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보리차를 끓인다. 생수를 잘 못 먹는 나라서 어쩔 수 없다. 이 더위에도 보리차를 끓이는 내가 내심 대단하다. 이틀에 한번 정도 끓이는 보리차는,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많은 편이라 그만큼 헤프다. 여름이라 이틀에 한 번꼴인데, 겨울에는 삼일에 한번 정도 끓이는 듯하다. 언제 하든 손이 그만큼 가는 건 사실인지라, 나는 보리차가 넘치지 않기만을 인덕션 앞에서 대기한다. 끓어 넘쳐 오르면 물이 막 나와서 난리 난리가 나기 때문에, 앞에서 버티고 있어줘야 한다. 끓는 시점에 재빨리 인덕션의 불 세기를 낮춰줘야 물이 제멋대로 끓어 나오지 않는다.
한동안 생수를 사 먹겠노라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었다. 물 끓이는 게 너무 덥고 힘들어서 (물론 여름이었다) 거의 공지를 올리듯이 남편에게 말했는데 일주일도 못 갔다. 시중에서 파는 보리차는 너무 향이 강하거나 탄내가 났다. 거의 타다시피 한 보리차를 우린 것 같았다. 생수는 당연히 잘 먹질 못했다. 애초에 생수를 잘 먹을 수 있었다면 보리차를 끓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보리차를 끓일 때만큼은 굉장히 느긋하다. 그건 마치 어떤 행위에 가깝듯이. 물을 받아 몇 번을 냄비에 옮기고(참고로 정수기가 없다) 보리를 다시팩 안에 일정량의 양을 집어넣은 다음 잘 밀봉한다. 티백 둥굴레차와 같이 냄비에 넣고 물이 끓기만을 기다린다. 다행인 건 인덕션이라 빨리 끓어오른다는 점이다. 넘쳐흐르기 전에 재빨리 불의 세기를 낮추고, 예약을 25분으로 잡아둔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시작한다. 그건 마치 어느 하나의 일련과정 같아서 막힘이 없이 자동적으로 손이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보리차를 끓일 때의 생각은 꼭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이 단순한 과정은, 조금 귀찮지만 맛을 알면 감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보리차를 올려두고, 일찍 올 거라며 나간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수영장을 가야 한다며 비장하던 그의 목소리에, 나는 거의 다 들어가다시피 한 목소리로 코로나가 지금 난린데..라고 했었더랬다. 결연한 남편의 의지는 아이의 여름방학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그런 굳센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영 내키지 않는다. 수영장이라니. 얕은 물이라고 해도 물은 좋아하지 않는 터라 가야 할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게다가 오늘은 비도 많이 온다! 이렇게 비 많이 오는 날 꼭 움직여야 하는가. 나는 속으로만 생각하며 겉으론 말하지 못한다. 여름방학 내내 한 것이라곤 집 앞 아파트 물놀이 놀이터에 딱 한번 간 것뿐이다. 남편은 여름방학을 불사 지르겠단 마음으로(그래 봤자 이틀 정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나는 그런 남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한다. 활활 타오르는 의지를 꺾어봤자 비난의 화살뿐일 테니.
비가 세차게 몰아친다. 창밖의 비를 보며 집 안이 세상 다정함을 느낀다. 큰아들은 제 할 일을 재빨리 끝내 놓곤 얼른 게임을 켰고, 둘째 아들은 큰아들이 하고 있는 게임을 호기심에 바라보고 있다. 천둥이 가끔가다 울리는 소리가 나지만 다행히도 집은 안전하다. 이제 막 아침에 큰일을 보고 씻고 나온 둘째 아이의 머리카락이 얕게 날린다. 나는 그런 둘째를 꼭 끌어안고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너 왜 이렇게 귀여워 누가 낳았어.라고 꼭 끌어안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귀여워라. 아침에 그렇게 먹어대더니 장이 버티질 못했는지 화장실로 손잡고 가던 둘째 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덕분에 화장실 청소도 대충 하고 나왔다) 깨물고 싶을 정도다.
비 오는 오전에 무엇이든 용서될 것만 같은 하루.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리차도 끓이고, 아이 목욕도 시켰다. 밖에 비가 오는 것도 괜찮다. 오늘은 뭐든 다 괜찮을 것 같다. 수영장 가자는 의지만 빼면 말이다.