심 없는 눈이 된다. 내가 피부로 느껴야 가을이 오는걸 알지. 하면서. 아직도 아이들이 이 더위에 물놀이를 즐기는데 벌써 입추라고? 말도 안돼.

나는 오고 있는 가을을 부정하며 여름의 끝자락을 되새긴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렇게나 짧은 여름이라니. 엊그제 여름방학을 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 20일 정도밖에 안 남은 여름방학이 못내 아쉽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바다를 못 갔네. 모래놀이를 못했어. 내 기필코 방학 안에는 바다를 다녀오겠어.라고 다짐하며 꾹꾹 키보드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힘차다. 다짐은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저릿저릿 전기가 오는 것 같은 마음가짐 같다. 이런 내가 웃기고도, 웃기다.



오늘은 그렇게도 돈가스가 먹고 싶었다. 여보 우리 냉동 돈가스가 있었나? 나는 냉동고를 뒤적이며 묻는다.

미니 돈가스밖에 없을걸. 오 찾았다 여기 있어! 전에 맛없다고 한 돈가스가 두 덩어리나 남았다.

재촉하는듯한 손놀림으로 얼른 돈가스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식용유를 뿌린다. 15분이나 돌려야 한다니.

나는 절망하는 표정으로 재빠르게 시간을 설정하고 돌린다. 위이잉. 에어프라이어의 소리가 군침이 돌아서 한참을 그 앞에서 밥을 차리며 서성거렸다.


얼른얼른. 배고파. 땡. 소리가 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밥을 떠먹으면서도 어서 돈가스가 먹고 싶었다. 꼭 임신한 것처럼 그렇게 당겼다. 남편이 들고 오자마자 한 조각 자른걸 아이보다 먼저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뜨거운 돈가스를 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걸 맛없다고 했다니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구만. 너무 맛있는 냉동 돈가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여느 돈가스집 못지않은 맛이 된다(물론 돈가스 소스는 필수품이다 나는 찍먹파니까) 왜 맛없다고 다신 사지 말자고 했던 거지? 말도 안돼.


나는 여름방학을 부정하듯 돈가스 맛을 부정하며 조만간 대형마트에서 다시 똑같은 제품으로 사 오겠다는 다짐을 한다. 뭐든 에어프라이어를 돌리면 웬만한 건 맛있다는 사실은 사실이었다. 아, 이래서 냉동제품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구나.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으며 제품을 만든 기업에 감사함을 느낀다.

덕분에 맛있게 즐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많이 사드리겠어요. 하면서.



허겁지겁 먹은 것치곤 배가 안 불렀는지 이것저것 또 먹을 생각부터 한다. 다이어트는 이미 물 건너갔고, 어떻게 하면 절제하며 먹을 것인가 생각을 해본다. 나눠먹으면 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뭘 먹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다. 아니지, 원래 사람은 음식에는 진지해야 한다.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뭐든 맛있게 먹으려면 감사해야지. 누군가의 노고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니 말이야.


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걸 꾹 참는다. 엄마 뭐래.라는 눈으로 쳐다볼까 봐. 내 아들은 이런 감성적인 말을 하면 이성적인 눈빛을 하며 정신 차리라는 현실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초등학생 아들은 훨씬 나보다 더 판단력이 빠르고, 덜 감정적이다. 그건 꼭 어느 대도시의 평론가한테 감상평을 받는 기분이랄까.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라고 조금만 더 크면 말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다 좋은데 변성기인 목소리로 말하면 좀.. 믿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휴가는,



다분히 이렇게도 나를 감성적이게 만든다. 오늘은 운전을 하며 구불구불 휘어진 차도를 보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했지. 인생이란 무엇인가. 웃기는 소금 빵 같은 소리였다. 나는 운전을 하며 에어컨을 틀었음에도 땀을 흘려가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더워 죽겠는데 인생에 대한 생각은 또 뭐람.


구불구불 휘어진 건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이니까 그렇지 뭘 그걸 인생에다 비유까지 하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뭐라고 그 더운 차 안에서 생각까지 하고 있었나 싶다.

차라리 얼음이 잔뜩 들어간 수박주스나 사 먹고 오면서 인생은 이맛이지. 하면서 예찬을 했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더위에 정신이 약간 혼미했나. 이제 와선 또 배부르니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달력을 본다.

다음 주에 있을 둘째 유치원 개학이 은근히 기다려져서 또 인생은 이런 맛이지! 하며 두 손 벌떡 들고 싶은 나의 마음이 천장에 솟구친다.

확실한 건, 나는 착한 엄마는 아닌 것 같다. 개학이 이토록 반갑다니.

현실적인 엄마인 게 분명하다. 물론 휴가가 끝나가는 걸 믿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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